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네가 선생이다. 앞으로도.
30년 만에 너를 다시 만났다.
넌 듣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세상과 만났다.
일곱 살 때까지는 눈으로만 풍경을, 사람을 알았다.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일곱 살 아이의 충격을 나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네가 보여준 마음의 평온은 선생인 내가 제자인 너에게 배워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난 세 번이나 고백했다.
지금은 네가 나를 가르치는 시간이라고.
고아원에서 학교를 다녔던 넌,
청춘시절의 나와 학교라는 곳에서 만났다.
난 가끔 너와 함께 우리 집으로 퇴근했고,
지금은 돌아가신 내 어머니가 지어준 밥을 넌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정작 난 아무 생각이 없었지.
그냥 또래보다 네 살이 많은,
듣지 못하고 말도 어눌한 너와 친구가 되고 싶었고,
학교에서만 보기 아쉬워 내 집으로 함께 간 것뿐이었다.
30년 만에 너는 말했다.
선생님 댁에서 먹었던 그 밥이 고아원 밥보다 맛있었다고.
그래서 30년 전 선생님의 집에서 먹었던 그 따뜻한 밥에 '전율'했었다고.
너는 먹는 행위에 '전율'이란 표현을 썼다. 맞다.
먹는 행위는 음식 그 자체가 아니라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먹었느냐 하는 내러티브를 동반하지.
음식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기억하는 거다.
그리고는 가끔 그 밥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난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울었다.
네가 그 밥을 추억하는 30년 동안, 난 여전히 음식을 가리고,
음식 앞에서 입 짧은 못난이 행세를 했거든.
다시 내가 고백했다.
철수야,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는 거란다...
오늘은 네가 내 선생이다.
네가 먹는 행위의 엄중함을 이미 알고 있었던 그 30년 전에 난 네게 묻지 않았어.
이 밥은 평소 네가 먹던 밥과 다르니?, 맛은 어떠니? 와 같은 말들. 돌아가신 어머니도 그랬지.
그냥 네가 맛나게 먹는 것만 무심하게 바라보셨어.
가끔 그러셨지. 그놈 데려오너라. 저녁이나 먹이자.
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고아원에서 나와야 했고,
곧바로 생업의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갈 곳 없는 너를 받아준 곳에서 먹고 자면서 일하는 생활이 시작됐지.
가게의 콘크리트 바닥에 침구를 깔고 잠을 청하면서 겨울을 두 번 보냈다고 했다.
그리고 결혼을 했고, 23년을 그곳에서 더 일했다고 했다.
아내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특수학교 동창이라 했지.
지금은 어엿한 성인이 된 두 자녀에게 너는 당부했다고 했다.
만약 엄마, 아빠의 의견이 다를 땐 너희들은 무조건 엄마 편에 서야 한다고.
그랬더니 집안의 의견이 3대 1일로 갈릴 때가 많았다고 너는 환하게 웃었지.
넌 내게 말했어.
왜 인간들은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미래를 고통스럽게 사느냐고.
자식을 잃은 사람은 자식과 보낸 좋은 시간만 기억하면 된다고.
왜 좋은 것은 다 잊고 남은 많은 시간을 아파하느냐고.
넌 몸으로 세상을 익힌 철학자가 돼 있었다.
너는 세상을 낙관하고 있었다.
네가 태어날 때 듣지 못했던 것이 자라서 너에게 보청기 판매라는 직업을 주었다고.
파는 사람이 듣지 못하는 사람이니 사는 사람은 엄청 공감하더라고.
이보다 더한 낙관이 어디 있겠니.
네가 고통스러웠던 많은 시간에 넌 너보다 훨씬 조건이 나쁜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이 정도는 정말 감사한 일이야 하면서 살았다고 했다.
수익의 상당 부분을 남을 위한 일에 쓰면서 즐겁게 산다고 했어.
철수야, 오늘은 네가 내 선생이다. 아마 앞으로도.
* 커버 이미지 https://morphis-insights.com/has-time-ran-out-on-gart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