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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Feb 12. 2020

영리한 봉준호, 그런데...

당장의 영광을 지속가능성과 맞바꾸는 것은 무모하고도 거친 폭력

1. 

4개 부문의 오스카상을 거머쥔 영화 기생충 이야기가 넘친다. 국제장편영화상(외국어영화상)뿐만 아니라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차지했다는 점에서 영화적 완성도를 공인받았다. 아울러 아카데미가 미국 영화 중심, 헐리웃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보면 '영화 산업적' 측면에서도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가 있다. 실제 작품상도 감독에게 주지 않고 제작자에게 주고 있는데, 이는 영화를 만들고, 배급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작동하는 자본의 힘을 크게 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화와 산업의 측면을 모두 성공시켰다는 점에서 봉준호는 영리하다. 


2.

모든 영화는 보편성과 특수성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2019년 외국어 영화상 수상작이었던 '로마' 역시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역사적 스토리와 한 가족이 감당해야 했던 격변의 흐름을 탁월한 영상미에 녹여냈다. 계급 문제는 기생충이 가진 보편성이다. '반지하'는 봉준호가 이 영화에서 구사한 특수성이었다. 그리고 그는 영리하게도 보편성과 특수성을 디테일하게 조합하였다. 미국에서 이 영화가 먹힐 수 있는 이유도 이 두 가지를 영화적으로 잘 풀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3.

대체로 봉준호 영화는 감독이 설정한 정교한 퍼즐을 긴장감을 가지고 맞추어 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모든 장면은 이유가 있고, 모든 대사는 앞뒤 복선을 타고 흐른다. 봉준호는 영화를 통해 관객을 지배할 줄 안다. 그래서 영리하다. 이것이 그 영리함에 내가 완전히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난 관객에게 조금 더 여백을 제공하는 편을 선호한다.


4.

흥미로운 분석이 있다. 미국, 영국에서 동시에 나왔다고 하는데, 지난 정부 당시에 블랙리스트로 예술인들을 관리하던 것에서 놓여나니 제작자, 감독, 배우가 훨씬 더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럴듯하다. 마침 이미경 대표, 봉준호 감독, 송강호 배우가 블랙리스트 출신이다. 


5.

영화 산업적 측면의 성공이 반길 일이긴 하지만, 미래지향적인가 하는 점은 따져볼 여지가 있다. 모두가 아는 바, 우리나라 영화산업을 좌지우지하는 메이저 3사가 있다. 사실 이들이 거대 자본을 투여함으로써 대작 영화가 탄생한 것은 맞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투자와 배급 등 돈이 들어가는 예술 활동이고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하면 손실 위험이 큰 사업이다. 투자한 만큼 이득을 보는 일반적 경제 원리와 사뭇 다르다. 


6.

한국 영화의 발전 뒤에는 이러한 투자, 배급을 작동시키는 큰 자본들이 있었다. 기생충 역시 그런 구조 속에서 제작이 가능했고, 상영관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우린 항상 무엇이 좋아질 때 치러야 할 대가를 생각한다. 기생충의 성공으로 치르는 대가는 '성공 가능성이 있는 대작 영화'에 자본이 몰리는 현상이 심화될 가능성이다. 


7.

봉준호를 비롯하여 지금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는 영화인들은 훨씬 어려운 조건에서 영화판에 입문하였다. 그 수는 적어도 수천에 이르지만 작품으로 성공하는 경우는 극소수다. 그리고 앞으로 그럴 가능성은 더 낮아질 것이다.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8.

더 많은 소자본 영화들이 만들어져야 하고, 이들 영화에 메이저 배급사는 이익을 환원해야 한다. 더 많은 봉준호가 나올 토양, 그 가능성을 높이는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영화는 없어지고 산업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미 그런 단계에 진입했는지도.


9.

대작의 성공 뒤에 가려진 그늘을 보지 못하고 당장의 영광을 지속가능성과 맞바꾸는 것은 무모하고도 거친 폭력이다. 


10.

기생충이 거둔 성공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면서도 또 다른 봉준호를 키울 토양 조성에 힘쓰길 권한다. 그것이 문화다양성을 존중하는 격조 있는 시민들의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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