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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Jul 20. 2019

네트워크, 나와 다른 너

내면의 나와 객관화한 나 사이 어딘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인사로 듣는 말이다. 브런치나 페이스북에 쓰고 있는 글을 잘 읽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좋아요(라이킷)'나 댓글을 달아서 확인해주지 않는 이상 어떤 분들이 내 글을 읽는지 알 길이 없다. "아니, 글을 읽었으면 흔적을 남겨야지요."라고 인사에 답한다. 보통 적극적으로 글을 읽었다는 표시를 하는 분들도 있지만 내 경우 이런 분들은 많지 않다.


그저 오랜 현실 친구이거나, 아니면 정말 글이 좋아 읽고 나서는 뭔가 한 줄 남겨야 하겠다는 욕구가 충만한 분들이 흔적을 남긴다. 대부분은 그냥 읽고 맘속으로 공감한다. 크게 다른 뜻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땐 '좋아요' 한 번 누르는 것도 결심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글을 읽고 있지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분들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해한다. 아무튼 그렇게 흔적 없이 다녀가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알겠다.  


SNS에 글을 쓰는 사람은 대체로 '어떤 반응'을 기대하면서 글을 쓴다. 몸글과 댓글, 그리고 좋아요가 합작하여 하나의 맥락을 형성한다. 언젠가 글을 쓸 때 '절제와 균형'이 갖는 미덕에 대하여 말한 적이 있다. 누군가 조언을 구해 오면 그렇게 말해주기도 한다. 절제와 균형은 겉으로 드러나는 반응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그 반응의 행간, 그 반응을 넘어 말해지지 않은 말들에 주목할 때 생겨나는 덕목 중 하나이다.

나는 컴퓨터라는 물건이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또 PC 통신 초기부터 사용해 본 오랜 경험자이다. 특히 네트워크에서 작동하는 상호작용은 내 공부 거리 중 하나이다. 네트워크는 현실의 축소판이자,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다양한 현상이 발생하는 장이다.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용자 간의 교류와 연대, 분리와 배제가 수시로 일어난다. 현실과 똑같이 관계로 인해 기쁘거나 슬프거나 위로받거나 상처 받는다. 한편 현실 이상의 권력 형성과 추종이 생겨나고 때로 관계가 생성하거나 소멸한다.


어떤 사람은 신념을 전파하는 수단으로 쓰고, 어떤 사람은 자기를 상품화하여 내어 놓으며, 어떤 사람은 타인의 위로를 구한다. 난 가끔 시스템의 문제와 운영의 문제를 연결하여 생각하곤 한다. 오랜 조직 생활을 통해 깨닫게 된 한 가지는 이상적인 시스템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좋은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네트워크에서 좋은 글을 만나는 것은 반갑고 기쁜 일이다. 연령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네트워크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엊그제 친구가 해준 이야기는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피곤함에 대한 것이었다. 단순히 세대차에서 발생하는 문제라고만 여길 수 없는 '한 수 가르침'의 욕구가 네트워크에서도 발생한다. 더 많은 경험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상대를 가르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변한다.


경험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종종 '다른 경험'과 '많은 경험'을 혼동한다. 단순히 많은 경험이 적은 경험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생각을 달리 하여 다른 경험이라고 보면 이는 상호작용의 가능성과 동반성장의 동기가 된다. 소위 '꼰대질'이라고 명명하는 행위에는 예외 없이 경험에 대한 확신이 있다. 경험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은 자신을 위해 이롭지 않다. 지식도 마찬가지다. 지식에 대해 확신을 가진 사람에게서 소위 '지적 꼰대질'이 나온다. 아는 척을 하니 지적(知的)이요, 지적질을 하니 또한 지적(指摘)이다. 


엄밀하게 말해 지식과 경험은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니라 유동의 상태이다. 이 점을 믿는다면 확신에 빠져 누구를 단정해버릴 일도, 재단해버릴 일도 없다. 네트워크는 실세계의 일부를 반영할 뿐이다. 사용자가 수용하는 만큼 향유할 수 있고, 내가 설정한 범위만큼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그 안에서 관계가 생성, 성장, 소멸한다. 결국 주체는 '나'다. 내 생각의 잣대는 내면의 나와, 객관화한 나 사이 어딘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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