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몇 해 전 너를 만났다 귀에 보청기를 하고 있었지 또래보다 성숙했던 넌 축구를 잘 했다 수업시간엔 맨 뒤에 앉아 잘 들리지 않는 귀로 수업에 집중했었다 뭔가를 더 자세하게 듣고 싶을 때면 미간을 찡그리던 네 모습 기억에 선명하다
학교에는 네 또래 친구가 없었다 난 네가 좋았고 너도 나를 좋아해서 우린 바로 친구가 됐었다 갓발령받은 철부지 총각 선생 툭하면 네 보청기 수신기에 대고 소리를 질러 너를 놀라게 했었지
학교에서만 보고 있기 너무 아쉬워 두 시간이나 걸리던 우리집에 너는 자주 놀러왔다 네가 밥먹는 모습을 좋아했던 네가 할머니라고 불렀던 내 어머니는 돌아가신지 십년도 넘었다 가끔 "그 놈은 어찌 사는지 모르겠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어제 너에게 들려주었고 너는 페이스북 메신저 창에 <ㅠㅠ...> 를 찍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네가 졸업한지 삼십 년이 됐다 페이스북 덕분에 우린 연락이 닿았지 긴 시간 서로 잊지 않고 살았음을 확인했다
난 네 나이를 또래들보다 두 살이 많은 것으로 삼십 몇 년 동안 기억했다 너는 나에게 두 살이 아니라 네 살이 많았다고 그래서 지금 '쉰 둘'이 되었노라 말했다 네 나이 열 여덟에 만났는데 지금 쉰 둘이라니, 우린 둘 다 중년이다
너는 종로에 보청기 가게를 열었다 기억의 소환이 이것보다 강렬할 수 있겠느냐 그것만으로도 난 네가 걸어온 길을 짐작했다 평생을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던 너는 조금이라도 또렷하게 듣고 싶어했고 남들도 또렷하게 듣기를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