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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질시스터즈 Apr 19. 2021

자퇴하려고 PPT 발표를 하다

내 고등학교 흑역사

| 철이 없었죠, 세계 여행하려고 자퇴한다고 했던 자체가


내 인생 흑역사를 꼽자면 고등학교 때, 돌연 자퇴를 하고 세계 여행을 다니겠다고 부모님께 PPT 발표를 했던 때가 아닐까 싶다. 이 일을 완전히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졸업 후 모교를 방문했을 때 담임 선생님께서 상기시켜주셨다. 잊고 있었던 치기 어린 모습을 전해 들었을 때의 민망함이란…….


고등학교도 순탄히 졸업해 원하던 학과가 있는 대학으로 진학도 했고, 나름 원하던 일들을 끼워 맞춘 듯 착착 밟아가고 있는 현재로선, 오히려 고등학교 자퇴를 했을 내가 상상이 잘 안 간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은 뜻밖에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왜 선생님은 그 나이에 그런 생각을 못 해봤을까."


요새 학생들은 내신 성적, 수능 성적만 고민한다며 선생님은 학생들이 세상을 참 좁게만 바라보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물론 그렇게 좁은 세상만 비춰주는 어른들의 영향이 큰 탓도 있겠지만, 어쨌든 담임 선생님이 그 당시 내 생각을 치기 어린 생각으로 치부하시지 않으셔서 내심 놀랐다.


| 고등학교 때 겪은 딜레마


나라고 해서 처음부터 자퇴를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하는 일이 즐거웠다. 나는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얻는 보람과 선생님과의 상호 작용할 때의 재미를 아는 학생이었다. 노력한 만큼 그 성적이 뚜렷하게 반영되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러다 완벽히 공부만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산골짜기 기숙형 고등학교에 선발돼 진학하게 되었다. 휴대폰 금지, 연애 금지를 비롯해 밥 먹을 때는 영어 단어장을 식판 옆에 두고 외워야 하는 게 불문율인 학교였다. (지금 보니 웹툰 <재수 일기>에서 본 어느 기숙형 재수 학원과 유사한 것 같다.)


모의고사를 치는 고등학교 교실 (출처: 전북도민일보)


1학년 4월에 처음으로 사설 모의고사를 친 게 떠오른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부모님 면회를 앞두고서, 성적표를 받은 반 친구들은 모두 부모님이 성적을 보면 혼낼 거라고 아우성이었다. 이건 그냥 모의고사일뿐인데, 혼이 난다고 난리를 치는 게 나는 와 닿지 않았다. 그리고 친구들의 말을 의식하며, 나도 부모님께 성적을 털어놓았지만 우리 부모님은 내 예상대로 별 반응이 없으셨다.


그렇지만 학교에 있을 때만큼은 누구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면회 시간마저 과외 선생님을 불러 차 안에서 몰래 공부한다더라, 또 누구는 11시 소등 이후 공부를 더 하고자 기숙사 방 화장실이나 옷장에 숨어들어 공부를 한다더라, 하는 식의 이야기는 곧잘 들려왔다. 성적에 개의치 않고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고 하는 부모님 곁에서 자란 나는 열 경쟁된 고등학교의 학업 분위기는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 내가 되고 싶었던 건


내가 고등학교 생활을 통틀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일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고득점 수학 문제를 풀지, 비문학을 빠르게 읽어나갈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인생을 원하는지 고민하는 이상한 애였던 것이다.


당연히 밤늦게까지 면학실에 내내 갇혀서 문제집을 풀어야 하는 신세로는 인생의 숙제를 풀기는 어려웠다. 휴대폰 사용도 안 되는 환경이다 보니 나는 나름대로 국어 선생님께 부탁해 철학 책 스무 권을 빌려 읽기도 하고, 도서관에 곧잘 가서 의문을 해소해줄 책들을 찾아 읽었다.


그중 내게 가장 와 닿았던 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였다. 내 존재 이유는 다른 사람의 바람대로가 아닌, 나 스스로가 매여있기로 결심한 것으로부터 발견하고 싶었다. 이런 나를 보고 면학실 옆자리 친구는 왜 이렇게 노느냐며 핀잔을 줬고,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나 2학년 진로 담당 선생님은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대학을 못 갈 거라고 일침을 놓 하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보통의 고등학교 면학실 (출처: 애기뚱땡이님 블로그)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진로 상담과 책만으로는 진로나 학과를 고민하는 데에 한계가 컸다. 그래서 나름대로 관심 분야의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의 이메일을 알아내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며 조언을 구했다. 그러던 중 한 애니메이션 회사의 대표님께서 회사에 찾아와 인터뷰를 하는 건 어떻겠느냐고 회신을 주셨다.


그렇게 찾아간 가산디지털단지의 한 애니메이션 회사. 대표님은 회사 내부의 업무 환경을 소개해주셨고, 인터뷰할 시간을 내주셨다. 대표님의 말을 통해 나는 내가 바라던 창의적인 직업군을 위해서는 대학 졸업장보다는 오히려 세상을 누비며 얻는 경험이 더 클 것이라는 조언을 들었다. 심지어 대표님의 아들 분은 나와 비슷한 또래인데 세계를 여행하는 대안 학교에서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내 인생을 위해 막연히 입시 공부를 하는 것보다 자퇴를 통해 얻는 경험이 더 크지 않을까 크게 동요되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자퇴 후 할 일에 대한 계획을 세워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했다. 그리고 부모님을 모셔다가 앉힌 뒤 노트북으로 슬라이드를 넘겨 가며 나의 자퇴 목표에 대해 차분히 설명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어떤 내용으로 자료를 구성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사실은 세상 물정 모르는 고2가 떠올릴 법한 세계 여행 도전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발표를 묵묵히 들으시던 부모님은 잠시 생각하신 뒤 그래도 내가 고등학교는 졸업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그 말을 들으니 부모님 말씀도 동감이 되어, 나는 다시 학교를 다니기로 했다. 사실 일반적인 자퇴 사유처럼 학교를 그만 둘 이유는 따로 없었으므로 자퇴 일은 해프닝처럼 지나갔다. 뭐 이후에도 미대를 가겠다며 미대 준비반에 들어갔다가 나왔고, 또 고3 때는 그런 관심 분야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학과를 가겠다며 다시 목표를 잡기도 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 나도 정답은 모르지만


초원 위 경주마 (출처: 뉴스퀵)


모교를 방문할 때마다 고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의 질문을 받아주거나 상담을 해줄 기회가 종종 있었다. 담임 선생님 말씀처럼 다들 내신 성적과 관련한 질문들만 물어왔다. 어쩌면 인생의 방향은 모르더라도 일단 대학 입학부터 하고 나서 생각하는 것도 누군가에겐 맞는 방법일 수 있겠다. 어느 게 더 나은 삶인지는 나는 두 가지 삶 모두 살아보지 않아서 정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요새는 그런 생각을 한다. 그때 미리 방황하고 고민했기 때문에 이제는 그런 고민을 덜하고 달려 나갈 수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인생의 큰 숙제를 어느 정도 풀어두었기에 나아갈 목표에 집중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고 있다.


너는 초원을 달리는 야생마
어느 날부터 경주마로 길러지고
너는 지금 트랙을 달리고 있다

경주마가 할 일은
좋은 사료를 먹고 좋은 기수를 만나
레이스에 앞서는 게 아니다

경주마가 할 일은
자신이 달리고 있는 곳이 결국
트랙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리고
트랙을 빠져나와
저 푸른 초원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 박노해, '경주마',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글. 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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