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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Mar 27. 2022

당신, 왕이 되고 싶은가?


지난 주 금요일 서울에서 회의를 마치고 잠시 짬이 나서 경복궁에 들어갔다. 경복궁의 중심 근정전을 지나 궁 뒤편에 자리한 향원정까지 보고 나왔다. 심란한 날의 연속이라 머리를 좀 식히고자 했다. 조선의 왕들은 새벽에서 저녁까지 업무가 많았다. 종일 신하들의 보고를 받고 의사결정을 내려야 했으며 강제로 학습을 '당'했다.


당파적 이해가 넘쳤던 궁 안에서는 호시탐탐 왕을 이용해 자신들의 권력을 확대하고자 했던 관료들이 있었다. 외척들 역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왕을 활용했다. 지정학적 특성으로 외세의 간섭과 침략이 지속됐다. 족들은 왕의 편이었을까. 대체로 그렇지 않았다. 권력 앞에서는 부모형제가 모두 경쟁 관계였다.


역사는 조선의 왕들이 하나 이상의 지병을 가지고 있었으며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고 전한다. 에 '갖힌' 왕은 가장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였다. 고종은 아버지 대원군의 간섭을 피해 건청궁을 지었고 그곳에 기거하면서 향원지라는 연못을 조성했다. 연못 가운데 있는 정자가 향원정이다. 치욕의 역사를 마주했던 고종과 그 가족들은 궁 뒤편 향원정에서 좀 쉴 수 있었을까.


조선 왕들의 혼백이 내 심사를 편안하게 위로해줄까 기대하며 들어갔던 경복궁. 온갖 잡생각에 머리만 더 복잡했다.



<더 읽기>
아래는 몇해 전 도서관 저널에 썼던 글 '왕의 하루' 중 일부이다.
전편은 '역사채널ⓔ'로 조선시대 여행하기 (brunch.co.kr)에서 읽을 수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공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다. 학교와 학원을 순회하며 많은 양의 지식을 기억하고 상기하는 공부는 학생들을 공부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학생들은 "내가 조선시대 왕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공부 따윈 던져버리고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고, 실컷 놀기만 할 텐데... “와 같은 상상을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 조선의 왕에게는 충분히 쉴 수 있는 여유가 있었을까? 이 같은 의문을 가지고 역사채널ⓔ ‘왕의 하루’를 감상하여 보자.


“즉위 후 정사를 주관하면서 노심초사하는 바람에 수염이 다 세어버렸다.” - 조선 19대 왕 숙종     
“가슴 통증 때문에 울부짖어 숨이 끊어질 것 같다. 그런데도 처리해야 할 업무가 밀려드는구나. 죽어가는 사람 좀 살려주라. 그러면 나랏일에도 다행 아닌가.” - 조선 14대 왕 선조     
“바쁜 틈에 백성들에게 내릴 글을 짓느라 며칠째 밤을 새우고 닭 울음을 듣는구나. 괴롭다. 책을 읽고 온갖 문서를 보느라 심혈이 모두 메말랐구나.” - 조선 22대 왕 정조     


실록을 통해 서 본 조선 왕들의 하소연이다. 도대체 어느 정도로 업무의 압박이 있었기에 수염이 다 세어버리고,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가슴 통증과 심혈이 메마를 정도였을까 궁금하다. 영상은 조선 왕의 하루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오전 5시~7시, 기상 및 문안 인사
오전 7시~8시, 아침공부 ‘조강’
오전 9시~10시, 아침식사
오전 10시~낮 12시, 오전 업무
낮 12시~오후 2시, 점심식사 및 낮 공부 ‘주강’
오후 2시~3시, 오후 업무
오후 3시~5시, 야간 당직자 확인
오후 5시~7시, 저녁 식사 및 저녁 공부 ‘석강’
오후 7시~8시, 문안 인사


왕도 조강, 주강, 석강을 통하여 꼼짝없이 하루 세 시간 이상 세미나 방식으로 공부했고, 신하들이 궐을 나간 후에도 개인 공부에 힘썼다고 전해진다. 여기에 더하여 왕의 또 다른 업무가 있었다. 국가 제례 전날 제사에 쓰일 축문 작성, 부족한 독서와 백성들의 상소문 정독 등 왕의 비공식적 업무는 늦은 밤까지 계속되었다. 이처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왕의 24시간, 휴일이 없었던 1년 365일 중 ‘유일한 휴가’는 언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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