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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Apr 20. 2020

가르치는 일의 자존심

온라인 수업 시대, 수업의 본령을 말한다

온라인 개학 초기에 '교사들이 너무 열심히 해서 튀지 말고 적당히 하자'는 글이 돌았다고 한다. 감염병 사태 속에서 교육당국이 온라인 수업이라는 것을 빌미로 교사들의 열정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전략을 가질 것이라는 예상은 교사들 편에서 보면 당연한 우려였다. 지난 2개월 간의 일상은 교육당국과 학교, 교사와 학생 모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일주일 앞을 전망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간이기도 했다.


이처럼 급격한 변동의 시기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학교 혹은 교사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조금 더 긍정 혹은 부정적인 쪽으로 변화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 흐름에서 '교육당국이 원하는 모든 것에 응하지 말고 최소한의 기준에서 움직여 교사들의 권익을 보호하자'는 말이 나온 것으로 이해한다. 상당 수의 교사들은 이 글에 공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그 이후 등교 개학을 몇 번 연기하는 과정에서 교육부(교육청)는 잘 준비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교육당국은 학교가, 교사들은 교육당국이 불안해 보였던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 과정이었다. 그 사이 현장에선 교사들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사례를 나누면서 온라인 수업이라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공 인프라는 확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함을 드러냈다. 교사들은 경험과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를 분산하여 미흡한 인프라와 콘텐츠 부족을 극복해가고 있다.    

성마른 평론가들은 벌써부터 코로나 19 이후의 교육은 그 패러다임이 완전하게 바뀔 것이라는 진단을 내어 놓는다. 제4차 산업혁명 담론이 그러했듯 코로나 시대의 교육 담론도 봇물 터지듯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어떤 시대에도 일관성 있게 견지해야 할 '가르치고 배우는 일의 본질'에 대하여 생각한다. 대략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내 활동의 중심은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ICT 활용교육이었다.


요즘 20년을 돌고 돌아 다시 원점에 선 기분이라는 말을 몇 번 했는데, 정말 할 말이 많지만 무슨 말도 할 수 없는 아주 묘한 느낌이다. <캡틴과 함께 처음으로 만드는 홈페이지, 2000>, <바람직한 ICT 활용교육의 이론과 실제, 2002>, <인터넷에 꾸미는 온라인 학습방, 2002> 등의 졸저에서 말한 문제 인식은 하나같이 기술공학적 접근을 바탕으로 하는 수업을 '모든 교사에게 획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 '백 개의 교실엔 백 가지의 수업이 있다'는 것이다.  


20년을 돌고 돌아 원점에 서게 한 기분을 느끼게 한 흔적들 (네 권 모두 절판됐다)


20년 전 그 당시에 인터넷에 온라인 학습방 하나를 만들려면 웹에디터와 PHP/html 코딩으로 거의 수작업에 의존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주어진 메뉴와 옵션을 따라 마우스를 클릭하는 방식으로 학습방을 생성하는 현재의 상황이 다행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시스템이 진화를 해도 사용자가 느끼는 결핍과 혼돈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네트워크의 속성이기도 하다. 요즘 자주 들리는 'EBS가 터진다'는 표현은 특정 네트워크를 향한 접속이 일시에 폭증하여 작동이 멈추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이것을 오로지 개인이 감당했던 시절이 있다. '열정을 가진 개인'은 웹호스팅을 하거나 단독 서버를 구입하여 리눅스 운영체제와 MySql 등의 디비를 구축하고 거기에 자료들을 올려 커뮤니티를 형성해야 했었다. 교컴을 비롯하여 노쇠해진 1세대 교육 커뮤니티 외에 지금 개인 차원에서 그 방식을 쓰는 교사들은 매우 드물다. 다시 말해 '열정'이란 실험 정신을 가진 소수에게서 자발적으로 솟는 것이지, 모든 교사들에게 획일적 기준을 제시하고 '여기까지 도달하라' 할 때 쓰는 어휘가 아니다.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해야 출석을 인정하네 마네 하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 당시 실시간 방송을 하려고 하면 개인 PC로 서버를 구성하여 스트리밍을 하면 최대 16명 동시접속도 받쳐주지 못하는 인터넷 회선 사정이었다. 대략 아프리카 TV가 대중화되기 전의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실험정신 하나로 버텼던 당시에 비해 지금은 해볼 만하지 않습니까라고 해서는 안 된다. 앞서 언급했듯 소수가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덤볐던 당시의 상황과 '모든 교사에게 요구하는'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지한 일이다. 짧은 준비 시간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이 온라인에서 아이들을 만나 공부하고 교류하는 것 자체는 엄청난 변화이다.

일거에 만들어진 이런 움직임을 지원하는 일이 무엇일지 교육당국은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온라인 수업을 과거의 교실 수업 기준에 맞추어 출석 확인을 요구하거나, 감염병 시대의 교사 복무를 관료적으로 통제하려 하지 않는 것, 그리고 충분한 인프라와 콘텐츠를 개발하여 교사들의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충분한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 이것 외에 더 좋은 지원 방안은 없다.


그런데 이 모든 인프라와 소프트웨어, 기술과 코딩 아래 누구도 말하지 않는 숨겨진 맥락은 무엇일까.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기술공학적 접근 속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 생각도 해보지 못하고, 쌍방향 실시간 수업이 어쩌고, 출첵이 어쩌고, 학생부 기록이 어쩌고... 교육부도 교육청도 학교도 교사도 도무지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이것이 가져올 엄청난 변화들을 그저 헉헉대며 따라가기만 하면 되나... 내가 20년을 돌고 돌아 원점에 서 있는 묘한 기분의 원점엔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그때도 <기능적 ICT 활용교육을 경계함, 2002>, <ICT 활용교육 경험과 전망, 2002>, <ICT 활용교육과 상업주의적 요소의 관련성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 연구, 2005> 등의 글로 혼자 '헛힘'을 쓰곤 했었다. 소위 온라인 수업을 전국적으로 해보자고 하는 지금, 나는 현장에서 교육청으로 자리를 옮겼고, 감염병이 가져다준 외생 변수에 가로막혀 온라인 수업 자체를 도와주는 것 외에 자칫 교사들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에 어떤 말도 하기 힘든 지경이다.


아무튼 교육, 수업, ICT에 대하여 혼자 떠들던 여러 이야기와 논문 등은 언젠가 누군가는 이해해 줄 것이라 생각하면서 아래 위치에 정리해 두었다.  http://eduict.org/_new3/?c=3/52&uid=39566


온라인 학습방을 만드느라 혼이 빠지고, 여기에 어떤 자료를 탑재할지 고르고, 일부는 만들고, 어떻게 출석을 체크하고 평가는 또 어찌해야 하는가와 같은 '현실적으로 당면한 문제'에만 몰입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가는 교사의 사유를 멈추게 할 가능성이 커진다.  


우리가 가르치고 있는 지식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지식은 누가 만들고 누구에 의해 보증되며, 누구의 이익에 봉사하는지... 교육과정과 수업, 그리고 평가는 어떤 논리와 어떤 프로세스로 작동하는지, 어떤 논리는 채택되고 어떤 논리가 배제되는지는 첨단 인프라의 유무에 상관없이 우리의 지성을 붙드는 주제여야 한다. 첨단 기술은 교사와 아이들의 관계의 질을 완전히 바꾸어 버리는가. 만약 그렇다면 교육학을 다시 써야 할 판이다. 수업을 매개로 한 '관계', '지식의 생성 방식' 등은 여전히 우리의 교육적 관심 안에 자리 잡아야 한다.

교대/사대 교수들은 이런 담론들을 철학의 영역으로 넘겨 책임을 면하려 하지 말고, 학생들과 더불어 고민을 해야 한다. 예비교사에게는 ZOOM를 잘 쓰는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지식과 수업, 관계와 상호작용 등 수업의 본령을 고민하게 해야 한다. 바로 그것이 '교사가 되는 훈련'이다. 교사들이 '쏟아지는 업무'와 '잘 가르치는 기법' 속에서 좌표를 잃으면 남는 것은 '탈맥락적 지식 전수' 밖에 없다. 첨단 인프라가 넘치는 지금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교과서 속 지식을 온라인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수하는 방법'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일이다.

가르치는 일의 자존심은 그런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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