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동안 매일 10km를 조깅한다고 외적으로 아주 대단한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당시에 일상을 짓누르는 우울감을 극복해보고자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목표를 정해 놓지 않고 마음이 내키는 만큼 뛰었다. 노래 한 곡 들을 동안 뛰고, 한 곡 들을 동안 걷는 방식으로 운동했는데 그런 식으로 뛰다 보면 10km가 생각만큼 긴 거리는 아니었다. 전부 뛰는 데는 1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중간중간 체대생인 친구와 함께 조깅을 하기도 했는데, 그 친구는 내리뛰기만 해서 따라가기 좀 벅찼던 기억도 있다.
이렇게 꾸준히 100일 동안 뛰던 것도 벌써 2018년도의 일이다. 이 글에서는 그 시간 동안 내가 느꼈던 여러 변화에 대해 솔직히 적어보려 한다.
조깅 초반 부, 러닝 어플 스크린샷
1. 근육 1.5kg 증가, 지방 1.5kg 감소
많이 뛴 것치고 기대보다는 적은 변화였다. 우선 조깅은 워낙 유산소 운동이라는 생각이 강해서 인바디를 하기 전까지 근육이 늘 것이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깅을 하다 보면 몸에 힘이 꽤 많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달리는 동안에 몸에 중심을 잡기 위해 복부와 종아리, 허벅지 쪽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그런지 근육량이 평균 미만이었던 나는 오히려 근육이 늘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 다이어트는 식이요법이 병행해야 성공하는 모양이다. 꽤 많이 달렸다고 생각했는데 철저한 식이 관리를 하지 않았더니 조깅만으로는 지방이 많이 줄지 않았다.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차라리 경보가 훨씬 효과 있을 것 같다.
2. 신체 건강 증진
너무 당연한 말이라서 하품이 나올 수도 있지만, 조깅을 시작하고 나서 말 그대로 훨씬 건강해졌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조깅을 시작하기 전의 나는 우울감으로 몸이 굉장히 약해져 있었다. 고기를 먹으면 소화를 못해서 주에 3번은 구토를 했었고, 스트레스성 위염과 궤양을 한 번에 걸려 앓아누운 적도 있다. 당시에 궤양을 연달아 3번이나 걸려서 의사 선생님이 한 번만 더 궤양에 걸리면 십이지장이 녹아서 수술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다행스럽게도 조깅을 시작한 이후로 다시 궤양에 걸리는 일은 없었다.
현저히 떨어졌던 소화 기능, 만성피로, 일상생활에 부족했던 지구력과 체력 모두 조깅을 시작하면서 정말 많이 나아졌다. 당시에 조깅을 하는 것 외에 생활패턴이 이전과 똑같았던 것을 생각하면 모두 조깅이 만들어낸 변화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내가 매일 달리던 양재천 (출처: 사랑방님의 블로그)
3. 우울감 해소
나는 6개월 정도 꾸준히 홈트레이닝을 한 적도 있고, 2달 정도 헬스장을 거의 매일 출석한 적도 있다. 그 운동들을 할 때마다 항상 나름의 좋은 점이 있었다. 그런데 밤바람을 맞으면서 달리는 것만큼 우울감 해소에 효과적인 것은 아직 찾지 못했다.
탁 트인 야외에서 적당히 숨이 찰 때까지 뛰고 나면, 딱 기분 좋을 정도의 고양감이 든다. 조깅은 그 고양감 자체만으로 할만한 가치가 있을 정도다. 지금까지도 그 기분을 대체할 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그것은 헬스장에서 열심히 트레드밀을 뛰고, 근력 운동을 했을 때의 성취감과는 좀 다른 기분이다. 숨이 차오른 상태에서 맞는 선선한 바람은 헬스장에서는 느껴본 적 없는 상쾌함이랄까. 옆에서 주인과 산책 나온 강아지나 묵묵히 조깅하는 할아버지들과 함께 뛰는 기분도 즐겁다. 그렇게 야외 조깅을 2주 정도 하고 나면 몸과 정신에 눈에 띄게 활력이 생긴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껴야 하니 이렇게 숨을 몰아 내쉬며 운동하는 기분을 느낄 수 없어서 정말 아쉽다.
조깅을 하기 전에는 정신이 약하니 몸이 약해지고, 몸이 약해지니 정신이 약해지는 지독한 악순환에 빠져 있었다. 나는 조깅을 하면서 나를 꽤 오랫동안 괴롭히던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조깅은 일단 시작하면 머리를 깨끗이 비워주고, 무기력한 신체에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채워진 신체는 꽉 막혀있던 정신에 다시금 생기를 채워준다. 그리고 꾸준히 운동을 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자신감과 자존감이 생긴다. 그래서 조깅을 하다 보면 정신 건강에 정말 이롭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 후로 종종 무기력함이 심하다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에게 조깅을 하라고 매우 강력히 추천해 주고 있다.
4. 무릎 통증의 심화
조깅의 유일한 단점이다. 나는 졸업한 고교 체육복 바지에 일반 운동화만 달랑 신고서, 어린 나이만 믿고 무릎 스트레칭은 거의 안 한 채 무작정 뛰었었다. 그래서 그런지 1, 2주 정도 조깅을 하고 나니 무릎 통증이 꽤 심했다. 며칠은 뛰기 힘들 정도였다. 그때 제대로 관리를 안한 탓인지 그 이후에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마다 무릎이 시큰거리는 일이 많았다. 조깅을 꾸준히 오래 할 생각이라면 좋은 러닝화를 신고 무릎 건강에 각별히 신경 쓰는 것이 정말 중요할 것 같다.
좋은 산책로가 있던 동네에서 이사를 하면서 조깅은 자연스럽게 안 하게 되었다. 3년 동안 다른 운동을 하기도 했지만, 하천에서 바람을 쐬며 매일 조깅을 하던 그 기분이 그리울 때가 많다. 어쨌든 조깅은 내게 꽤 의미가 크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잘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 나만의 치트키 같은 느낌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예전처럼 뛰지 않는 나는 평범하게 게으른 사람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가끔 기운이 없을 때마다 “다시 저 밤길을 뛰면 분명 또 좋아질 거야.”라는 생각을 한다.
언제든지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아는 것. 어딘지 삶에 믿는 구석이 하나 있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