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적 상상력과 사회적 참여 사이
‘세바시’로 줄여 부르는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은 CBS TV에서 마련하는 짧은 강연 프로그램이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 중인 강사들이 이 프로그램에서 최신 경향, 교육, 경제, 청년, 평화 등을 주제로 하여 15분 동안 청중들과 이야기를 공유한다. 매월 격주 월요일마다 서울 목동의 KT 체임버홀에서 무료 시민강좌 형식으로 진행된다. CBS TV에서 제공하는 공식 홈페이지
(http://www.cbs.co.kr/tv/pgm/cbs15min)와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user/cbs15min)에서 영상 자료를 볼 수 있다. 두 페이지에서 지금까지 진행된 영상을 감상할 수 있고, 강사를 추천하거나 직접 세바시 강의에 참여 신청을 할 수도 있다. 이번 호에는 그동안 세바시로 제공됐던 570여 편의 영상 중에서 학생들의 시민성 함양과 관계되는 영상을 몇 개 소개한다. 특별히 시민성 함양을 언급하는 까닭은 시민성이 최근 강조되고 있는 인성교육을 넘어서 미래 세대의 주체적 자아 형성과 서사적 상상력 및 정서적 역량의 함양, 그리고 사회적 참여를 전제로 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c-Sz1zR4aw
사람들의 대화에 자주 인용되는 ‘스펙’은 영어단어 specification를 줄여 쓴 말이다. 원 뜻은 사물에 대한 내역, 열거, 세목이다. 예를 들어 ‘product specifications’와 같이 붙여 쓰면 어떤 기기의 제원이나 제품의 명세서가 된다. 본래 사물에 쓰는 이 단어는 요즘 인간을 대상으로 사용된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이 준비하는 여러 조건들을 일러 스펙이라 하기도 하고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이 구비해야 할 조건들, 심지어 결혼을 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능력과 조건 등에도 쓰인다. 이 경우 스펙은 학력, 학점, 토익 점수를 뜻한다. 어떤 사람들은 스펙의 범주에 ‘외모’를 넣기도 한다. 이는 인간을 물화하는 나쁜 실용주의적 관점이다. 프로레슬러이자 스포츠 해설가인 김남훈은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며 스펙의 노예가 되지 말자고 말한다. 왜곡된 스펙 쌓기 문화에서 학력이나 외모에서 해방하여 내가 잘할 수 있고, 나를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라고 권한다. 이 과정은 진정한 삶을 갈망하는 자유의지에서 비롯한다. 자유의지는 시민성 함양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vIT1jQ9wI_M
최진석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들려주는 우리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다. 최 교수는 이 영상을 통하여 우리의 미래가 더 행복해져야 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이 더 늘어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개인이 집단 속에서 용해되지 않고 능동적 주체로 우뚝 서야 하는 방향으로 전진이 필요하며, 타인의 이론을 논증하거나 수행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를 직접 표현하는 이야기꾼이 될 것을 제안한다. 지시나 전달을 주고받는 사람에서 대화의 참여자로 공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대답할 때보다 질문할 때 주체로 우뚝 설 수 있다고 말한다. 미리 정해진 정답을 받아들여 신념화하기보다 호기심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할 때 참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집단과 우리를 직시하고 ‘나’로 존재하기 위한 사고 속에서 행복을 주체적으로 일굴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정해진 것을 수행하는 삶에서 하고 싶은 것을 창조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라고 강조한다. 교사와 학생들이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차분하고 진지한 15분이 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DgHfuWgwoKk
‘탐스슈즈(TOMS shoes)’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두고 있는 신발 업체로서, ‘내일을 위한 신발(Shoes for Tomorrow)’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다. 소비자가 한 켤레의 신발을 구입하면 한 켤레의 신발을 제3세계 어린이들에게 기부하는 일대일 기부 공식(One for one)을 도입하고 있다 (위키백과에서). 이 기업을 2006년에 창업한 이가 블레이크 마이코스키(Blake Mycoskie)이다. 그는 맨발로 다니는 어린아이들을 돕자는 마음에서 이 신발 업체를 창립하였다. 블레이크는 아르헨티나 여행 중 많은 아이들이 신발이 없어 학교를 가지 못하는 사실을 알고 신발이 절실히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목적으로 탐스를 운영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이 캠페인을 통해 전 세계 3,800만 아이들에게 신발을 나눠주었다고 한다. 지난 9년 동안 탐스가 이 세상에 던진 메시지는 두 가지이다. 첫째, 남을 돕는 삶은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준다는 것, 둘째,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이웃과 함께 하는 탐스식의 비즈니스 모델도 이 현실 세계에서 충분히 지속, 성장 가능하다는 것이다. 영리 기업과 비영리기업의 중간 형태로, 사회적 목적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면서 재화·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을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이라고 한다. 블레이크 마이코스키는 사회적 기업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실천될 수 있는지 생생한 경험으로 증언한다. 개인의 심성함양에 비중을 두는 인성 개념이 시민성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타자와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생산적 교류를 일구어내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wVkb0ivyI8M
그림자는 물체가 빛을 가리어 물체의 뒤에 나타나는 검은 형상이다. 이것은 그림자를 과학적으로 정의하는 방식이다. 융 심리학에서 그림자란 의식적인 자아가 식별할 수 없는 성격의 무의식적 측면이다. 즉 우리가 외면하거나 무의식 속에 숨겨온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 바로 심리적 차원에서 생각하는 그림자의 개념이다. ‘그림자 여행’,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이란 책을 쓴 작가 정여울이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정 작가는 세월호 참사 이후 강연에서 자신이 받는 질문의 내용이 바뀌었다고 한다. 전에는 주로 ‘공부하는 방법’, ‘글 쓰는 방법’,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더 많이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어떤 질문으로 이 삶을, 삶 속에서 마주치는 갈등의 순간들을 이겨내고 끌고 나가야 하는 것일까? 이 영상에서 작가는 ‘강해진다는 것’의 의미를 되돌아보며 우리 삶에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시간 15분을 나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IoGFHghNTk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산문학상, 만해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문학 관련 상을 휩쓸면서 '문학계의 그랜드슬램'으로 불리는 작가 김영하의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글을 쓰는 것이 인간에게 남겨진 최후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인간들은 전쟁터, 감옥, 병상, 심지어 나치의 수용소에서도 글을 썼다. 작가는 영상을 통하여 글을 쓰려는 의지가 남아있는 인간은 자유롭다고 말한다. 2013년 11월 뉴욕타임스 해외판 기사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한국의 학생들은 잔인한 대학시험을 보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한다. 극단의 경쟁이 학생들의 자살률을 높인다. 이 어리석은 시험을 통과하여 대학에 들어가면 학생들은 독서와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
작가는 글쓰기가 모든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며, 글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인간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자기 해방의 글쓰기라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글쓰기는 시험을 준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자기 치유와 해방의 과정이 될 수 있다. 그것이 글쓰기가 가진 놀라운 힘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F9f0692r_dg
리 켄트 교수는 고려대학교 교수학습개발원에서 영어교육 방법을 연구한다. 강연에서 리 켄트 교수는 ‘왜 한국인들이 영어를 그렇게 어려워하는지에 관한 심리학적 이유’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켄트 교수는 한국인들이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몇몇 영어학습방법들은 아주 비효율적이며,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 환경은 아주 반생산적인 것이라고 본다. 이렇게 되면 영어 자체를 일종의 구속으로 여겨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영상은 배움과 동기라는 심리학을 이해함으로써, 한국인들은 영어에 대한 짐을 벗어던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한국인들이 영어를 지식정보를 이해하고 의사소통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보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잘못된 동기는 강할수록 위험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다양한 텍스트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아울러 사교육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말 것을 제안한다.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키울 때 영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영어를 즐기게 된다는 것이다.
* 이 글은 월간 도서관 저널 2015년 6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