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칠이가 대학에 입학한 때는 말 그대로 공부는 뒷전이고, 데모가 학교안팎 곳곳에서 일어났다. 정말 어수선했다. 학교 공부하기 싫어하는 고칠이로선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그래도 해외 배낭여행도 하는 낭만적인 대학생활을 누리고 싶었다.
가끔은 데모만하는 학생들이 싫었다. 그들은 자신의 도덕성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말끝마다 민주적인 학교와 나라를 원한다는 말을 했다.
“고칠씨, 과거 18세기 유럽은 절대군주의 억압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있었어요. 당연히 경제적으로도 빈곤했고요, 프랑스왕권은 루이 14세가 완성한 절대주의 체제로 국민 위에 군림했던 거예요. 성직자들과 귀족만이 특권계층을 가졌고요. 이들 왕권과 특권계층은 국민 90% 이상을 차지한 평민층의 근로와 납세에 기생하며, 우아하고 귀족적인 삶을 살았던 거죠.”
“제 학창시절엔 사회 불만이 많아 데모가 있었어요.”
“한마디로 이처럼 구제도의 모순이 가장 컸겠고, 국가경제 사정도 악화되었어요. 이 뿐이겠어요. 프랑스 국민들은 관습과 전통의 맹목적으로 답습하지 않는 계몽사상에도 영향을 받았죠. 결국은 1789년~1794년에 걸쳐서 프랑스의 시민혁명이 일어났어요.”
“아, 프랑스 대혁명을 설명하려 하셨군요.”
“맞아요. 모든 사람이 자유와 평등한 권리를 얻기 위해 일어난 혁명이었습니다. 프랑스 인권 선언문 제1조가 이를 잘 말해 줬어요. '인간은 권리에 있어 자유로우며 평등하게 태어나고 생존한다.' 입니다.”
“어디나 사회가 어지러웠던 때가 있었나 보군요.”
“사회가 성장하려면, 어느 사회든 아픈 홍역을 치루나 봅니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 후 영국의 버크(E. Buke)가 보수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내걸고 급진적인 변화에 제동을 건 겁니다. 왕과 귀족들이 과거 질서를 옹호하도록 하는 사상을 제공해 준 것이지요. 프랑스의 봉건제도는 막을 내렸으나, 유산계급(부르주아지)이 정치경제를 장악했고, 선거도 제한선거로서 프랑스 혁명에 앞장 선 농민과 노동자에게는 선거권이 없었고, 유산계급만이 선거권을 갖고 있었어요.”
“우리 과거 사회와 그 당시 프랑스는 비슷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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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칠씨와 나는 우리 과거 사회 언급에 대해선 쉽사리 비판하기 어려운 눈치였다. 서로의 정치성향을 드러내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용기를 내야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80년대는 군부독재가 팽배했었죠. 문민정부가 왔어도 그 잔재는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특히 대학생들은 소위 '데모'를 했었죠. 그런데 고칠씨 말대로 끊임없는 개인의 도덕성에 대한 의문과 애국심, 혹은 이상향에 대한 지표가 서로 너무 달라 학생 운동하는 세력들 사이에도 갈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보수주의로 회귀하는 이들도 있었답니다. 때로는 종교운동, 시민운동, 더 나아가 현실정치에 참여하기도 했었죠. 아직도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여전히 남아 있고, 이를 대변하는 언론사도 서로 대립적인 양상을 띠고 있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제 학창시절엔 늘 데모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학생들과 근로자들이 억울하게 죽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