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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질시스터즈 Mar 28. 2021

하여간 취준생은 죄가 많다

대답할 수 없는 수많은 질문들


- 귀사에 지원한 이유와 입사 후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꿈을 기술하시오.
- 과제 수행 시 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던 경험에 대해 사례를 기술하시오.
- 도전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해본 경험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시오.
- 직무 관련 전문 경험을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원 직무에 적합한 사유를 구체적으로 서술하시오.

- 왜 반드시 당신이 뽑혀야 하나요?


키보드 위에 가지런히 얹어진 손가락은 한참을 방황한다. 손가락은 준비가 되었는데 어쩐지 쓸 내용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질문을 보면서 아주 한참 동안 내 인생을 돌아보다 자문한다.


하, 나 뭐하고 살았지.







| 당신의 상반기는 안녕하신가요.


본격적으로 공채가 쏟아지는 3월, 취준생의 기분은 늘상 막막함이 앞선다. 나를 지켜주던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벗어나,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했다는 불안감과 나보다 더 나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느끼는 상대적 초라함.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은 반드시 시간과 비례해 우리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짓누른다.


나도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며 이불 속에서 뒤척이는 날들이 점점 많아졌다. 다들 비슷한 마음인지 대규모 취준 카페에는 하루에도 수십 개씩 자신의 스펙을 확인받으려는 글들이 올라온다. 그런 글을 읽으며 다수의 불안에 안심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엄청난 스펙에 기죽기도 한다.


출처 unsplash


우리의 취준에는 필요한 것이 아주 많다. 지원하는 회사가 몇 개인데 기업, 산업, 직무를 모두 분석해야 하고, 적절한 지원동기도 준비해야 한다. 대외활동, 공모전, 프로젝트, 인턴 등 직무에 필요한 경험은 물론 어학을 포함한 기타 자격증은 기본이다. 우리는 대학을 다니면서 조원들이랑 갈등도 좀 겪어야 하고, 몇 번의 도전을 통해 확실한 성과도 얻어내야 한다.


기업들은 계속해서 우리가 얼마나 도전적이고 준비되어 있는 인재인지 질문한다. 그래서 취준생은 그 어떤 때보다 자신의 인생을 자세히 돌아볼 일이 많다. 나는 ‘자소서거리’를 찾기 위해 대학을 입학하는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일들을 샅샅이 적어 보기도 했다. 수강했던 강의, 조별 과제 같은 사소한 것부터 프로젝트와 인턴 경험 등등. 내가 해왔던 모든 것을 정리하며 놓친 것은 없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다. 우리는 기업이 원하는 인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이 중 몇몇 경험을 아주 예쁘게 포장하고, 수많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기억에 남을 수 있는 필살 답변을 고민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업이 내게 묻는 그 많은 질문에 나만의 확고한 정답을 말할 수 없을 때면,

나는 왠지  지난 시간들이 아주 초라하게 느껴진다.



| 우선, 저는 아닙니다.


나는 그동안 특정 직무를 위해서보다는 '그냥' 하고 싶어서 한 것이 더 많았고, 도전을 했지만 명확한 결실을 맺지 못한 적도 많았다. 성격이 무던해 조원들과도 큰 문제가 없었다. 고심해서 직무를 골라 시작한 인턴은 이 길이 진짜 맞는 건지 도리어 혼란만 잔뜩 겪기도 했다. 그래서 기업이 던진 질문을 보다 보면 '어? 나 왜 이런 거 안 했지.' 싶을 때가 많다. '아, 2년 전으로 돌아가면 진짜 잘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며 후회스러운 기분으로 스스로를 자책한다.


기업이 던진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내 시간들은 정말 초라한 걸까. 이 질문은 어렵다. 분명히 매 순간 충실하지 않았던 시간이 있었고, 그래서 나는 어쩌면 눈앞의 많은 기회들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취준은 그런 내 시간들을 딱 꼬집어 지적받는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나의 불성실한 시간들이 발가벗겨진 기분이랄까.


궁지에 몰린 우리들은 이 불확실한 취준 기간을 어떻게 잘 버텨낼 수 있을까.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요사이 나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을 직접 부딪히고 경험하며, 나만의 정답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다행인 점은 평생 취준생인 사람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대학 생활은 기업을 들어가기만을 위한 삶은 아니었으니 잠깐의 오답이나 지각이 그리 혼날 일은 아니다. 


그러니 이 글을 읽은 모두가 더 이상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기를.



글. 강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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