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은 지위와 역할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사회 속에서 드러납니다. 고칠씨는 사회적 지위를 잃어 버려서 자아 정체성의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거예요. 지위는 이처럼 개인이 사회 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위에는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귀속지위와 노력, 능력을 통해 얻어지는 성취지위가 있답니다. 역할은 간단히 말해 지위에 맞게 기대되는 행동이나 지위에 맞게 해야 할 일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네요.”
“지금까지 회사가 절 지켜주고 있었던 거네요?”
고칠이는 팀장시절 얼마나 남들에게 자신의 명함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만나는 친구들이나 학부모님께 빠짐없이 다 줬다. 그는 친구들이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했던 그 모습들을 평생 잊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멋진 직함이 없으니, 그는 누가 그에게 뭐라고 하는 소리만 들어도 무시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 더 예민해진 것 같다. 그 출판사도 고칠이의 권위 있는 직함이 필요했을 듯싶다.
그런데 그는 다른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초긴장 되는 순간이었다. 만일 지금 예전처럼 잘 나가는 대기업 사원이었다면, 더 큰 일이었다. 글을 어떻게 쓸지 막막했던 거다. 출판사 직원의 목소리가 호통 치는 소리로 환청처럼 들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