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77 제5화 05 다들 뭐하며 먹고사는 거지?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by 이윤영

제5화


05


고칠이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니 정말 세상이 만만치 않았다. 엄마 아빠와 주변사람들이 우려한 그대로였다. 생물진화론에 공헌한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말한 대로 약육강식, 밀림의 정글이나 할까.

고칠이는 그래도 타고난 능력에 비해 열심히 살아왔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살려고 발버둥 쳤다. 대학도 다녀보고 회사도 다녀보고, 열심히 남들처럼 한 것 같았다. 남들보다 부족한 게 있다면, 그는 복잡한 게 나타나거나 조그만 변수가 생기면, 크게 불평도 늘어놓기도 하지만, 그냥 피해버렸다는 거다.

남들이 보면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자주 그만두고 말았다. 그만두고 나서 할일이 없으면 괜히 그만뒀나 싶어, 또 그 일을 하지만 결국 과거의 그 일을 하다가 힘들었던 일이 기억나서 다시 반복해서 그만둔다.

잠자다 일의 중압감이 그 자신의 몸을 뒤덮으면서, 가위 눌린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모습에 남들도 결국 신뢰성이 없다며, 등을 진지 꽤 오래됐다.

친구들하고도 일해 보려 했는데, 모든 조직에는 사장이 있고, 직원이 있는 서열관계인가 보다. 무정부주의는 실패해서 사라진지 오랜 지 결국 친구가 사장인데, 고칠이는 나중엔 그 관계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게 됐다. 이젠 혼자서 할 게 없나 생각해보니까, 주변 친구들이 무슨 일을 하는 지가 더 궁금해졌다.


“고칠씨는 ‘이데올로기’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나요?”

“당연히 모르죠.”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른다고요? 사실 이 말을 정확히 아는 사람도 실상은 많지 않아요. 이데올로기 라는 말 자체가 사회주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서로 다르게 사용하고 있거든요. 이데올로기 라는 말은 대체로 '이념' 정도로 정의해야 할 듯싶네요. 또 있다면, 사람들이 공유하는 강력한 힘을 지닌 생각이나 모양이라고나 할까요. 이데올로기를 단순히 이념으로 보면 이해는 간단히 돼요. 이데올로기가 사라졌다는 말은 틀린 말이겠고,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사라졌다는 말은 일리가 있겠죠. 현대자본주의는 포스트모던 사회라고 해서 이념의 해체를 말하고 있거든요.”

“알 듯 말 듯 하네요.”

“이데올로기의 긍정적인 측면은 구성원들을 적극적으로 이끌어 통합할 수 있다는 거죠. 부정적인 측면은 자신만이 옳고 남들은 틀렸다는 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광신도가 많아지겠죠. 고칠씨도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는 것 같군요. 조직의 서열관계라는 거요. 사장과 직원의 관계는 생산수단을 소유했느냐의 여부라서 큰 차이가 있어요. 심지어 사장이 직원을 노예처럼 부리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사장 편을 드는 건 아니고요. 그렇다고 해서 고칠씨의 생각이 틀렸다는 건 아니에요. 대기업은 모르겠지만, 소기업 중소기업인 경우는 항상 자금 압박이 있어서요, 직원만큼 사장도 여러 가지로 고통스럽답니다.”


“생활 속에서도 이데올로기 라는 말을 적용할 수 있나보네요?”

“그 보다 이데올로기 라는 말을 쉽게 전달해 보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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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칠이의 가장 절친한 친구 중에 대기업 과장이 있다. 그 친구는 중고등학교 때 아이큐가 130이 넘을 정도로 머리 좋기로 소문났다. 그런데 고 3때 스트레스가 많았는지 친구들과 카드놀이하며, 좀 어울려 놀더니 전문대학에 들어간 게 아닌가.

머리 좋은 이 친구가 전문대학에 간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고칠이도 4년제 대학을 들어갔는데, 이 친구의 전문대 입학은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거였다.

하지만 영어점수는 항상 고칠이가 높았고, 사회나 과학 과목은 이 친구의 점수가 훨씬 높았다. 한마디로 고칠이는 영어 때문에 4년제 대학에 갔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친구는 그래도 대기업의 과장이 됐다. 주변 회사 동료들도 이 친구가 전문대학을 나왔지만 머리도 좋고 능력도 탁월하다며, 이 친구의 능력을 인정한다. 머리가 좋고 봐야 하나보다.


또 한 친구는 지방 캠퍼스 대학을 졸업했는데, 이 친구도 공부를 잘한 친구인데 운이 따라주지 않은 대표적인 친구다. 그래서 재수까지 생각한 모양인데 동생 학비랑, 여러 생활환경이 좋지 않아서 포기하고 말았다.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 친구는 영문학을 전공해서인지, 번역 일을 했다. 돈이 잘 안 되는 듯 했다. 역시나 오래 견디지 못하고 그만뒀다.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나서 자동차 판매영업 등을 했는데, 지금은 중소기업에서 야간업무를 본다.

자동차판매영업 할 당시, 실적이 좋아서 잘 나가나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번 교통사고 나고, 판매한 고객 차에도 문제가 생겨 좋지 않은 일이 계속 연거푸 일어나더니, 판매 영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에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S친구. 택시 드라이버 K친구 등도 고칠이의 친구인데, 그래도 밥은 잘 먹고 잘 산다. 경기가 안 좋아지면, 택시 운전하는 친구가 사회에 대해 가장 많이 불만을 토로하지만, 그래도 용기도 있고, 열심히 한다.


그리고 모험 정신이 큰 한 친구가 있는데, 그래도 이 친구는 수도권 대학출신으로 고등학교 때 반에서 60명중 5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 했다. 이 친구는 증권회사를 다녔는데, 증권회사에서 좀 인정받더니만, 회사를 그만두고 개인 투자가로 모험성 있는 증권 배팅을 했다. 그러다 그만 1억 이상의 빚더미가 생겨 사우나탕을 전전하는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미련을 못 버리고, 증권투자를 한다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설마 지금은 부자가 된 건 아니겠지?


그래도 다들 열심인 모양이다. 힘들어도 더디지만 꿋꿋하게 한 일을 파는 모습이 애처롭지만, 왠지 멋져 보였다. 그렇다면 고칠이 자신은 무엇인가. 남들이 어떻게 사나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는 관망자나, 일에 자신 없어 이리저리 일자리를 돌아다니는 나그네 신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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