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교원교육

정책 과잉의 시대, 학교의 위기

'가르치고 배우는 장소로서 학교' 더 무엇이 필요한가

by 교실밖

교육이 정치화됐다는 말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화의 양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복잡하고 깊어졌다. 특정 분야의 교육을 강제하는 법률들이 의무교육의 이름으로 쌓이면서 현장은 여유를 잃었다. 교육과정을 통해 구현되어야 할 삶의 가치들이 법제화되면서 피로감이 확산하였고, 교육은 형식적 처리의 대상이 되는 나쁜 선례를 남기고 있다.


선출직 교육감 시대가 열리면서 상황은 더욱 가속화됐다. 교육감의 성향과 관계없이 임기 내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은 정책 과잉을 불렀고, 각 교육청에서는 정책 생산과 정책 정비가 시소게임처럼 반복됐다. 새로운 교육감이 취임하면 전임자의 정책을 폐기하고 자신의 이름을 단 정책을 만들어냈고, 현장은 그때마다 혼란을 겪었다.


교육청 차원의 정책 과잉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교육을 법과 절차로 규율하려는 흐름이 강화됐다. 학교폭력예방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학교 안의 사소한 다툼마저 법 절차에 기대게 하면서 교육적 해결의 기회를 봉쇄했다. 교사와 학생이 대화로 풀 수 있던 문제가 이제는 조사와 심의, 처벌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관계는 회복이 아닌 단절을 향했다. 교육이 사법화하면서 학교는 점점 더 법의 논리로 움직이는 공간이 됐다.


여기에 더하여 학부모들에게 체화된 '안전 지상주의'는 또 다른 압력으로 작용했다. 아이들의 모험심과 도전 의욕을 빼앗고 오로지 시험 대비 공부에만 집중하게 만들었다. 체험학습은 사고 위험 때문에 축소되고, 신체 활동조차 안전 문제로 위축됐다. 학교는 점점 더 위험을 회피하는 공간이 됐고, 그 안에서 아이들은 실패와 도전의 경험을 잃어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교사들은 업무와 민원에 시달리면서 교권을 보호받지 못한다는 의식을 폭넓게 형성했다. 교사들은 점점 더 방어 태세를 강화했다. 모든 정책이 '업무화'하는 과정에서 '피하고 보자'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정책은 고유의 가치와 무관하게 '업무경감'이라는 우산 아래로 숨게 됐다. 교육적 의미를 논하기보다 "이 정책이 업무를 늘리는가, 줄이는가"가 판단의 기준이 됐다.


결과적으로 정책을 업무로만 바라보는 단순한 프레임이 형성됐고, '최소한'으로 교직을 수행하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현장 분위기가 형성된 것에는 일차적으로 현장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았던 정책에 책임이 있다. 오랜 시간 교육정책을 다루었던 입장에서 깊이 반성한다. 정책과 회피의 악순환 고리 속으로 들어선 지금 나의 반성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글이라도 남겨 참고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교육은 희망이 있는 것일까. 최근 내가 만났던 학교의 리더와 교사들은 더 할 수 없는 냉소와 회의에 빠져있었다. 교육적 해결을 모색하는 교사들조차 힘이 빠지는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공동체를 회복하고 학교를 학교답게 기능하게 하는 방법을 토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몇 가지 제안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책의 생산을 멈추고 정비에 집중해야 한다.


이 문제는 내가 교육청의 정책 담당 장학관으로 근무할 때 온 힘을 기울였던 과제 중 하나이다. 그때 정책정비위원회가 모토로 삼았던 내용이 “새로운 정책을 만드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존 정책들을 정비하고 통폐합하는 일이다”, “법제화된 의무교육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 학교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 생산의 유혹을 참고, 현장이 숨 쉴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줘야 한다. 교육감의 성과는 새 정책의 개수가 아니라 현장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교육에 집중할 수 있게 됐는가로 평가받아야 한다. 정책은 현장이 체감할 수 있고 적극적 참여를 부를 수 있는 것으로 선택과 집중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


둘째, 학교의 자율성을 실질적으로 회복해야 한다.


자율성은 관념으로만 떠드는 구호가 아니라 실천 그 자체여야 한다. 학교가 자신의 맥락과 필요에 맞게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학생들의 문제를 교육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되찾아야 한다. 학교폭력 사안에서도 경미한 사안은 학교 단위에서 교육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재량을 부여해야 한다. 법과 절차가 모든 것을 규정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대화와 관계 회복을 통해 문제를 풀어갈 수 있어야 한다. 자율성은 책임과 함께 가는 것이지만, 지금처럼 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는 구조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셋째, ‘교육의 본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다시 만들어가야 한다.


지금의 악순환은 결국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가 무너진 결과다. 학교는 지식을 전달하는 곳인가, 돌봄을 제공하는 곳인가, 안전을 보장하는 곳인가, 인성을 길러주는 곳인가. 모든 것이 학교의 책임이 되면서 정작 학교가 무엇을 중심에 두고 움직여야 하는지가 흐려졌다.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이고, 교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 본질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는 정책의 홍수도, 현장의 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학교의 개념은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다.


넷째, 교사들이 교육적 실천을 나누고 연대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가장 우려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교육적 실천을 모색하는 교사들마저 고립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책 회피의 분위기 속에서 교육적 시도는 '열심히 하는 사람'의 개인적 헌신으로 치부되고, 그것이 공유되거나 확산되지 못한다. 교사들이 자신의 실천을 나누고, 서로에게서 배우며,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형식적인 연수가 아니라 자발적 학습공동체, 실천 사례 공유의 장, 수평적 네트워크여야 한다. 개별 교사의 헌신에 기댈 것이 아니라 집단적 지혜를 모으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다섯째, 시간의 회복이다.


학교는 지금 시간이 없다. 업무에 쫓기고, 민원에 대응하고, 보고서를 쓰느라 정작 아이들과 함께 있을 시간, 동료와 대화할 시간, 수업을 준비하고 성찰할 시간이 없다. 교육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관계를 만드는 데도, 신뢰를 쌓는 데도,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즉각적 성과를 요구하는 정책 환경에서 벗어나 학교에 시간의 여유를 돌려줘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업무를 줄이는 차원을 넘어, 교육이 원래 느린 과정임을 인정하고 기다릴 줄 아는 사회적 인내를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악순환을 끊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학교는 점점 더 형식적 절차만 남은 공간이 될 것이다. 교육을 바꾸어 보겠다고 나서는 분들은 교육을 다시 교육답게 만드는 일이 거창한 개혁이 아니라 본질로 돌아가는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르치고 배우는 장소로서 학교’, 더 무엇이 필요한가.



커버이미지 https://jobsineducation.com/blog/navigating-education-policy-and-advoc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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