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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May 22. 2021

찬실이는 복도 많지


일전에 마음이 심란하여 왼쪽 네번째 발가락을 잘라 소시지와 섞어 볶아먹으면 어떨까라는 망언을 했었다. 독자들도 알다시피 난 발가락으로 글을 쓴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라는 영화를 보면서 고생한 발가락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기운이 빠져 보였는데 사과를 받더니 생기가 돈다. 그러나 언제든 제 역할을 못하면 프라이팬이 기다리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초희 감독의 자전적 스토리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홍상수 버전에서 대책없는 속물근성을 빼고 담백하게 그리려 노력한 영화로 여겨진다. 장면은 일상에 닿아 있고 인물의 심리는 현실적이다. 분량이 많지 않지만 윤여정은 명불허전 딱 그만큼. 배우가 딱 그만큼만 한다는게 어디 쉽나. 짧게 등장하고 풍부하게 보이는 게 내공. 그 결과 강말금을 돋보이게 하는 데 자연스럽게 기여한다.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냐. 누군가를 위해 자연스럽게 기여한다는 일. 욕심을 모두 버리고 나서 마음이 평온한 상태가 되면 가능한 일. 그래서 기여 자체가 내 욕구가 되었을 때 획득되는 자연스러움. 


발가락을 앞세워 영화를 보았더니 실핏줄까지 에너지가 도는 느낌이다. 오늘은 정성스레 어루만져 줄 생각이다. 글이 나오지 않는다고 발가락을 미워할게 아니라 가끔은 문화적 양식을 주어야 하는구나. 


도리없이 연민한다. 불쌍한 내 발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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