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 77 아이큐77 제4화 02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by 이윤영

제4화


02


고칠이는 빨리 아침밥을 챙겨먹고 평소처럼 학교를 향했다. 학교가 멀어서 서두르는 편인데, 오늘 따라 길이 더 막혔다. 멀리 교문이 보였다. 복식 호흡하며 뛰었다. 지각인 것 같았다. 이번에도 지각하면 다섯 번째라서, 문 열고 들어가기가 창피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게 또 뭐냐? 교문 입구에 전경들이 쭉 줄서서 막무가내로 학생들의 가방을 일일이 열어보며 검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완전 지각이다!’


뛰어도 늦을 판인데, 천천히 엉금엉금 걸어서 줄설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고칠이 말고도 다른 많은 학생들도 지각할 것이 뻔했다. 그는 혼자 또 지각할 거라는 창피함이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그것도 잠시, 그는 지각에 대한 가치 판단을 잊은 듯, 좀 정신을 가다듬고 이 상황을 생각해 봤다. 고등학교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면 학생들의 빈축을 사기도 하는데, 이건 대학에서조차 가방 검열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 그의 눈앞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고칠이는 대학 교수들이 교문 앞에서 학생들의 가방을 검열한다면, 기분은 나쁘지만 그래도 교육 차원에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완전히 이방인이 와서 가방을 검열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의 마음이 통했나. 그 바로 앞에서 대학 졸업반처럼 될법한 나이든 선배 한명이 가방을 검열하겠다는 전경에게 반항하고 있는 게 아닌가. 가방 속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갑자기 머리에 피도 안 말라 보이는 어린 전경이 그 선배를 확 잡더니, 경찰 기동대버스인 닭장차로 데리고 가는 게 아닌가. 그 주위의 학생들은 몸만 움츠리고 아무도 저항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고칠이도 무서웠다. 순수히 그는 전경에게 가방을 훤히 보여주고, 무사히 교문 앞을 통과했다. 그는 그 선배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뒤돌아보면서 학교정문을 지나갔는데, 그 선배는 닭장차에 들어가서 나올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궁금했다. 과연 그 선배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그 후 신의 장난이었을까.


전경으로 차출되었다! 드라마 같은 일이었다. 그는 전경으로 군복무를 하면서 수없이 많은 대학분규와 데모를 진압했다. 백골단으로 차출됐을 땐 아무생각도 없었고, 백담사에서 동료들이 살아있는 개구리를 통째로 입에 넣어 먹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만히 맨 정신으로 있긴 어렵다는 생각에 잠기곤 했다. 하지만 그곳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국가의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군대를 늦게 지원해 구로사태까지 진압했던 그가 서울 신촌사거리에서 데모 진압할 땐, ‘동생과 우연히 마주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동생은 서울 Y대학을 다녔다. 동생의 한 손에 전경에게 던질 뾰족한 돌이 있다고 생각하면 눈앞이 아찔했다는데.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완전 가족 간의 동족살상이 아닌가.’


다행히 전경복무를 마칠 때까지 동생과 부딪힌 일은 없었다. 당시 많은 학생들이 데모에 참여했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을 배제 하기는 어려웠지만 말이다.

나중에 안 얘기인데, 공부밖에 할 줄 몰랐던 고칠이 동생은 당시 Y대 총학생회 일을 도와주었고, 전경에게도 돌을 던진 적이 있었다는 거다. 다행히 고칠이와 동생은 서로 칼을 겨누듯 마주치지는 않은 것이다. 이번엔 파란 저 하늘이 도와준 셈이다.


고칠이는 학창시절 가방검열을 거부해서 닭장차에 올라탄 그 선배가 어떻게 되었을지 이젠 알겠다고 말한다. 딱 하나다. 엄청 전경들에게 맞았겠지.



“고칠씨는 그 당시 역사 한복판에 있었군요?”

“아, 그런 셈이죠. 그때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국가나 공공기관이 우월한 의사주체로서 국민에게 명령하고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을 공권력이라고 해요.따라서 경찰 검찰 등의 정부기관은 이 같은 공권력을 갖게 되죠. 사회 안정과 치안이 주목적이라고 합니다. 공권력을 행사하는 경찰 등이 공권력을 정당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공권력의 남용이라고 해요.”

“공권력의 남용이라……? 우린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에요.”

“고칠씨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죠. 그래도 경찰관의 집무집행법에 의거, 전투경찰(전경)이 아무리 사회 안정과 치안을 위한다고 해도 사전에 가방검열에 대한 이유와 소속 및 관등성명을 말하고 실시해야 해요. 그럼에도 학생들의 가방을 막무가내 검열한 것은 공권력의 남용에 해당될 듯싶네요. 가방검열 등은 불심검문에 해당돼요.”


그렇다. 우린 그렇게 살았다. 이것은 개인의 인권 유린에 해당되고, 가방검열을 받는 당사자는 불심검문을 거부할 수 있는 충분한 사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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