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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질시스터즈 Jul 25. 2021

별똥별 세던 그 밤을 못 잊어서

YES24 <나도, 에세이스트> 21회 가작 수상작


“스무 살이라고 했죠? 부럽다. 젊을 때 여행 많이 다녀야 돼요.”


방학 때 근무한 회사에서 만난 디자이너님이 여행을 많이 해보라고, 나중에 그 기억으로 회사 생활을 버틴다고 조언해준 적이 있다. 그땐 그 말이 와닿지 않았는데 이제는 알 것도 같다. 퇴근길에 우연히 들은 노래에서 유성이 무수히 떨어지던 애리조나주에서의 밤을 떠올리며 위안을 받은 것을 보면 말이다.


대학 시절, 친구 세 명과 라스베이거스를 거쳐 그랜드 캐니언 투어를 했을 때의 일이다. 미서부에 가면 그랜드 캐니언을 꼭 봐야 한다는 말만 듣고 예매하느라 투어가 생각보다 힘들 줄은 몰랐다. 꼭두새벽부터 시작된 투어 일정은 유명한 이 협곡, 저 협곡을 줄기차게 다니느라 좁은 승합차에 다른 관광객들과 끼여서 선잠을 자야 했다. 승합차에서 내리라고 하면 비몽사몽간에 모래 먼지가 불고 살갗이 익어버릴 것 같은 살인적인 햇빛 아래를 걸어가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말발굽 모양의 계곡과 절벽이 있는 홀스슈밴드나, 깎아지른듯한 아찔한 높이의 협곡은 자주 보는 풍경이 아니므로 ‘와, 대단하다’ 정도의 감흥은 들었지만, 그 절경들은 너무 멀어서 오히려 그림을 보는 듯 현실감이 없게 느껴졌다.


정신없고 체력적으로 지치는 투어 첫 일정은 금세 지나갔다. 숙소에 도착해 저녁을 먹은 후에 가이드님께서 그날의 마지막 일정이 남았다며 숙소에서 떨어진 캄캄한 곳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가이드님이 랜턴을 끄고 하늘을 올려다보라고 했을 때, 그 웅장한 협곡 앞에서도 동요하지 않았던 마음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눈앞에 청보랏빛 하늘에 흩뿌려진 수천, 수만 개의 별들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한국에서도 맑은 날 종종 별을 보러 간 적이 있지만, 불빛 하나 없는 오지 한가운데에서 보는 밤하늘은 차원이 달랐다.



별이 쏟아지던 그날과 같은 밤하늘 (출처: 언스플래시)



별을 배경으로 한 기념 촬영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서도, 마음이 세차게 풀무질하던 탓에 그 광경을 다시 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피로한 일정 탓에 모두 잠자리에 드는 것 같아 혼자 신발을 꿰고 있는데, 친구들도 함께 나가겠다고 했다. 우리는 캄캄한 곳을 찾아 나란히 누워 하늘을 올려다봤다. 한국에서는 한번 보기도 드문 유성이 틈만 나면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탄성을 내지르며, 별똥별이 떨어질 때마다 손으로 짚어가며 서로에게 알려주었다.


별똥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말. 우리는 무수히 많은 소원 종이를 가진 것처럼 어떤 소원을 빌면 좋을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늘이 가깝고 별이 멋지게 빛나고 있어 어떤 소원과 꿈이든 이뤄줄 것만 같았다. 영 앤 리치(Young&Rich)를 소망하는 우리들은 별똥별이 떨어질 때마다 ‘돈, 명예, 사랑’이란 소원을 구호처럼 함께 외쳤다. 그러면서도 내심 으로의 나날이 지금만 같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이 밤 풍경과 어울릴만한 노래가 휴대폰 속에 있었다. 나는 뉴에이지 목록을 찾아 틀었고, 첫 번째 곡으로 류이치 사카모토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가 흘러나왔다. 평소에도 아끼던 곡이지만, 잔잔하고 섬세한 곡조는 그 순간을 어느 때보다도 낭만적으로 만들어주었다.


“나중에 지금 들었던 이 노래 제목 꼭 알려줘.”


친구는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 노래를 듣는다면 이날의 감동이 떠오를 것 같다고 덧붙여 말했다. 친구의 말 때문인지 나도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땅바닥에 누워서 바라보았던 유성이 가득한 하늘, 소원을 외치던 우리들이 달뜬 마음이 청춘의 한 페이지처럼 머릿속에서 되감아진다.


아쉽게도 나는 영 앤 리치는 되지 못한 채 회사에 들어가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서 부단히 배우려고 애를 쓰지만, 모든 날들이 순탄하지는 않아 때로는 무력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하지만 그 노래에 기록된 그 낭만적인 밤을 떠올리면 괜히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가 샘솟는다. 꼭 여행의 방식이 아니더라도 초콜릿 한 조각 같은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둔 젊음은 언젠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힘을 더 빨리 얻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며 오늘도 퇴근길에 그 노래에 다시 잠겨본다.






YES24에서는 매달 <나도, 에세이스트>라는 에세이 공모전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감사하게도 이 글로 '내 인생의 노래 한 곡'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21회 공모전에서 가작을 수상하였습니다. 김신회 작가님께서 남겨주신 심사평 함께 소개드립니다. :)


<별똥별에 소원 빌던 그 밤을 못 잊어서>를 읽다 보니 자연스러운 흐름 덕분에 서서히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어요. 마치 제가 그 여행을 함께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요. 시간 순서대로 펼쳐지는 글은 자칫 심심하게 느껴지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글쓴이의 감상과 상황 설명, 대화와 풍경묘사가 적절히 어우러져 오히려 다채롭게 다가왔어요. 읽는 내내 풍성한 색깔들로 이루어진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로드 무비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상황과 풍경을 드라마틱하게 과장하지 않은 문장들 덕분에 글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글. 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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