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겠다. 이 나라의 정치는 실종됐다. 이 나라에서 무엇이라도 하려면 적당한 능력을 갖추고 흠결 없이 기다리면 된다. 나의 실력보다 상대의 실수를 부각하는 것이 정치를 잘하는 것인 양 포장된다. 연일 제도, 비제도 언론에서 쏟아지는 폭로는 끝날 기미가 없다. 그 내용도 점입가경이다. 지금 다수 시민은 폭로 저널리즘의 소비자로 전락해 가고 있다.
하나의 의혹에 새로운 의혹이 더해지면 진실 규명과 상관없이 원래 의혹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다음번엔 얼마나 더 흥미로운 것이 나올 것인가를 기대할 뿐이다. 그리하여 정치는 '게임화'하고 시민은 관람객이 된다. 정치의 실종이다. 그로 인해 발생한 시민들의 정신적, 시간적 손실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책임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 유권자는 오로지 공격과 방어 둘 중 하나의 선택지만 강요당한다. 짜증 나는 오늘 우리 정치의 모습이다.
품격 있는 사회에서 교양을 갖추고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런데 눈만 뜨면 하루 종일 비지성과 비교양을 보고 듣고 느껴야 한다. 상부구조(정치, 제도)와 하부토대(삶, 경제)는 상호 조응하지 못한다. 이를 연결할 시민사회는 건강한가. 시민단체의 이익집단화는 오랜 문제다. 트럼프의 당선은 시민의 관심사를 오로지 개인의 주식가치가 오르내리는 것으로 한정한다.
어제 회의를 끝내고 식사 자리에서 요즘 젊은 세대의 변화된 문화에 대하여 말했다. 그리고 교원단체의 흥과 망, 성과 쇠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다. 젊은 세대가 인생의 선배들을 보며 과거를 교훈 삼듯 늙은 세대는 젊은이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하고 싶어 한다. 지금 서로 기대할 것이 있나? 바로 비지성 사회의 특징이다.
그러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든, 권력 획득을 위해서든 적극적인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정치에 몰려 있는 것은 맞다. 내 눈엔 모두 동물적 촉수를 장착한 단세포 같아 보이지만 의지 하나는 높이 산다. 이 사회에서 자원을 탐하는 인간들, 권력을 구하는 유기체들의 욕망은 정확히 닿아 있고 상호 협력한다. 나도 별것 없다. 좋은 글 한 번 써보겠다고 불면을 견디는 심신은 시시하고 초라해서 자기모멸을 경험할 뿐이다.
지금 펼쳐지는 폭로와 받아 적는 언론, 관람하는 시민의 에너지는 어디를 향하나. 늘 현실의 장벽 제거에 몰두하다 막막한 황무지를 만나는 것 말고 어떤 준비가 동반돼 있나. 역사는, 인간의 삶은 진보하나 퇴보하나. 산책길 사유로 삼기에도 피곤한 정치의, 삶의 실종이다. 답은 없다. 내 한 몸 곧게 서기도 힘든 판에 논평질이나 하는 이 처지도 한심하긴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