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77 제11화 01 나도 책을 쓸 수 있을까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by 이윤영

제11화


01


전화 하나 오지 않는 고칠이에게 어두운 방구석에서 전화벨이 울려댔다. 가늘게 눈을 뜬 채 전화 수화기를 들어올렸다.

출판사인데, 고칠이 자신의 삶에 대한 책을 출판하고 싶다, 원고를 써서 보내 달라는 거다. 갑작스러운 전화벨 울림이 '짜증' 이란 요소로 변화를 일으키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웃기는 뚱딴지 소리인가. 고칠이의 입장은 다르다.


‘책 쓸 능력이 있으면 왜 이렇게 사느냐.’고 발길질 하듯 소리를 내지르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고칠이는 참았다. 그리고 신입사원시절 배웠던 것처럼 예의를 갖춰 차근차근 물어봤다. 고칠이 자신도 스스로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를 어떻게 아시고 전화를 하셨죠?"


"누가 그러는데요, 아이큐가 낮은데도 불구하고 대학도 가고, 대기업에서도 실력을 인정받는다고 하던데요. 그 내용을 출판할 생각이 없으신가요."

‘참나, 아이큐 낮은 게 어디까지 소문이 난건지.'


“그런데요, 지금 회사 그만두고, 놀고 있는지 한참 됐어요. 요즘은 아이큐대로 살고 있어요."

“아. 그러세요, 미안합니다."

하고 전화를 확 끊는 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고스란히 고칠이의 귀에 들려왔다.

고칠이는 완전히 속 뒤집어졌다. '이젠 성공 미담 사례도 못 만들어내면 사회에서는 찬밥 신세인가 보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고칠이는 책 겉 날개표지에 저자 약력이 멋지게 들어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독자들을 위해서는 책의 권위도 있어야 하고 저자의 실패 경험 보다는 성공 미담을 읽어 독자들도 그렇게 살도록 하는 기능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함이 교육적인 권위를 말해 준다는 건 상식이다. 직함은 가장 성취하기 어렵기에 더욱 그럴 거다.


https://cjinstitue.tistory.com/332


“개인은 지위와 역할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사회 속에서 드러납니다. 고칠씨는 사회적 지위를 잃어 버려서 자아 정체성의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거예요. 지위는 이처럼 개인이 사회 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위에는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귀속지위와 노력, 능력을 통해 얻어지는 성취지위가 있답니다. 역할은 간단히 말해 지위에 맞게 기대되는 행동이나 지위에 맞게 해야 할 일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네요.”

“지금까지 회사가 절 지켜주고 있었던 거네요?”


고칠이는 팀장시절 얼마나 남들에게 자신의 명함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만나는 친구들이나 학부모님께 빠짐없이 다 줬다. 그는 친구들이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했던 그 모습들을 평생 잊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멋진 직함이 없으니, 그는 누가 그에게 뭐라고 하는 소리만 들어도 무시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 더 예민해진 것 같다. 그 출판사도 고칠이의 권위 있는 직함이 필요했을 듯싶다.


그런데 그는 다른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초긴장 되는 순간이었다. 만일 지금 예전처럼 잘 나가는 대기업 사원이었다면, 더 큰 일이었다. 글을 어떻게 쓸지 막막했던 거다. 출판사 직원의 목소리가 호통 치는 소리로 환청처럼 들리는 듯했다.


"이게 글이에요? 중학교는 나오신 거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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