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첫 번째, 두 번째 등교 개학을 연기할 당시에는 '불가피성'이 다른 조건들을 압도하던 때였다. 다른 선택지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세 번째, 네 번째 연기 때에는 불안감이 밀고 올라왔다. 단기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조금씩 미루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 교육부가 지금 큰 그림을 그릴 여유가 없구나. 걱정이다..."
나는 엊그제 인천시교육청 좌담회에서 이런 상황을 "전략적 사고 부족"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말은 좀 심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설마 이렇듯 다양한 상황과 변수들이 난무하는데 서너 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시뮬레이션을 안 해보았겠는가. 발표할 때는 나머지 경우는 생략하고 딱 실행 계획만 발표하다 보니 그런 오해를 사는 것이겠지. 이렇게 위안을 삼고자 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울러 나 역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의견을 보태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죄송한 마음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어떤 이는 아직 감염병 사태는 종료되지도 않았는데 성급하게 장밋빛 미래교육으로 연결하는 포스트 코로나 담론들을 말한다. 한편 다른 가능한 이야기들을 아예 젖혀두고 오로지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만 초단기 대응 방식으로 일관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침내 교육부는 5월 20일을 기점으로 고3부터 등교 개학을 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엊그제는 이 방침은 변함이 없을 것임을 재확인하였다. 이태원 발 쇼크가 아직 진정되지 않은 시점에서다. 이로써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이유가 어느 정도는 소명이 되는 셈인데, 그것은 바로 <대학입시의 정상적 진행>에 과몰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라면 심각한 상황이다.
일본은 올림픽을 연기했다. 그리고 유럽 국가들도 입시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 미국도 이 상태로라면 정상적 입시 일정이 곤란하다. 우리가 원격수업을 통해 얻은 교훈은 크게 보아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교실 밖 다른 형식의 교육'을 상상할 수 있게 됐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렇게 수업을 해보니 '뛰는 상상에 기는 지원'을 생생하게 경험했다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는 교육 분야의 핵심과제는 기존의 '질서, 관행, 법령, 절차'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라고 생각한다. 미래를 말하기 전에 혁신을 먼저 거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견고한 질서 중의 하나였던 수능은 꼭 있어야 한다는 논리는 답답하다.
위 두 가지를 묶어보니 '기존의 질서와 관행을 극복하면서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으로 답이 나온다. 수능을 최대 한 달 연기한다면 어떤 문제가 있고 그 문제는 어떻게 극복 가능한가.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맨 처음 할 일이다. 나아가 아예 수능을 못 보게 된다면, 또 다른 어떤 상상과 대안이 있지? 까지 사고를 밀고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전략적 사고이고 상황은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기존의 관습과 절차를 드러내고 적합한 지원방식을 고민하는 것, 이것을 학교교육 정상화의 기점에서 포괄적으로 사고해보는 것, 이것은 불경스러운 일이 아니고 어쩌면 코로나가 우리에게 주는 일종의 '개혁 해법'이다.
대학입시 제도가 견고하게 작동하는 이유는 여기에 걸린 이해충돌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해충돌은 회피해야 할 것인가, 직면할 것인가... 이것을 넘어서지 않고 이런저런 교육혁신을 말하니 그 모든 것들이 대학입시 앞에서 멈춘다. 우린 모든 교육개혁 과제가 수능 문제 하나로 함몰되면서 지체되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코로나 19 사태는 대입시의 획기적 변화를 포함하는 담론을 적극적으로 펼치라고 요구한다. 이 요구에 답하는 것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지난 3개월 동안 우리가 고민해야 했던 것은 바로 이 같은 큰 그림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