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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봄 Jan 17. 2018

헬알못 지옥러들,
지옥의 참맛을 보여주마

<지옥사원> 네온비, 캐러멜 / 다음웹툰, 2017-연재중

    '네온비와 캐러멜이 돌아왔다.' 웹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어떤 뜻인지 알 것이다. <셔틀맨>, <다이어터>, <결혼해도 똑같네>, <나쁜 상사>등 이 두 작가의 히트작을 꼽자면 한손으로도 부족할 정도다. 그리고 2017년, 네온비 캐러멜 작가는 <지옥사원>으로 돌아왔다. 작품의 간단한 설정은 이렇다. 지옥은 에너지원으로 인간의 불행이 형상화된 '불행구슬'을 사용한다. 식량으로도 사용하고, 지옥의 고문장들을 돌리기 위해 동력원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지옥사원>에서 지옥의 악마들이 동력이자 식량으로 사용하는 불행구슬

    이 불행구슬은 크게 두가지 방법으로 채취한다. 하나는 자연적으로 생기는 불행구슬을 지옥으로 전송받는 것, 두번째는 그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다이버'라는 악마를 인간계로 보내 높은 등급의 인간에게 빙의시켜 더 많은 불행구슬을 생산하도록 하는 것. 그 다이버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났던 주인공 '쿼터'는 '맛'의 유혹에 빠져 폭식을 거듭하다 의심을 사고, 마침내 구마사제(퇴마를 주로 하는 신부)에게 걸려 지옥행 급행열차에 오르게 된다(집에 돌아왔다는 말이다).

인간계 탐사 프로젝트는 100번째, 쿼터를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10년, 지옥에서는 게임과 비슷한 장치를 개발, 인간 주변의 입자들을 움직여 불행구슬을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더이상 인간계로 가는 다이버는 없었다. 그러나 인간계 음식의 맛을 잊지 못한 쿼터는 자신의 팬이자 천재 소악마 루테로스의 도움을 받아 인간계로 다시한번 향하게 된다. 목적지는 이미 한번 방문한 적이 있는 대한민국. 그러나 대한민국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으으 비겁하게 팩트로 공격하다니

    하지만 제대로 된 검증절차 없이 무작정 출발한 쿼터는 높은 등급의 인간에 들어가려고 노력하지만, 연료가 떨어지고 로켓이 고장나 보이는 아무 인간에게나 들어간다. 그 인간의 이름은 고순무. 원룸(이라고 쓰고 고시원이라고 읽는)에서 살며 16시간을 일하는 고졸 남성이다. 한마디로 아주 낮은 등급의 인간의 몸에 빙의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영혼마저 사고를 당해 날아가 버린다. 쿼터는 거기서 불행구슬을 집어삼키고, 불행구슬의 힘으로 육체의 죽음만은 막은 상태가 된다.


    지옥에서 온 악마인 쿼터는 지옥의 법도를 어기고 인간계에 왔으므로 지옥의 도움을 구할수도 없는 상태에서 홀로 생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불행구슬을 소모해 악마의 능력을 발휘하는 기계도 고장나 인간 수준에선 뛰어나지만 지옥의 악마가 생각하면 하찮은 기술만을 사용하는 처지가 된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인간계와 지옥의 절묘한 대비가 빛을 발휘한다.

    지옥은 최소한 불법으로 인간계로 간 쿼터를 전 지옥의 힘을 모아 귀환시킨 후 처벌하려고 한다. 내버려 두어 소멸시키기보다, 처벌하더라도 지옥에 데려와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최소한 지옥의 악마들은 맛없는 불행구슬을 먹을지언정, 소악마인 루테로스조차 지하실에서 로켓을 개발할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인간 고순무가 일하는 곳은 고급 음식점의 발렛파킹 대기소, 자는 곳은 침대와 책상을 빼면 제대로 쉴 곳조차 없는 고시원이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예능의 요소가 될 뿐이라는 말에 쿼터는 '적어도 지옥은 능력대로 악마를 대우한다'고 분개한다.


    지옥에서 온 악마에게도 이곳은 가혹한 곳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악마들조차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가 살고있는 이 땅은 더한 지옥이라는 말도 된다. '헬조선' 담론이 누군가에겐 담론일지는 몰라도 우리에겐 삶이다. 이 나라에선 1년에 약 1만 5천명, 하루에 약 41명, 한시간에 약 1.7명이 스스로 삶을 내려놓는다. 이 글을 보는 우리들의 주변에는 스스로 삶을 내려놓은 사람들을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스스로 삶을 끝낸 모든 이의 명복을 빌고, 남겨진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다. 이처럼 거의 전쟁 수준으로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는 땅에서, 순진한 악마가 살아남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쿼터는 악마다. 우리가 마음 속에서만 하는 말들을 입밖에 낼 수 있는 존재다. 

"나만 아니면 된다." 우리가 마음 속에서 하고 있지만, 차마 내뱉지 못하는 말이다.

    재미있는 건, 영웅의 열두 단계에서 두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모험에의 소명'이 쿼터에겐 '먹을 것에 대한 욕망'이었다는 점이다. 서양에는 '너는 네가 먹는 음식으로 이루어진다(You are what you eat)' 이라는 말이 있다. 지옥에서 악마들은 불행구슬을 먹고 산다. 불행으로 이루어진 악마들은 새로운 도전보단 무사안일을 원하고, 그 중에서 쿼터는 오로지 먹을 것에 대한 욕망만으로 인간계에 뛰어든다. 반면, 인간은 음식을 먹지만 불행구슬을 생산해낸다. 이 대비가 절묘하다. 그렇다면, 쿼터는 과연 어떤 운명을 겪게 될까? 지옥의 새바람을 불고 올지, 아니면 인간계에 남게 될지 궁금해진다. 네온비x캐러멜 작가의 작품인 만큼, 신선한 충격을 기대하며 이 작품을 보게 된다.


    <지옥사원>은 지옥에서 인간계로 내려온 악마를 주인공으로 지옥과 우리가 발 붙이고 사는 이 땅의 대비를 절묘하게 보여준다. 20-30대로 현재를 살고 있는 '흙수저'들에게 헬조선 담론이 어떻게 들리는지를 악마의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예전 구마사제였던 퀸시아노, 류영로의 존재 등을 통해 현실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도 잊지 않는다. 교조적이거나 교훈적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빈틈없는 구성과 허를 찌르는 웃음으로 독자들의 스크롤이 멈추지 못하도록 만든다. 헬조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우스운 악마들의 모습에서, 왠지모를 위로를 받게 되는 씁쓸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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