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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질시스터즈 Feb 21. 2021

주인공이 이렇게 된다고? 완결이 임박한 <진격의 거인>

소년만화 주인공의 틀을 부수다




※스포일러가 매우 다량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격의 거인> 원작이 2021년 4월 완결을 앞두고 있다.

10년 전, <진격의 거인> 애니메이션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잊을 수가 없다. 강렬한 오프닝, 충격적인 작화 퀄리티,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액션씬, 극적인 연출과 BGM, 코즈믹 호러스러운 분위기와 경악스러운 비주얼의 거인까지. 수식어란 수식어는 다 때려 넣어야 할 만큼 잘 만든 애니메이션이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 만화가 나왔지? 싶을 정도로 <진격의 거인>은 휴식 중이었던 덕심에 단숨에 불을 지폈다. 나만 충격을 받은 건 아닌 모양인지 한국에서도 검색어 1위에 오르거나 지상파에서 패러디되는 등 일본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관심을 받았다.     




첫인상, 다소 어두운 소년만화     

처음 애니메이션 1기만 봤을 때의 감상은 생각보다 희망 없는 소년만화 정도?

유일한 생존자인 인류 공동체는 인류의 주적인 거인의 공격으로부터 3중의 방벽을 쌓아 자신들을 보호한다. 주인공 에렌은 어린 시절 거인에게 갑자기 마을을 공격받아 어머니와 고향을 처참히 잃고, 인류의 적인 거인을 모두 구축할 것이라는 결의를 다짐한다. 이후 에렌이 자유를 갈망하며 동료들과 함께 강해지는 과정과 주인공답게 남들과는 달리 거인으로 변할 수 있는 숨겨진 능력이 있었다는 반전까지. 초반의 전개 내용은 소년만화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일반적인 스토리였다.      



우리는 모두 태어났을 때부터 자유다.
그것을 막는 자가 아무리 강해도 상관없다.불꽃 물이든 얼음 대지든, 뭐든 좋다. 그것을 본 자는,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자유를 손에 얻은 자.
그걸 위해서라면 목숨 따위 아깝지 않다.
세계가 아무리 무서워도 상관없다. 세계가 아무리 잔혹해도 상관없다.
싸워!! 싸워!! 싸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에렌 예거의 대사 -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거인화 능력을 갖고 있는 에렌(주인공)은 미지의 존재였던 거인의 비밀을 파헤칠 한줄기 실마리가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류를 공격해왔던 무지성 거인과는 달리, 지성을 가진 거인들이 등장하며 거인의 비밀에 점차 가까워지고, 마침내 등장인물들은 모든 거인을 구축하여 인류의 자유를 되찾을 희망을 꿈꾸게 된다.


초반에도 소년만화치고는 꿈도 희망도 없는 전개를 보여주는 편이기는 했다. 주요 캐릭터인줄 알았던 인물들이 계속해서 죽어 나가고, 희망이 생길 만 하면 가차 없이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전개가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인류를 위해 싸우는 병사 혹은 소중한 가족이 무력하게 죽임을 당하는 과정이 반복되며 작중에서는 계속해서 절망적인 분위기가 연출되고 거인을 향한 증오도 점점 커진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내가 알고 있던 왕도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주 큰 오산이었다.



세상의 진실, 벽 밖 인류     



이것은 그림이 아니다.
이것은 피사체의 빛의 반사를 특수한 종이에 새긴 것으로 ‘사진’이라고 한다.
나는 인류가 우아하게 사는 벽 밖에서 왔다.
인류는 멸망 따위 하지 않았다.

-지하실에 그리샤 예거가 남긴 기록-   



여기서 스토리에 새로운 전환점이 발생한다. 유일한 생존자라고 생각했던 벽 안 인류는 사실 하나의 섬에 갇혀있는 민족이었던 것. 밖에는 거인만이 가득하리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디 섬 밖에는 넓은 대륙에서 훨씬 많은 인류 공동체가 근현대 수준의 문명을 이룩하고 살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거인에 대한 진실도 밝혀지는데, 에렌을 포함한 벽 안 인류는 특수한 척수액을 체내에 주입함으로써 거인화할 수 있는 유일한 민족이었다. 유미르의 백성 혹은 에르디아라고 불리는 이 민족은 과거 거인의 힘을 이용해 고대 대국 마레를 멸망시키고 대륙의 지배자가 되었으며 1700년 동안 타민족을 학살하고 탄압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학살을 안타깝게 여긴 에르디아의 왕 칼 프리츠는 거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잔인한 역사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자신의 백성인 에르디아인을 파라디 섬으로 이주시켰고, 3중의 방벽을 세워 세계와 단절시키는 자민족 말살 계획을 세운다. 이것이 지금의 벽 안 인류가 된 것이다.


이주하지 못하고 대륙에 남겨진 에르디아인들은 마레의 핍박과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고, 죄를 저지르면 지성이 없는 식인 거인이 되어 파라디 섬으로 보내지는 형벌을 받았다. 벽 밖의 거인의 진실은 바로 이들이 같은 민족의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에르디아로 인해 멸망했던 마레인은 도리어 이 에르디아인들의 거인화 능력을 활용하여 전 세계에서 패권을 잡았고, 이로 인해 거인(에르디아인)을 향한 전 세계인들의 증오는 점점 깊어져 갔다.



벽 안 인류를 증오하는 벽 밖 인류

     


벽 안 인류를 공격했던 거인들이 사실은 벽 밖 인류로부터 보내졌으며, 과거에 핍박받은 전 세계인들이 벽 안 인류를 악마라고 부르며 증오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자, 거인 대 인간의 싸움에서 인간 대 인간의 싸움으로 스토리가 크게 변화한다. 그냥 적인 거인만 구축하면 자유가 찾아올 줄 알았는데 자신들을 위협하는 더 큰 적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실이 드러나며, 장르/스토리의 전환과 확장이 둘 다 일어난 셈이다. 주인공 일행의 목표가 길을 잃었음은 물론이다.      


이 시점부터는 거인 및 에르디아인들의 특수한 판타지적 설정이 드러나는데, 예를 들어 지성을 가진 9명의 거인 중 <시조의 거인>을 계승한 왕가의 사람(칼 프리츠)은 모든 에르디아인의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다든가, 3중의 방벽은 수천만 명의 50m급 초대형 거인으로 이루어졌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초반과 비교해, 만화의 장르가 급격히 바뀌고 익숙하지 않은 판타지적인 설정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이쯤부터 <진격의 거인>을 하차하는 사람들이 꽤 늘어났다.




에렌 예거가 발동시킨 땅울림


주인공, 최종 보스가 되다.     



증오에 의한 복수의 연쇄를 완전히 끝낼 유일한 방법은
증오의 역사를 문명째로 이 세상에서 없애는 거야.

-에렌 예거-



이거야말로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다.

인류의 절반을 무차별 학살하는 소년만화 주인공을 본 적이 가.


세계의 진실이 드러난 시점에서 작중 인물들은 크게 3가지 부류로 나뉜다. 학살 받은 과거로 인해 에르디아인을 증오하는 전 세계인, 에르디아인을 사멸해 거인의 공포로부터 세계를 해방하고자 하는 에르디아인, 에르디아인의 존속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에르디아인.     


주인공인 에렌은 3번째의 입장을 강경하게 고수한다. 처음부터 작중에서 에렌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자유이다. 작품 자체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최종장에 들어서서 에렌은 타인에게 자유를 뺏길 바에는 자신의 자유를 위해서 이것을 방해하는 모든 생명을 구축하겠다는 입장을 보인다. 대화하는 것만으로 자유를 되찾기에 에르디아인을 향한 전 세계의 증오는 너무나 깊었고 타당했으며, 전 세계인에게 파라디 섬은 그저 멸절의 대상일 뿐이었다. 에렌은 학살은 안 된다는 도덕적인 말로는 더 이상 파라디 섬 인류의 존망을 사수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벽 밖의 세상을 문명째 없애야 한다고 결심한다. 그 결심에 따라 결국 시조의 거인의 능력을 이용해 3중 방벽에 잠들어 있는 수천만 명의 50m급 초대형 거인을 깨워 전 세계를 짓밟는 ‘땅울림’을 발동한다. 파리디 섬을 제외한 전 인류의 학살을 시작한 것이다. 그야말로 충격적인 선택이다.


어떻게 주인공이 이런 극단적인 사상을 갖고 대학살을 저지를 수 있나 싶지만, 작가는 이미 작품 초반에 이러한 주인공의 성향을 내비친 바가 있다. 바로 9살 때 미카사를 납치한 강도들을 몰래 뒤쫓아가 난도질하여 살해했던 사건이다. 이런 자식들은 이렇게 돼야 마땅하다고 울부짖는 에렌의 대사에서 자신의 자유를 빼앗은 상대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주인공의 사상을 내비쳤다고 본다. 성장 과정에서 그 대상은 강도, 거인, 마레인, 전 세계로 발전했을 뿐이다. 당시 어린 주인공이 이런 식으로 인간을 살해해도 되는 걸까? 라고 가볍게 의문을 품었던 사건이 10년이 지난 지금, 모든 인류를 학살하는 주인공의 사상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장치였던 셈이다. 작가의 치밀함에 감탄한다.     



대학살을 저지르고 있는 에렌 예거



자신이 발동한 땅울림으로 벽 밖 사람들이 학살당하는 상황에서도 “이 세상에서 최고의 자유를 얻은 자. 이게 자유다.”라고 말하며 소년의 모습으로 밝게 웃고 있는 장면에서는 자유를 향한 주인공의 광기까지 보이는 듯하다.     


소년 점프나 소년 매거진에서 모험, 전투를 통해 동료들과 성장하는 왕도물이 주인 경우가 많지만, <데스노트>처럼 주인공이 최종 보스인 만화도 드문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인류를 모두 없애버리는 전대미문의 대학살을 저지른 장본인이 주인공이라는 점, 독재와 탄압이 되풀이된 역사의 비극이 낳은 결과라는 점이 차별화되는 부분이라고 본다. <코드기어스>의 주인공처럼 전 세계의 원망을 자신에게 돌림으로서 세계의 평화를 찾는 전개로 향할 것인지, 혹은 새로운 반전을 보여줄 것인지 마지막까지 아주 손에 땀이 쥐어진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모호성     


처음부터 만화를 본 사람들은 벽 안 인류의 시점에서 그들이 당한 학살과 절망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하지만 몇백 년 전까지만 해도 벽 안 인류와 벽 밖 인류의 입장이 전혀 달랐다는 점이 이 만화의 포인트이다. 에르디아인은 과거에 학살뿐 만 아니라 민족 정화까지 강행했으며, 타민족들이 현재의 벽 안 인류 이상으로 고통받았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명백한 피해자였던 마레가 에르디아인을 이용해 다시 세계를 독재하고 벽 안 인류를 공격하므로써 말 그대로 증오와 복수의 연쇄가 계속해서 이어지게 된다.     


마레에서 파라디 섬의 인류들을 악마라고 교육받고 세뇌당한 에르디아인들은 같은 에르디아인임에도 벽 안 인류를 증오하며, 마레에게 인정받기 위해 ‘선량한 에르디아인’이 되고자 노력한다. 시조의 거인을 탈환하기 위해 파라디 섬에 잠입하여 벽 안 인류를 공격한 라이너, 애니, 베르톨트도 악마라고 생각했던 파라디 섬의 인간들이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음을 깨닫고, 정신 분열을 겪을 정도의 죄책감을 느낀다.      


초반부에 라이너, 애니, 베르톨트를 배신자라고 격렬하게 비난했던 주인공 일행도 결국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벽 밖 인류를 공격하고, 자신들끼리 내분을 겪으며 동료를 살해하는 등 이 침입자들과 같은 노선을 밟게 되며 적군인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선악이 비교적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던 기존의 소년만화와 달리, <진격의 거인>은 서사가 진행되며 되풀이되는 학살과 증오의 역사 속에서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판단하기 점점 어려워진다. 그리고 이렇게 판단하기 어려워지도록 독자들을 설득하는 스토리텔링과 치밀한 인물의 입체성, 관계성이야말로 <진격의 거인>이 명작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캐릭터의 반전성, 그 외     


작가는 모든 등장인물의 갈등과 욕망에 대해 그려내며 캐릭터의 입체성을 한껏 살린다. 예를 들어 조사병단 단장 엘빈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인간’이라는 정의로운 캐릭터성을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 인성, 실력, 정의감 그 무엇 하나 인류를 위해 부족함없는 완벽한 단장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벽 안의 역사에 의심을 품었다는 이유로 중앙 정부에 살해당한 아버지로 인해 세상의 진실을 알아내겠다는 자신의 개인적 꿈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인물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며 초반에 엘빈에게 부여된 캐릭터성이 부서진다. 작중 엘빈은 누구보다 이기적인 이유로 병사들을 이끌고 있었기 때문에 사명감만으로 인류를 위해 죽어가는 동료들 속에서 죄책감을 느끼며 주변뿐만 아니라 자기자신까지 속이는 인물로 탈바꿈한다.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단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작가는 이처럼 꿈을 좇는 소년으로서의 순수함과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이라는 양면성을 통해 캐릭터에게 입체감을 부여함으로서 이야기에 깊이를 더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이외에도 보는 내내 충격받을 만한 수많은 떡밥과 반전이 등장하기 때문에 치밀한 짜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을 것을 추천한다. 거인을 구축하여 인류가 자유를 되찾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초반부에서 주인공이 모든 인류를 학살하게 되는 순간까지. 반복해 읽을수록 작가의 준비된 치밀함에 놀라게 되는 작품이다.




. 강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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