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칠이 동생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동생은 고칠이처럼 지저분한 개천에서도 놀지 않는다. 엄마는 고칠이 동생이 백과사전 류의 책도 좋아하고 해서 넥타이까지 달린 멋진 밤색 빛 어린이용 신사복을 사주셨다.
그걸 입고 있는 고칠이 동생은 완전 학구파로 보였다. 그리고 동생은 해가 저물도록 놀고 들어와도 정말 놀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옷이 깨끗했고, 손에도 0.1그램의 흙조차 묻어 있지 않았다. 고칠이가 보기에는 정말 놀랍고 신기할 정도였다.
고칠이가 동생한테 "뭐하고 놀았냐?"고 물어보면, 초록색의 프라모델 탱크 장난감 조립했다고 하거나, 세발자전거 탔다고만 한다. 다른 것은 거의 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해는 되긴 하는데….
또 동생한테 송도 앞바다의 '낙섬' 흙탕물에서 수영하고 노는 게 재밌다고 달콤하게 유혹해서 억지로 가면, 동생은 밖에서 그냥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다. 흙탕물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았다. 여자애들조차 발가벗고 신나게 헤엄치는데 말이야.
쩝. 한마디로 고칠이가 보기에는 재수 없는 녀석이었던 거다.
동생한테는 재수 없는 게 또 하나가 있다. 동생이 태어나자마자 고칠이 이름처럼 할아버지는 "형이 일곱 칠(七)자를 썼으니까, 동생은 이어서 여덟 팔(八)자를 써야 한다"고 이름을 지으신 거다.
동생의 이름은 고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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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없는 무협지의 대장 감이었다.
고칠이 엄마는 할아버지의 괴상한 논리의 이름 작법에 실망한 나머지, 거의 이틀 동안 밥을 못 드셨다. 아침 일찍 진시경(오전 7시-9시) 인가, 결국 엄마는 곰방대를 '톡톡' 털면서 쉬고 계시는 할아버지께 핏기 없는 얼굴로 대드시고 말았다.
당시만 해도 거의 상상할 수 없는 며느리의 거센 저항이었다. 아마 엄마는 쫓겨나도 어쩔 수 없다는 하나의 대모험을 감행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일은 쉽게 마무리됐다. 할아버지는 고칠이의 동생 이름만큼은 며느리에게 맡긴 것이다. 고칠이도 자신의 이름이 항상 놀림감이 된 것 같아 내심 바뀌길 간절히 원했다.
그때 분위기로는 동생 이름은 바꿀 수 있었지만, 또 고칠이 엄마가 형의 이름도 바꾸자고 했다면, 엄마는 정말로 막나가는 며느리였다는 손가락질을 면치 못했을 듯싶다. 도저히 권위 자체인 할아버지의 명령 같은 말씀을 두 번이나 거역하실 수는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동생은 누가 봐도 부드럽고 좋은 이름으로 지어졌다. 고칠이 엄마는 할아버지께 여러 번 "죄송해요." 라고 했다네.
그런데 고칠이는 뭐냐 말이다.
"엄마 내 이름도 바꿔줘요. 멋지게요. 재수 없는 내 동생, 너 때문에 내 이름은 지금도 창피하단 말이야."
“고칠씨,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도 봉건적인 잔재가 남아 있어요. 웃어른을 공경한다는 의미로 효사상이 있는 건 아름다운 풍습일 겁니다. 하지만 어디서 ‘며느리, 여자가 나서냐.’든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느니 등의 옛 사상은 여자가 남자에 비해 열등한 존재로 심하게 비하시킨 것으로 하나의 '차별주의' 라고 볼 수 있어요.”
“그렇긴 해요. 그치만 지금은 여자들이 무서워요.”
“히스테릭한 여자들은 무섭긴 해요. 이 말인 거죠? 그런데 기존의 남성 우월주의 사회에서는 공격, 파괴, 정복 등 남성적 가치가 중시되어, 사랑 포용 보살핌 등 여성적 가치가 빛이 바랬다고나 할까요. 따라서 여성의 정치적 법률적인 모든 권리의 확장을 주장하는 페미니즘은 남성 우월주의를 타파하고 여성 우월주의로 가자는 말은 아니고, 남녀 차별 없는 양성 평등한 사회를 추구한다고 봅니다.”
“남자들을 무시하는 이기적인 페미니즘을 좋게 보시네요?”
“취지는 좋다는 겁니다. 에코페미니즘이란 말도 있어요. 이는 남성적인 가치관으로 자연을 정복과 지배의 대상으로 여겨 환경파괴가 나타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연을 인간과 함께하는 동반자로 생각하는 여성의 가치관을 널리 확산시키자 라는 주장으로 보면 될 거예요.”
우연일까. 고칠이와 동생의 이름이 서로 너무 달라서인지 몰라도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생활이 많이 달랐다.
엄마도 이러신다.
“생김새는 비슷할 수 있어도 고칠이랑 동생은 너무 다르다.” 는 거다. 한 뱃속에서 태어났는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하신다.
‘뭐가 다른 건지 내참.’
동생이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겨울방학을 맞이한 어느 날이었다. 동생의 학교 담임선생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는 전화를 받으시고 나서, 말똥말똥 쳐다만 보고 있는 고칠이 동생을 와락 안으신 거다. 지금까지 이렇게 기뻐한 엄마의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