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고칠이는 전경복무를 마치고 대학 3학년으로 복학했다. 가뜩이나 머리에 자신이 없었는데, 거의 3년이라는 긴 세월을 읽고 싶은 책 한 권 못 읽어 보고 대학공부를 하려하니 정말 앞이 캄캄했다. 그는 그 후부터 어떻게 졸업을 해야 할지 난감해 했다.
교양수업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도 힘든 마르크스 베버 등을 거론하는 철학수업이 진행됐고, 보고서를 어떻게 써서 내야할지 난감했다. 동생에게 맡겨볼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동생은 철학 사회과학 서적 등을 많이 읽어서 이것쯤은 식은 죽 먹기 일거야. 그런데 보고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시험이 문제였다. 대리시험을 치르게 했다가는 퇴학 감이었던 거다.
고칠이는 군대를 제대하고 오더니 이젠 정의감은 거의 사라졌나 보다. 어떻게 해서든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졸업할 생각만 하니 말이다. 하루 이틀 미로게임 같은 학교공부가 진행되었다. 그는 정말 자신 없어 했다.
전공인 경영분야는 전혀 모르겠다는 거다. 프로그래밍 언어도 공부해야하는 경영정보 분야는 그의 아이큐 77로는 역부족인 것인지, 아니면 3년이라는 군복무의 후유증인지 감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고칠이는 급기야 대학공부를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연이어졌다. 먼저 동생한테 상의해서 엄마에게 말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밤 12시쯤 그는 23도 소주에 취한 채 동생을 불러냈다. 고칠이는 술의 힘으로 대뜸 동생한테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동네가 떠나가도록 소리쳤다. 동생은 정말 웃긴 놈이었다.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차근차근 말하는 거다.
동생은 이런다.
"형 내가 도와줄 테니, 그냥 다녀. 문제는 중간 기말고사 시험인데, 수업시간에 무조건 교수님이 말하는 거 다 적어와. 형은 그러면 돼.”
고칠이 동생의 답은 아주 간단했다. 수업시간에 들은 거 다 적어오면 된다는 거였다. 엄청 쉬어 보였다. 동생의 아이큐는 거의 고칠이의 두 배처럼 보였다.
그는 고등학교 때 수업내용을 정리하며 공부했던 방식이 생각 난 듯, "정말이냐?"는 말만 할 수밖에 없었다.
“고칠씨의 동생의 인간관은 아마도 이성을 강조한 서양의 인간관에 가까울 듯싶어요. 이성 중심적으로 생각해보면, 능히 동생입장에선 고칠씨가 쉽게 대학을 졸업할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시험 볼 때 최소한 선생님(교수)이 가르친 내용을 외워서 쓰면 되거든요. 너무 쉬워 보이나요? 이처럼 서양의 인간관은 동물은 본능에 따라 욕구를 충족하지만, 인간은 이성으로 욕구를 억제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은 이성 중심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고, 이 발상이 합리주의적 인간관으로 바뀌게 됩니다. 합리주의적 인간관은 이성을 도구로 해서 자연까지 정복할 수 있거든요. 그리스도교의 인간관이 곧 서양의 인간관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종교도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고 정복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아이큐가 77 밖에 되지 않은데, 어떻게 이성적으로 판단하라고 하나요?”
“하하, 고칠씨 자신감을 가져 보세요.”
고칠이는 산전수전 끝에 대학을 졸업한다. 한마디로 편하게 졸업할 수 있듯이 말한 동생에게 사기당한 것이다. 동생이 한 일은 많아 보이지 않았다. 동생 말로는 자신도 힘들었다는 데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고칠이가 수업시간에 적어 온 내용을 암기하기 쉽게 정리해 주었고, 그것을 외우게 닦달한 것이다. 정말 밤새워서 계속해서 외웠다. 고칠이에게는 정말 올빼미 하나 없어 보이는 어둡고 고통스러운 밤이었다.
“이처럼 이성 중심적이고 기독교적인 서양적인 인간관과 달리, 동양의 인간관은 크게 유교, 불교, 도교의 인간관으로 나뉩니다. 유교인간관은 학문 수양을 통해 지속적인 자기반성의 과정인 수기와 수양을 해서 성인군자가 되는 것이에요. 유교에서는 학문의 수양처럼 자기를 억제하는 노력을 지속하면 동물적인 욕구를 이길 수 있고, 선한 본성을 지킬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유교 윤리적인 인간관이라고 해요. 불교에서는 인생의 과정을 고통이라고 봅니다. 생로병사로 나타나는 인생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에 고통을 느낀다는 거죠. 고통의 원인을 깨닫고 집착을 버리면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이에 따라 불교의 인간관은 인생론적 인간관이라고 합니다. 도교는 인간을 자연속의 존재로 봅니다. 인간이 자연의 흐름에 맞게 사는 것을 이상적인 삶이라고 보는 거죠. 도교는 무위를 실천하는데, 무위라는 것은 규범에 따라 행하는 게 아니고 인위적인 것을 거부하고 자연성을 회복하는 모습입니다.”
“제가 그렇게 인위적인 것들을 거부하고 살아온 것 같아요.”
“도교의 인간관을 자연적 인간관이라고 부릅니다. 고칠씨도 인정했듯, 도교의 무위를 실천하는 인간관을 좋아했을 듯싶네요. 고칠씨는 그래도 동생이 닦달했던 게 고마웠겠죠? 만일 그때 동생이 아니었다면 대학공부를 도전도 못 해보고 그만두었을 거잖아요?”
“그럼요. 당연히 머리 좋은 동생도 나름대로 삶의 고민이 많았는지, 큰 걱정거리를 갖고 저를 찾아오곤 했어요. 그럴 때면 저는 형으로서 성심성의껏 조언을 해줬어요. 아무리 가족이라도 오고가는 정이 있어야 사랑이 싹트는 법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