IQ 77 아이큐 77 제1화 03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by 이윤영

아이큐77


03


엄마는 누나를 갖게 되었을 때, 몸이 많이 아파 자주 병원에 다니셨다. 좀 몸이 나아질 듯 했을 땐 고칠이를 갖게 되었다.

누나와 고칠이는 나이가 네 살 터울이다. 누나는 초등학교 다니면서 육상선수로 활약했다. 동네 터줏대감 같은 이발사 아저씨가 당시 가장 빠른 전투기 이름인 "쌕쌕이" 라고 별명을 붙일 정도로 누나는 빠르고 운동도 잘 했다. 친구들 하고도 잘 어울리고 붙임성도 있었다.

누나는 울고 들어오는 법이 없을 정도다. 뭐든 경쟁하면, 로마 원형경기장의 무적 검투사처럼 당당하게 이기고 집에 들어왔다.

하지만 고칠이는 달랐다. 항상 장난꾸러기 모습을 보였고, 딱히 잘 하는 건 별로 없었다. 심지어 엄마가 애써 사준 큼직해 보이는 잠자리채와 자전거는 망가뜨려 오기 십상이었다. 교회학교도 빼먹고, 동네 친구들과 싸우다가 울고 들어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고칠이가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안쓰러워 보였는지, 가끔 매를 들었고 타이르는 횟수도 많아지셨다. 고칠이네 집에는 안방 위쪽에 쥐새끼 한 마리 정도 있을 법한 다락방이 있었다. 참다못해 폭발한 엄마는 빗자루를 들고 혼내려 하면, 고칠이는 무서워 다락방으로 몸을 피하기 바빴다.

그래도 고칠이 집은 행복했고, 아빠도 가족을 위한 거라면 뭐든지 열심히 하셨다.


눈썹모양의 초승달이 어두운 길가를 불그스름하게 비추던 이른 밤이었던 것 같다. 잔뜩 겁에 질려 보이는 엄마가 가끔 고칠이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하셨다.

"혹시 삿갓 쓴 어느 검은 할아버지가 부엌 옆으로 지나가지 않았니? 고칠아 한번 가보렴.”

고칠이는 그래도 군인 졸병처럼 엄마 말은 잘 들었다. 그는 항상 무섭게 대하고 혼내는 사람에게는 꼼짝없이 굴복했던 거다.

엄마 말대로 가서 찾아보기 일쑤. 그런데 아무도 없어, '엄마가 약간 이상하네.'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단다.

그때마다 엄마는 손가락을 허공에 초점 없이 이리저리 가리켰다.

“가서 자세히 봐봐, 엄마 말 좀 들어.”라고, 엄마는 다급해 했다.

후에 안 얘기지만 ‘엄마는 귀신 볼 줄 아는 분’ 이셨다.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귀신이 보인 거는 아니었다. 결혼하고 나서 아빠가 특별히 그럴듯한 수입이 없으셨고 아기도 없어서 고민을 많이 하셨다. 엄마는 우량아인 누나를 갖기 얼마 전부터 가끔 귀신이 흐릿하게 보였는데, '그냥 몸이 아파서 헛것을 보는 거겠지.' 라는 생각에 크게 걱정하지 않으셨다는 거다.

그러다가 누나를 낳고 좀 시간이 흐르니깐, 옆에 동네 아줌마 아저씨 지나가는 것처럼 귀신이 너무 확연히 보였다는 것.

‘정말 소름 끼치네.’


실제로 엄마는 S성당 가톨릭 신부님과 함께 '어둠이 자욱한 공동묘지에 혼자 갔다가 귀신 씐 동네 아줌마'를 찾아 푸닥거리, 말하자면 귀신을 쫓아낸 적이 있다. 그 아줌마 막내아들은 그걸 보고 영적인 세상에 대해 깊이 고민하더니, 로마까지 유학 갔다 온 성직자가 됐다. 동네는 이 얘기로 소문이 파다했었다.

고칠씨는 엄마가 귀신 본다는 말을 나에게 건네면서, 그 스스로도 미신으로 치부하는 듯싶었다.

“토속신앙은 하나의 전통윤리이지, 미신은 아니라고 봅니다.”

나는 정중하게 이렇게 말을 던졌다.

“토속신앙은 중국에서 건너 온 유교 불교 도교와, 서구문화가 깃든 기독교(가톨릭)와는 달라요. 우리나라에 고유하게 전해 내려오는 신앙입니다. 그 중에는 크게 샤머니즘, 토테미즘, 애니미즘 등이 있어요. 샤머니즘(Shamanism)은 주술사를 뜻하는 샤먼(shaman)이 인간의 행복과 평화를 지원해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즉, 무당이 신령이나 죽은 이의 영혼을 불러내어 길흉을 판단하거나 예언도 하게 되겠죠. 굿에서 무당이 산 사람과 귀신 간의 의사소통도 해 준다니, 좀 무섭죠. 이처럼 샤먼은 인간과 자연, 하늘의 뜻을 인간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고칠씨는 내 설명을 듣고선, 학창시절에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고 대답했다. 그는 토테미즘 애니미즘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생각난다고 덧붙였다.

토테미즘(Totemism)은 토템(totem)인 동식물이나 자연을 신성하게 여겨 종족의 상징이나 수호신으로 삼는 행위를 말한다. 토템과 인간의 여러 관계를 둘러싼 풍습 등이 제도화된 신앙이다.

애니미즘(Animism)은 정령숭배라고 말하는데,

애니(anima)는 영혼을 뜻하며, 산 나무 등 자연의 모든 사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원시신앙인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같은 토속신앙을 통해 자연과 하늘을 거스르려고 하지 않았고, 자연과 함께 어울리는 가운데 인간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면, 십자가를 벽에 거는 건 토테미즘인가요?"

아이큐 77의 고칠씨의 질문은 날 당황시키고 말았다.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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