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담화

by 교실밖

내가 술을 못 한다고 말하는 순간 많은 것들이 변한다. 만나는 사람이 변하고 누려야 할 시간이 변한다. 지나간 시간 동안 술을 즐겼다면 내가 살아온 경험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술에 대하여 갖는 편견은 없다. 동서고금, 나라와 인종을 막론하고 술을 즐기는 문화가 있는 것을 보면 인류 역사와 함께 동행해 온 것이 분명하다는 것쯤은 알겠다. 다만 (내 정신은 말짱한 상태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여럿 관찰했기에 '술을 먹는 행위'를 통해 그 사람의 품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술을 먹지 않는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다. 몸에서 받지 않는다. 어떨 땐 마음 맞는 분들과 술을 먹으며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물이나 콜라를 마시며 맨 정신으로 점점 풀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꼭 낄 자리가 아니면 피한다. 서로 편하다. 술을 잘 마시는 분들은 시간이 어찌 흐르는지 감이 없다. 대화를 혼자 독점하는지,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분간하지 않는다.

내가 관찰한 바, 술을 마시는 시간은 비밀을 공유하는 시간이요,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의 험담을 하는 시간이다. 이런 '진솔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기 통제를 놓게 되고 시간관념이 사라진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신체접촉을 하거나 울거나 잔다. 술을 즐기는 사람들은 내가 관찰한 것 이상으로 추억이 많을 것이다. 그에 따라 오죽 할 말이 많겠는가.

가끔은 좀 풀어져서 분간 없이 이야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막상 술을 마시면 기분이 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경직되면서(알콜을 분해하지 못하는 저주받은 체질...) 상대의 무한 반복되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아지고 이내 짜증이 밀려온다. 내가 이야기해야 할 타이밍을 번번이 빼앗긴다. 결과적으로 '잘 들어주는 사람' 정도의 평만 남는다. 난 때로 잘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단 말이다.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야근 후에 늦게 집에 오면 몸이고 마음이고 엉망일 때가 있다. 이런 날은 꼭 불면에 시달린다. 그럴 때 꺼내 드는 미니 맥주가 있는데 아래 사진이다. 요렇게 작은 것은 이 회사밖에는 출시하는 곳이 없는 것 같다. 이거 하나를 홀짝거리며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다 잠자리에 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잠을 푹자거나 맘이 풀어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습관이다.

다시 말하지만 난 술 자체의 발원과 진화, 그리고 그것을 마시는 인간에 대한 편견이 없다. 다만 그런 자리에서 맨 정신으로 거나해지는 상대를 바라보는 것은 즐겁지 않다. 내가 알아야 할 상대의 모습까지만 관찰하는 것으로 족하다. 술을 즐기는 사람들은 그 시간에 했던 말이나 행동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관대한 문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다. 술을 마시든 물을 마시든 사회는 품위를 잃지 않는 사람에게 관대하다.

그러나 나도 아주 가끔은 미니 맥주 한 잔을 마시는 시간이 있다. 이건 광고가 아니다. 저 회사에서 일전도 받은 것이 없다. 다만 미니 맥주를 만드는 곳이 저곳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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