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머리] 이 글은 6년 전인 2014년에 쓴 글이다. 현재 교육혁신 과정에서 아직도 이 글의 문제의식이 유효한지, 만약 여전히 유효하다면 그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고민하기 위해 다시 싣는다.
특별자치시로 출발한 세종시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23곳의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를 새로 지었다. 앞으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29곳을 더 새로 짓는다고 한다. 이 과정은 우리 교육사에 없었던 거대한 교육실험이요, 교육혁신의 장정이다. 아울러 정부기관이 들어서면서 공무원의 자녀와 지역의 토박이들이 함께 섞일 때 나타나는 독특한 교육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처음으로 시작하는 세종교육은 교육주체들의 노력이 어떻게 교육의 효과로 드러나는지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초기 정책의 수립과 시행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세종시의 교육지표는 ‘생각하는 사람, 참여하는 시민’이다. 교육으로 키울 미래 인간상을 쉽고 간결하게 잘 나타낸 지표이다. ‘민주적 학교, 참여하는 교육공동체’는 교육지표를 이루어 나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정책방향 중 하나이다. 이 정책방향의 효과적 버팀목으로 세종시에서도 ‘혁신학교’의 도입을 생각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 글은 처음으로 혁신학교를 도입하려는 세종시의 정책가와 교사들이 생각을 열고, 힘을 모으는 과정에 보태는 작은 상상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혁신학교에 집중할 것인가?', '학교혁신에 집중할 것인가?'에 대한 정책적 판단이다. 같은 단어를 조합했으되, 순서만 바꾸어 놓은 혁신학교와 학교혁신은 그 개념과 정책부터가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간결하게 정리하면 혁신학교는 법령에 따라 시도교육감이 지정한 학교를 말하는 것이고 학교혁신은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일반적인 혁신의 개념이다. 시도에서 교육정책의 우선순위를 생각할 때 종종 딜레마에 빠지는 이유는 혁신학교가 가진 ‘상품성’ 때문이다. 혁신학교의 우수한 사례들은 전파가 빠르며 언론에 쉽게 노출된다. 이런 까닭에 선거를 통해 당선된 교육감들에게는 ‘혁신학교 수’를 늘려보려는 유혹이 생긴다. 그런데 혁신학교의 수 이전에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특히 처음으로 혁신학교를 시작하려는 시도에서는 그 방식과 규모를 두고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가장 많은 수의 혁신학교를 운영했던 경기도의 경우 전국적 모범이 될 정도의 의미 있는 성과를 낸 곳이 있는가 하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했던 곳도 상당수에 이른다. 개인적으로는 소수의 혁신학교를 지정·운영하고, 다수의 일반학교는 ‘학교혁신’을 병행할 것을 주문하고 싶다. 그간 전국의 혁신학교들을 관찰하면서 느낀 점들을 중심으로 처음으로 혁신학교를 고민하는 선생님들과 몇 가지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공간
좋은 배움은 공간으로부터 나온다. 먼저 혁신학교를 경험한 경기, 서울 등의 지역을 보면 뛰어난 구성원과 좋은 콘텐츠에도 불구하고 구시대적 학교 건물 구조에서 오는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도 학교의 모습은 일자형의 복도와 사각형의 교실을 위주로 하는 전근대적 건축물이다. 왜 일자형 복도와 사각형의 교실이 학교의 표준 모델이 됐을까? 두 가지의 목적 때문이다. 첫째, 감시와 통제가 쉬운 구조이다. 둘째, 건축비의 절감이다. 관료주의 시대 교육 효율성의 문법이 아직도 견고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북유럽 지역의 학교들을 보면 복도 역시 교육과 생활의 공간이다. 단순히 외부와 교실을 연결해 주는 통로 이상이다. 학교 공간 곳곳에서 배움이 일어나게 하려면 우선 공간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이 동원돼야 한다. 세종시의 경우 신설학교가 많고, 앞으로도 신설될 학교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엇보다 혁신교육이 적합하게 작동할 수 있는 학교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창의적 공간에서 좋은 배움이 나온다. 앞으로 지어질 학교들은 설계 단계부터 공간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포함해야 한다. 아이들이 마주 보며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에서 좋은 배움이 나온다. 특히 요즘 아이들에게 부족한 ‘서사 능력’의 신장을 위해서도 아이들이 감시와 통제를 벗어나 마음 놓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둘 것을 권한다. 강원도 운양초등학교의 바닥 난방이 되는 도서실, 한쪽에 자리 잡은 다락방, 학급에서 바로 문으로 연결되는 화단, 교실마다 설치된 세면대, 각종 모임 공간의 보장 등은 적정 규모의 예산으로도 공간을 훌륭하게 재배치한 사례이다. 교장실을 아예 학생들에게 전면 개방하여 ‘공간의 권위’을 내려놓은 경기도 흥덕고등학교 역시 공간 활용의 좋은 예이다.
수업
처음으로 혁신학교를 시작하는 교사들은, '모든 교사들이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좋은 수업모형'에 대한 유혹을 느낀다. 모든 교실에서 도입하는 특정 수업방식이 ‘수업혁신’을 가져올 수 있을까? 이는 혁신학교를 처음으로 시작하는 학교에서 필연적으로 안고 가야 할 질문이다. 교사들이 수업의 본질과 철학을 잘 이해하면 특별히 공통적으로 적용하는 모델이 없더라도 좋은 배움이 일어날 수 있다. 수업은 정교한 절차와 방법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빈틈없이 체계화된 수업에서 만족감을 얻는 사람은 교사 한 사람뿐이다. 교사들이 서로의 수업을 관찰하고 느낌을 교환하되, 하나의 방식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정도로 약속하여 교사와 학생의 독특한 개성과 조건, 수업의 맥락과 역동성을 보장해야 한다. 서울 삼각산고 교사들의 주제 기반 교육과정 편성, 북서울중학교 전교사가 참여하는 학교교육과정 만들기, 휘봉고의 프로젝트 학습, 성심여중의 수업혁신 프로그램의 연차적 가동 등이 좋은 예이다.
자치
학생회를 바로 세우고, 학급회의 절차가 작동되면 자치가 달성된 것일까? 학생자치의 방법과 절차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적 학교 거버넌스를 세우고 이를 학교 전체 구성원들의 삶과 일치시키는 것이다. 성인들의 세계에서 자치가 확보되지 않았는데 아이들에게 자치를 강조해봐야 헛일이다. 학교자치, 교사 자치는 학생자치의 선행조건이다. 아울러 학교자치, 교사 자치, 학생자치는 교사, 학생, 학부모 3 주체가 향유할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도 하다. '자치'를 주제로 하여 혁신학교를 진행했던 학교들(서울 삼정중, 국사봉중)의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치는 누군가가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하며 책임지는 삶의 방식이다. 이를 위해 학교운영위원회, 교직원회의, 학교의 각종 위원회를 민주적으로 구성하여 실질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학생들을 둘러싼 구조 자체가 민주적 속성을 가질 때 학생회, 학급회, 동아리 자치 등 학생 수준의 자치가 자연스럽게 정착될 것이다.
생태
기존의 학교를 지속가능한 생태모델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학교를 신설할 때 생태적 관점이 들어간 설계가 필요하다. 생태 담론은 에너지 절약 등의 소극적 개념이 아니다. 학교라는 공간의 복잡한 생태계를 풀어가는 철학이자 방법이다. 학교 생태계를 단지 '환경'의 차원에서만 접근하지 말아야 하며, 학교 구성원의 삶 속에서 발현되고 교육과정 및 자치와 병행하는 생태 담론을 고민해야 한다. 아울러 이 영역은 세종자치시와 협력사업으로 크고 넓게 벌리길 희망한다. 특히 세종시에서 생태중심 학교 환경을 구축하는 일은 계획 중인 신설학교가 아직도 29개에 이른다는 것을 생각하여 어느 것보다 중요한 의제로 설정해야 한다. 경기도 의정부여중의 학교농장 프로젝트는 생태 담론이 교육과정 재구성과 잘 결합된 사례이다.
민주시민교육
위에서 언급한 대로 세종교육청의 교육비전은 '생각하는 사람, 참여하는 시민'이다. 바로 이 말이 민주적 시민성의 내용을 잘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혁신학교를 처음으로 시작하는 교사들은 이 같은 민주적 시민성의 덕목을 학교 교육과정과 학교생활에 어떻게 담아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은 장차 우리 아이들이 사회의 주체적 구성원으로 자라나 지역이나 국가의 큰 사업을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데 참여하고, 공동으로 책임지는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그런데 이 민주시민교육의 범위가 매우 넓다. 민주시민교육은 단위 사업으로도 진행할 수 있지만 철학을 세우고 배움과 생활 속에 녹아들게 하는 장기간의 기획 속에서 작동해야 한다. 그렇다면 세종교육청 안에 민주시민교육을 전담하는 부서를 두고 실질적으로 구현할 역량을 배치하여야 한다. 서울 국사봉중학교의 3 주체 생활협약은 민주시민교육을 제도화하고 구성원의 삶 속에 녹여내려는 노력이다. 생활협약은 학생인권조례 공포 후 소극적인 대안으로 도입된 상벌점제를 뛰어넘는 담대한 시도이다. 전주 신흥고의 경우 아예 학생생활규정을 학생회에서 정하기도 했다. 경기 안양서초등학교는 수업에 모의법정을 도입하고 현직 판사와의 대화의 시간을 결합하는 등 체험중심의 민주시민교육을 적용한 사례이다. 광주 수완중의 늘품 협동조합 프로젝트 역시 학생, 학부모, 교사 등 학교 구성원들의 민주성이 잘 발현된 경우이다.
문예체교육
시민들의 문화예술 역량은 그 사회의 품격을 결정한다. 성인으로 자라나 연극이나 영화, 혹은 공연이나 도서관을 많이 찾는다고 해서 문화예술 역량이 신장되지 않는다. 이는 소극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다. 시민들의 생활 자체를 문화예술적 소양이 충만한 삶으로 바꾸자는 기획, 건강한 여가를 즐기게 하자는 커다란 기획이 바로 문예체 활성화의 필요성이자 목적이다. 그를 위해 아주 어릴 때부터 문화적 감수성을 높이는 교육이 학교 교육과정 안에 녹아들어야 한다. 서울 송정중학교의 경우 자유학기제 이전부터 학년마다 특색을 갖는 문예체 교육을 활성화하여 학생들의 만족도를 높였다.
특별함
혁신학교라 해서 모든 영역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욕심이다. 기본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가운데 구성원들의 합의를 통하여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문예체, 학교자치, 수업혁신, 생태공간, 민주적 학교공동체 구축, 교육과정 재구성, 배움의 공간, 교육주체 협약, 협동조합 실험 등 앞서 간 지역들의 성과를 면밀히 검토하여 하나를 중심에 놓고 기본적으로 해야 할 과제를 결합한다. 하나가 풀리면 연쇄효과가 작동한다. 그것이 학교혁신의 효과이다. 학교교육의 모든 영역을 동시에 혁신하기 위해 핵심 활동가 교사가 조기에 소진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운영됐다는 평가를 받는 혁신학교는 모두 한 가지의 특별함을 가지고 있음을 상기하라.
자발성
혁신학교 도입 이전에는 기대할 수 없었던 것들, 예컨대 학교 구성원 간의 민주적 의사소통의 확대, 수업방법의 혁신, 교육과정 재구성 노력, 학생 중심의 체험 활동의 확대, 학부모 및 지역사회의 참여가 확대되었거나 그럴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혁신학교 운영의 성과이다. 무엇보다 교장의 전횡에 의하여 학교가 운영되던 관행에서 무엇이든 '협의 과정'을 거치는 학교가 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다시 말해 혁신학교로 지정하지 않아도 교장의 권한과 역할의 조정, 그리고 교사들과의 의사소통만 활성화된다면 혁신학교 못지않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학생 및 학부모의 만족감은 해당 학교 교사들의 자발성과 크게 관련돼 있다. 이는 혁신학교의 지정과 운영이 누구의 의사에 기초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학교장이 나서서 '연구시범학교'와 비슷한 느낌으로 혁신학교 지정을 받아, 역시 시범학교와 비슷한 성과와 형식을 요구하는 경우 교사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내기 힘들다. 혁신학교의 성공 여부는 구성원의 자발적 참여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