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에 서명하면 모두가 작가님이라 불립니다. 그런데 그다음은요?
나는 현직 웹소설 작가다.
나를 작가라고 소개한다면 상대방은 꼭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던가, 문학적인 상상력이 풍부하다던가, 그런 특징이 있느냐고 되물어본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특징이 있다. 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 어릴 적 우리 자매가 쓰던 방에는 낮은 책장이 있었고, 거실에도 작은 책장 겸 소장용 도서 보관 서가가 있었고, 엄마의 작업방(컴퓨터방이라고 불리는 공간)에도 천장까지 닿는 책장이 두 개나 꽉꽉 들어차 있었다. 물론, 아무리 주변에 책이 많은 환경이라고 해도 자녀가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당연하다. 만일 그런 걸로 '책을 좋아하는 자녀'를 키워낼 수 있었다면, 이미 도서관 분위기를 흉내 낸 육아 공간 서비스업이 유행했을 것이다.
엄마는 책을 좋아했고, 작가로서 책을 몇 권 출판하시기도 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아버지는 바깥에서 가정을 위해 일하고, 어머니는 집에서 가사 전반과 양육을 책임지는 분위기였다. 요새는 사회적 시선이나 인식이 개선되어 집안의 가장이 여성이 되는 것에 이상함을 느끼지 않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때는 별로 그렇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엄마가 주부인 동시에 작가라는 사실에 아주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선생님께서 물어보시면 엄마는 작가라고 으스대듯 말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엄마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난처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어린 나에게는 여전히 자랑스러운 일이었고, 어디서든 우리 엄마는 작가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하기는 하는데, 엄마가 모르는 곳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엄마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인터넷에까지 올릴 마음을 먹고 있으니 아무래도 딸농사가 좀 흉작이신 듯하다.
나는 엄마를 따라 책을 보기를 좋아했다. 특별히 내 흥미에 맞는 책이 있었다는 건 아니었다. 나도 글줄을 읽기보다는 그림을 그리고 만화를 보는 게 더 좋았다. 당연하다. 만화잖아. 이해도 쉽게 될 수 있고, 우선 시각적으로 더 매력적이지 않나? 하지만 겨울에 엄마와 함께 담요를 덮고, 발을 마주 댄 채로 소파에서 마주 보고 앉아있는 걸 좋아했다. 엄마가 책을 읽을 때 나도 책을 읽었다. (그 시절에는 휴대폰이 폴더폰이었고, 나는 어려서 개인 핸드폰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다 보면 꾸벅꾸벅 졸 때도 있었고, 아니면 엄마가 자는 옆에 끼어들어가서 한숨 편하게 잘 때도 있었다. 그때의 분위기, 기분, 깨어났을 때 침이 마른입에서 느껴지는 약간 텁텁한 맛과 흐리멍덩한 듯하면서도 개운한 기분.
나는 그 시간이 좋아서 책을 읽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게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해서, 그리고 더 나아가 책 속의 글 너머에 존재하는 무한한 상상의 경지로 떠나는 기쁨을 깨닫게 된 것 같다. 책과 상상에 재미를 붙이게 되고 나니, 좀 사람이 이상해지기는 했다. 중학교인가 초등학교 시절, 수업이 끝난 후까지 문을 열던 도서관에는 대체로 아무도 없어서 나는 관내에서 아무렇게나 편한 자세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던 와중 갑자기 코피가 났다. 하지만 읽고 있던 책이 너무 재미있는 나머지 나는 그대로 층이 약간 높은 단상에 드러누워서 코피를 식도 쪽으로 흘려보내서 삼키며 계속 책을 읽었다. 여러분들은 내가 어떻게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까? '이건 진짜 재미있는 구간이야! 멈출 수 없어!'라고 생각했던 기억은 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싶다. 이건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다. 내가 쓰고 나서도 진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데, 아마 의심이 든다면 그냥 거짓말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이건 내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나는 영락없는 '문학청소년' 루트를 충실히 밟아왔다. 어쩐지 성장한 후에는 대학교에 문예창작 관련 전공으로 들어가서 졸업 즈음에 등단을 했을 것 같지 않나. 하지만 나는 사회과학 관련 전공이고, 내 전공과 완벽히 부합하는 직종에 종사했다.
나는 그 일이 잘 맞기도 했고, 동시에 맞지 않기도 했다. 나는 일을 잘했다. 적어도 요새 말하는 폐급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일을 하면서 마주치는 상대방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를 지키고, 친절하게 대하고,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며, 종종 발생하는 잔업까지 성실하고도 신속하게 수행했다. 팀원들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했고, 곤란한 직장 동료를 돕고, 직속 상사들의 노하우를 최대한 배우고 업무에 반영하여 업무가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비록 지금은 웹소설 작가가 되었지만 내가 일했던 시간이 쓸모가 없었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 사회생활 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정말 소중하니까. 업무상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설득과 타협을 이끌어내는 법, 기분이 실력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법, 일반적인 9-6 루틴에 맞추어서 연락을 하는 법, 말을 곱게 하는 법, 내 의견을 공손하고도 강력하게 어필하는 법. 그런 기본적인 사회인의 소양 같은 것들은 아직까지 나의 스킬로 남아 에이전시 및 담당자 간의 소통에 윤활제를 칠해주고 있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법. 그러니까 단순히 글만 잘 쓰는 천재 작가 같은 타이틀은 필요 없다. 어차피 천재 작가는 운이 따르지 않으면 태어날 수 없는 법. 그러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하며, 성실히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연마하며 운을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도 단순히 웹소설 작가란 무엇이며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가 아니라, 웹소설 작가로 오랫동안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만의 방법을 알려주고, 동시에 여러분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긴 프롤로그가 끝났다. 이다음에는 웹소설 작가에 대한 환상부터 때려 부술 예정이다.
이 연재가 끝나는 날까지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