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흥했어요 / 응원해요 / 망했어요
다사다난했던 2017년, 웹툰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도 각종 소셜미디어에서 터져나오는 소식들은 마찬가지로 다사다난할 2018년을 예고하는듯 하다. 그래서 준비했다. 2017년의 흥한, 망한, 응원하고 싶은, 그리고 망했으면 하는(...) 소식들을 철저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꼽아보았다.
① 흥했어요 : 오늘의 우리만화상
매년 11월 3일 만화의 날에는(사) 한국만화가협회가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함께하는 시상식이 열린다. 매년 열리는 행사지만, 올해는 조금 특별한 만화들이 수상했다. 먼저 다섯 작품 모두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만화라는 점이 눈에 띈다. <단지>에서는 가정폭력 피해자, <아 지갑놓고 나왔다>는 비혼모와 어린아이, <캐셔로> 가난한 청년,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은 이민자와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며느라기>는 며느리를 주인공으로 보여준다.
특히 눈에 띄는건, 만화가협회장상과 문체부장관상을 동시에 탄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다. 이 웹툰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등의 소셜미디어에 연재된다. 흔한 웹툰 플랫폼에 연재하는 방식이 아니다. 플랫폼에 연재하는 웹툰은 아무래도 자유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고료를 받고 연재하는 작가들에겐 분량이나 퀄리티, 편집부의 존재 때문에 아무래도 작가 본인이 원하는대로 만들기 힘들수밖에 없다. 윤태호 만화가협회 회장은 심사평에서 '올해는 특별한 해' 라며 <며느라기>가 특별한 작품임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다. 올해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관통하는 또다른 키워드는 '여성'이다. 단독수상한 단지, 돌배, 미역의효능, 수신지 작가 모두 여성이다. <캐셔로>를 그린 'team befar'는 남녀 작가가 협업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도 여성이 주를 이룬다. <단지>, <며느라기>등 여성의 자기고백적인 서사를 그린 작품들이 눈에 띈다.
2017년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한 작품들은 웹툰계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곳이라는 점과 함께,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들이었기에 올해의 '흥했어요'에 꼽았다.
② 응원해요 : 웹툰작가협회
지난 몇년간, 만화가협회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다양한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지 않았고, 실제 작가들의 작품환경을 크게 변화시키지 못했거나, 작가들의 공감을 받지 못했다는 비판이었다. 물론, 재정난과 노동력 부족등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는 협회로서는 억울할수도 있지만, 완전히 무의미한 비판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2017년, 만협은 '웹툰작가협회(회장 조석)'의 발족을 알렸다. 3개월 이상 연재를 한 경험이 있는 프로 작가를 위한 협회다. 주요사업으로는 '웹툰계 주요 이슈 상시대응', '웹툰작가 노동환경 실태조사', '웹툰작가 사이버폭력 치유 프로그램 운영 및 연계'를 내걸었다. "최소한 빠른 입장표명이라도 내달라"는 목소리를 수용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웹툰작가의 직업병중 하나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많은 작가들이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지금, 사이버폭력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연계를 확립하겠다는 말은 의미가 있다.
발족 후 몇개월이 지나고, 웹툰작가협회 뿐 아니라 만화가협회에서도 눈에 띄게 달라진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민감한 계약 이슈등에 빠른 입장표명을 하고, 트위터에서 떠도는 풍문일지라도 놓치지 않고 응답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갈길이 멀다.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지만, 고질적인 인력난과 재정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두고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웹툰작가협회의 발족은 2017년 만화계에 가장 고무적인 변화중에 하나다. 최소한 빠른 입장표명으로 분명히 선을 긋는 자세는 긍정적이다. 원자화되어 각자도생하던 만화인들이 협회를 구심점으로 권익보호를 위해 한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그리고 작가들의 처우가 개선되기를 응원한다.
③ 망했어요 : 레진코믹스 정산 및
안타깝다, 참담하다는 말이 이제는 말버릇이 되어 의미를 잃어가는 것 같다. 2013년 출발한 레진코믹스는 스스로를 로켓에 비유하며 어서 올라타 함께하자고 말했다. 2015년 MG와 해외판권계약 문제가 불거졌을 때부터 좋지 않은 소문이 들려왔지만, 승승장구하는 레진코믹스를 보며 헛소문이겠거니 했다. '설마 레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2016년 웹툰판을 뒤흔든 티셔츠 사태 이후, 레진코믹스의 대응에서 작가와 플랫폼간의 마찰이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곧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2017년은 본격 폭로의 해였다. 이제는 사라진 레진 웹소설이 갑자기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가 들렸고, 심지어 몇몇 작가들은 전혀 상관없는 나보다 소식을 늦게 들었다. 뿐만 아니다. 문을 닫기 불과 얼마전 공모전에 당선되었던 작가들은 연재를 시작하기도 전에 플랫폼이 사라져버렸다. 다행히 코미코가 작가들의 연재처를 마련하겠다고 나섰지만, 레진은 '누적 적자로 인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만 대답했다.
이 기간과 맞물려 소위 '지각비 사태'가 터졌다. 월 수익의 몇%씩을 떼어가는 지각비에 대한 폭로가 터져나왔다. 작가들은 크게 반발했고, 레진은 '2월까지 기한을 두고 폐지하겠다'는 말을 했다. 제도를 정비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던 대로 레진은 웹소설을 없애면서는 작가들이 미처 알기도 전에 웹소설 폐지를 결정했다. 연재중, 연재종료, 연재예정 작가별로 내용이 다른 웹소설 폐지는 순식간에, 그것도 비밀리에 결정했으면서도 작가들의 계약서 갱신만 하면 되는 지각비 폐지는 2월까지 늦춰야 한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이다.
여기에 <월한강천록>을 그린 회색 작가와 레진코믹스 초창기부터 꾸준한 팬층을 가진 <달댕이는 12년차>, <거울아 거울아>등을 그린 다드래기 작가에게 가해진 가혹한 처우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며 분노가 점점 임계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12월 4일 밤, 회색 작가는 해외 수익을 2년만에야 지급받을 수 있었다며 긴 글을 통해 레진코믹스가 지속적으로 거짓말을 해왔다고 폭로했다.
작가들은 이전부터 정산금액을 확인할 수 있는 장부 원본의 공개를 요구해왔지만 무시당하거나 수정된 장부를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작가 본인들의 메일과 전화에도 답변을 하지 않고 있어 회사의 입장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도 했다. 정산문제는 레진의 재무제표와 세금포탈, 또는 횡령 문제와도 얽힐 수 있어 사실관계가 분명히 확인되어야 하는 지점이다.
이에 앞서 만화가협회는 "지각비 폐지는 당연하다"는 논평을 내고, 1) 피해 작가들에 대한 보상방법, 2) 운영상의 과실, 서비스 오류등으로 수익악화등의 피해를 입었을 경우 보상정책의 여부, 향후 계약서 명시 여부, 3) 2월로 폐지시점을 설정한 경위 등을 공개질의 하였으나 레진코믹스는 여기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작년 여름, 레진코믹스는 작가들에게 '소셜미디어 사용을 자제해달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낸 일이 있다. 회사에 악영향을 끼치고, 다른 작가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자제해달라는 말이었다. 당시에는 굉장히 발빠르게 대응했던 레진코믹스는, 이번에는 만화가협회의 공개질의와 수많은 작가들의 해명요구에도 답변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신뢰는 비싸다. 이미 무너질대로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아올리기 위해선 분골쇄신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레진이 어떤 생각인지는 알 수 없다. 또한 그 안에도 선의의 피해자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콘텐츠를 판매하는 플랫폼으로서의 레진코믹스는 과연 어떻게 될지 주목된다. 분명한 것은, 2013년 로켓이라고 자신을 부르던 레진코믹스와 지금의 레진코믹스는 너무나 다른 곳이라는 점이다. 레진코믹스가 말하던 작가주의는 언제부터 작가를 죽이기 시작했는지, 더 실망하고 싶지 않다.
+라고 쓰고 몇시간 뒤, 12.6 오후 11:45 덧붙임
레진코믹스의 해명이 이 글을 쓴 뒤 나왔다. 더 실망할 수 없을 줄 알고 말한 것도 조금 있었는데, 세상에. 더 실망하고야 말았다.
전문에서 레진은 끝까지 책임을 미루고 있다. 직원복지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한 직원이 휴직을 했다면, 그건 업무를 과중하게 부여하고 컨트롤하지 못한 관리자의 책임이다. 그리고, 보통 관리자는 사측으로 분류된다.
또한 작가 해외수익이 국내수익대비 몇%인지를 밝혔는데, 계약 비밀유지 조항을 빌미로 법적 대응을 이야기하던 레진이 스스로 비밀조항을 어기진 않았나 살펴봐야 한다. 말 그대로 망했어요.
2017. 12. 23 덧붙임
레진코믹스가 작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프로모션 등에 차별적으로 선별하는 용도로 사용했고, 해당 내용은 ‘레진님’, 즉 한희성 대표가 직접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냥 망해라.
④ 망했으면 좋겠어요 : 불법 웹툰사이트
2017년 봄은 모두에게 의미가 있는 계절이었다.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당한 대통령을 볼 수 있었던 계절이기도 하다. 그 전과는 어떤 의미로든 다른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 불법 웹툰사이트에게는 폭풍성장의 계절이었다. 불법 웹툰 플랫폼 B의 경우, 4월 레진코믹스의 트래픽을 역전하더니 8월에는 거의 3배에 달하는 월간 트래픽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2017년 8월 17일 기준 B사이트의 월간 트래픽은 PV(페이지뷰)기준 4천7백만에 달한다.
피해는 심각하다. 5월을 기준으로 실제 유료수익이 줄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만화의날(11월 3일) 토론회장에서 투믹스의 정범식 팀장은 추정 400억, 단순가치 환산 1천억원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네이버 김준구 대표는 추정치가 보수적이라며, 훨씬 더 큰 피해액을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주위의 작가들이 코인수익이 줄었다고 말하는 작가들이 보였던 걸 생각하면, 전체 판으로 보면 예상보다 큰 피해를 예상해야 할지도 모른다. 네이버웹툰 김준구 대표는 "미리보기 서비스라는 수익모델을 포기하거나, 불법 사이트가 망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투믹스 정범식 팀장은"대형 포털이 아닌 유료 플랫폼의 경우 남은 시간이 2년보다 짧을 수도 있다"라고 말하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들은 웹툰을 불법으로 퍼오는 업체까지 차리고 조건만남, 불법도박 등의 광고를 받는 것을 "지속가능한 사업모델"이라고 소개하기까지 했다. 명백한 도둑질이고, 범죄행위다. 고료는 트래픽으로, 매출과 직결되는 작가의 수입이다. 그러나 작가가 아무리 작품을 그려도 플랫폼에 매출이 나지 않고, 포털에 트래픽이 발생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온라인 배포권을 가진 플랫폼이 최신성을 유지해 미리보기 수익 등을 올리는 것임에도, 그 최신성을 불법 사이트들이 가져가버리면 결제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로서 정말 안타까울 따름이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주변에 불법 웹툰사이트를 본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것, 그리고 내가 보지 않는 것 정도밖엔 없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께도 부탁드린다. 불법 웹툰 사이트에 불법으로 퍼가는 웹툰들을 보지 말아달라. 지금 당장은 즐거울지 몰라도, 결국 작가의 수익이 줄고, 웹툰시장이 축소되어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때문에 불법 웹툰 사이트들을 "망했으면 좋겠어요"에 꼽았다. 부디 이들이 망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혼란과 혼돈의 한해였다. 하지만 2017년에 발견한 문제점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2018년에는 부디 즐거운 소식들이 많이 들려오기를 바란다. 2017년 결산, 다음 특집은 <2017년에 완결한 작품 10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