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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Jun 30. 2019

좋은 수업이란 무엇인가?

힐베르트 마이어, 2004

“좋은 수업은 민주적인 수업 문화의 틀 아래서 교육 본연의 과제에 기초하여 성공적인 학습동맹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의미의 생성을 지향하면서 모든 학생의 능력의 계속적인 발전에 기여하는 수업이다.” (Hilbert Meyer, 2004)


마이어의 좋은 수업에 대한 정의는 그 자체로 완결성이 높다. 그러나 좋은 수업을 이루기 위한 방안에서는 여러 절차적 요소나 기타 수업 효과성에 대한 접근 등 과학적 교수기법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먼저 알고 이 책을 보는 것이 좋겠다. 왜냐하면, 마이어의 이 정의가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느냐 하는 것에 큰 기대를 가지고 이 책을 보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어의 좋은 수업에 대한 정의가 가지고 있는 교육적 함의가 너무 커서, 오늘은 그것을 분석해볼까 한다. 왜 이 정의는 새로 덧댈 것이 없을 만큼 꽉 차게 다가오는 걸까. 마이어는 이 한 문장 안에 최소한 다섯 명의 탁월한 학자들을 불러낸다. 그들은 대체로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이자 심리학자들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우선 '민주적 수업 문화의 틀 아래서'라는 말까지만 잘라서 분석을 해보자. 수업을 문화적 측면에서 접근했다는 점과 그것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바로 마이클 애플이나 헨리 지루, 파울로 프레이리를 떠올리게 한다. 세 학자 모두 교육과 정치의 연관을 부단히 탐구했고, 그것(이데올로기)이 교실 세계를 통하여 아이들에게 내면화되는 것을 분석하고 담론화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교육 본연의 과제에 기초하여'... 여기서 피터스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교육학 공부가 부족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다. 교육본질, 본위, 본연의 과제 등등 여러 언어로 표현할 수 있지만 피터스의 논의에 따르면, 교육 본연의 과제라 함은 교과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다. 거기에 인류가 쌓아온 문화유산의 정수가 녹아들어 있다고 보고, 교과 자체의 논리에 충실하게 응답하는 것이 피터스가 말한 좋은 수업이다.

'성공적인 학습동맹'은 아마도 비고츠키의 사회적 맥락이 수업이라는 매개를 경유하여 언어라는 수단으로 학습자에게 내면화될 때, 그 맥락이 학습자의 발달을 가져오며 이는 다시 학습자가 갖는 경험과 맞물려 고등정신능력으로 발달해간다는 것이다. 학습동맹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동료 학습자이다. 사회적 맥락은 바로 동료학습자를 매개로 하여 이뤄지는 발달의 전초이기 때문이다.

'의미의 생성을 지향하면서'라는 말에는 들뢰즈의 지식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말은 사실상 같은 정의에 들어 있는 교육 본연의 과제라는 말과 모순 관계에 있다. 교육 본연이라는 말이 갖는 교육학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한 문장 안에서 의미 생성의 지향이라는 말을 같이 쓴다는 것은, 정의의 오류이거나 수업을 대단히 포괄적(또는 절충적이기까지 함)으로 인식하거나 둘 중 하나일 거다. 물론 여기서는 맥락상 후자로 보는 것이 맞다. 학습자가 지식의 바다로 뛰어들어 항해하듯 탐구하고 창조해나가는 그 정신은 들뢰즈의 차이 생성 개념을 그대로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학생의 능력의 계속적인 발전에 기여하는 수업'이라는 말은 설명이 따로 필요하지 않을 정도이다. 바로 듀이의 성장 개념을 직접 도입하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성장은 경험의 연속적 재구성 과정이요, 성장은 성장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는 듀이의 언명, 그것의 표현이다. 또한 '모든' 학생이라 함은 개별 학생이 가진 관심과 흥미가 삶의 세계와 분리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니 이 또한 듀이의 수업관을 반영한다.

이렇게 분석을 해보니 이 정의가 왜 포괄적으로 다가오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정의의 나머지 부분, 이 책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방안과 절차 등등이 다소간 이 정의와는 유리돼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마이어는 이 정의를 좋은 수업의 10가지 특징으로 풀었는데 그것은 수업의 명료한 구조화, 학습 몰두 시간의 높은 비율, 학습 촉진적 분위기, 내용적 명료성, 의미 생성적 의사소통, 방법적 다양성, 개별적 촉진, 지능적 연습, 분명한 성취 기대, 준비된 환경 등이다.

각 특징들이 서로 맞아 상승하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상호모순되는 것도 있다. 그러나 바로 이 부분이 마이어의 수업에 대한 정의를 포월적으로 제시해 주는 접근 방식이기도 하다. 뉘라서 한 문장 안에 애플, 피터스, 비고츠키, 피터스, 듀이를 담아내는 시도를 할 수 있을까. 그것만으로도 마이어는 담대한 사람이다.


좋은 수업이란 무엇인가(2004), 힐베르트 마이어 지음, 손승남 역, 삼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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