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은 메달 경쟁을 하고, 세계 질서는 숨 가쁘게 돌아간다
새벽 한 시에 깨어 다시 잠들지 못했다. 차를 끓여 옆에 놓고 에이미 추아의 <제국의 미래>를 펼쳐 들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3부를 모두 읽었다. 최첨단 과학 기술의 개척자 미국, 추축국의 야욕 독일/일본, 21세기의 새로운 도전자 중국/유럽연합/인도, 제국의 미래까지다. 2008년 경의 시각인데 지금 읽으니 시사점이 크다.
저자에 따르면 역사상 존재했던 세계 초강대국들은 서로 상당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지만 대단히 다원적이고 관용적인 특성을 공통적으로 보여주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또한 제국들이 쇠퇴를 맞게 된 원인은 관용의 실종과 외국인 혐오, 그리고 인종적 ·민족적·종교적 '순수성'에 대한 촉구가 그 원인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조용한 독서의 시간에 미국 연방대법원이 트럼프가 매기는 상호 관세에 대해 위법 판결을 내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9명의 대법관 중 6명이 동의했다는 이 판결은, 보수 성향의 대법원마저 행정부의 권한 남용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법치와 권력 분립이라는 헌법적 원칙을 재확인했달까. (라고 생각하고 싶다.)
미국 재무장관은 이미 대법원 결정 이전부터 “전체 세수 측면에서 대략 같은 수준의 관세를 계속 징수할 수 있다”고 공언해왔다. 행정부가 준비해온 ‘플랜 B’의 핵심은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301조 및 122조, 관세법 338조 등 다른 법적 수단의 활용이다. 우리 입장에선 산 넘어 산이다.
한국은 상호관세 인하를 조건으로 이미 대규모 대미 투자를 약속했었다. 그런데 그 관세 자체가 위법으로 판정난 것이다. 이는 관세를 낮춰주겠다는 약속의 법적 근거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투자 약속은 이미 현실로 움직이고 있는데, 협상의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국제 관계는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가 새로운 법적 수단으로 관세 체계를 재구성하려 할 때, 한국은 이미 약속한 대미 투자를 지렛대로 활용해 더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낼 여지가 생겼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어쨌든 관세가 뒤집히면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고, 기업의 투자 계획이 바뀌며, 국가의 전략이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은 필연적이다.
에이미 추아는 <제국의 미래>에서 초강대국의 흥망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전략적 관용'을 꼽았다. 재능 있는 외부인을 끌어들이고 교역 상대를 배제하기보다 포용함으로써 패권을 유지했던 나라들이, 내부의 두려움과 배타성으로 돌아서는 순간 쇠락의 문이 열렸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오늘의 미국을 보면, 관세 장벽으로 동맹국을 압박하고 사법부마저 행정부의 일방주의에 제동을 거는 사태는 단순한 무역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추아가 경고한 '관용의 포기'가 제도적으로 가시화되는 장면처럼 읽힌다.
물론 추아의 분석이 지나치게 단선적이라는 비판 - 구조적 경제 모순이나 지정학적 변수를 '관용' 하나로 수렴한다는 점 - 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바로 그 단순함 때문에 이 책은 오늘처럼 복잡한 국면에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미국은 지금 어떤 제국의 문턱에 서 있는가.
단순함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총균쇠(제레드 다이아몬드), 국가는 어떻게 실패하는가(대런 애쓰모글루), 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피터 자이한)을 함께 읽으면 좋겠다. 각각의 저작에서 지정학적 조건, 해당 국가가 도입하고 있는 법과 제도, 여전한 미국의 초국가적 위치 등을 언급하였는데 각기 다른 시각으로 국가의 흥망성쇠를 분석하는 일은 독자에게 지적 흥미를 선사한다.
동시에 들려온 소식은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종목에서 메달을 땄다는 것이다. 세계는 자국 이기주의와 배타적 패권으로 무장하고 양보없는 전쟁을 펼치고 있으며, 한국은 이중 삼중, 다중적 눈치를 보며 전략을 고심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다. 젊은이들은 모여서 메달 경쟁을 하는데, 세계 질서는 한치 앞을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숨 가쁘게 돌아간다. 하나 하나가 기묘한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