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담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실밖 Oct 07. 2022

'비교적 평온함'의 대가

대가(代價): 어떤 일에 들이는 노력이나 희생

인간이란 더 보태고 빼고 할 것도 없이 사랑을 먹고사는 존재다. 사랑이 부족해서 많은 인간들이 우울에 빠지고, 고독과 외로움에 시달린다. 누구는 머리에 든 것이 많아서, 누구는 넉넉한 가슴으로 모든 것들을 초월하여 타인의 존경을 받으며 산다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 역시 평생을 "내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걱정하면서 산다.   


사실 그것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카를 융도 그것(페르소나) 때문에 개인은 생활에서 자신의 역할을 반영할 수 있으며, 주변 세계와 상호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하였으니 말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짐승의 본능과 구분되는 인간의 심성이라 하였다. 융은 인간이 겪는 괴로움과 고통이 심리적 사회적 성숙으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결과로써 삶에 대한 '겸손(humble)'을 주요하게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욕망하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여기 브런치에 올라오는 여러 글도 자세히 살펴보면 한결같이 타인의 관심을 구하는 내용이다. 어떤 이는 세련되게 이야기하고, 또 다른 어떤 이는 거칠고 조악하게 이야기하지만 속마음은 같다. 두 겹, 세 겹으로 포장하고, 저 너머의 진짜 생각은 숨긴 채 타인과 교류한다. 만약 욕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말하고 글을 쓰고 타인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무질서가 지배하는 세상이 된다. 인간은 적당히 가면을 쓰고, 예의를 갖추며, 본인의 오욕칠정을 다듬어 표현하도록 진화해 왔다.  




누구나 삶의 과정에서 어려웠던 적이 있다. 나도 살면서 파란만장하고 우여곡절의 국면이 많았지만 그중 어려웠던 때를 꼽으라면 10년 전 왼쪽 시각의 일시적 소실이 왔을 때다. 약 보름간에 걸쳐 하루에 두세 번씩 왼쪽 시야가 흐려지다가 이내 보이지 않는 증상이 있었다. 시각 소실은 약 20분 정도 지속되다가 돌아왔다. 대학병원에 입원하여 수십 가지 검사를 했지만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원인이 없으니 보름 후 시각이 돌아온 후에도 어떤 요인에 의해 그런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퇴원 후에는 몸의 기력이 입원 전에 비하여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몸만큼 정신도 피폐해져 있었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에는 수면유도제, 항우울제 등이 포함돼 있었다. 직책을 내놓고 병 휴가를 얻어 휴식에 전념했다. 이후 10개월 간 언제 다시 시각이 소실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우울에 시달렸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아졌다. 병가가 끝나고 직장에 출근하여 오전을 버티고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휴게실에 가서 밤에 못 잔 잠을 보충했다. 힘든 시간이었다.

마음의 불안과 우울을 달래기 위해 예전에 읽다가 덮어두었던 심리학 책을 꺼내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은 그래도 내용에 빠져들었다. 궁금했다. 나에게 왜 이런 원인도 알 수 없는 일이 생기고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야 할까. 극복은 가능할까. 책에 답이 있을 리 만무했지만 그럴수록 몰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새벽에 "언제까지 약에 의존할 수 있나. 한번 사는 인생인데..."라는 생각으로 약을 끊었다. 그리고는 더 몰입하여 심리학 책을 읽었다.

전공 책부터 입문서, 심리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몇 개월을 매달렸다. 좀 달라진 것이 있었을까? 세상 모든 것에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원인을 알지 못하니 그 과정과 결과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가 나오겠나. 그래도 미친 듯 읽었다. 읽고 나서 바로 까먹는 부분이 많았지만, 그중 내 마음을 울리는 몇 문장도 있긴 했다. (물론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에게 심리학 지식을 묻지 말라. 그때도 지금도 야매 공부다.)


여러 권의 심리학 서적을 읽으면서 어렴풋하게 정리가 된 부분도 있었다. 내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 내가 어떻게 의미부여를 하고, 나아지겠다는 의지를 갖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 정신의 문제와 심리의 문제는 멀고도 가까운 관계이긴 하지만 내 문제는 심리적 문제라는 것을 명확히 하는 것 등등 정도는 정리를 할 수 있었다. 30권 가까이 읽었을 때 어느 정도는 불안과 우울을 떨치고 내 문제를 에 직면할 수 있었다.


그 후 10년이 지났다. 지금은 비교적 평온한 상태이다. 우울과 불안, 그로 인한 불면 같은 것은 거의 없다. 정신줄을 놓지 않고 육체적 정신적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일상을 일상답게 복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10년 동안 공저 두 권을 포함하여 다섯 권의 책을 썼다. 현재 두 권을 준비하고 있다. 나에게는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에너지의 원천이다. 이렇듯 무엇인가에 몰입할 수 있는 활동이 도움을 준다.




주변 지인들이 육체적,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상황에 맞게 코칭할 능력은 되지 않지만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은 할 수 있다. 물론 늘 느끼는 것이지만 공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따라서 단순히 상대가 주의 깊게 경청하는 것을 넘어 '내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문제가 해결이 되고 되지 않고는 나중의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답답해하는 이유는 '누구도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고 있지 않다'라는 막막함 때문이다. 그런데 상대의 상황을 듣고 이해한다는 것에는 어떤 준비나 혹은 능력이 필요할까.


내가 상대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것이 우선이다. 어떤 사태를 겪은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을 마사 누스바움은 '서사적 상상력(narrative Imagination)'이라 말했다. 서사적 상상력은 쉽게 말해 얼마나 더 '공감과 이해'를 할 수 있느냐와 관련한 역량(capabilities)이다. 서사적 상상력은 끊임없이 읽고 쓰는 중에, 의미 있는 타인과의 경험과 교류 사이에 쌓인다. 특히 문학 작품을 통해 타인의 삶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학은 우리가 계속 우리 자신인 채로 타인의 삶에 들어가 비슷한 점을 드러내는 동시에, 타인과 나 자신의 삶과 생각의 깊은 차이 역시 드러내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 또는 적어도 이해에 더 다가갈 수 있게 하겠다는 정치적인 약속을 해준다." - 마사 누스바움,  인간성수업, 174쪽


지금의 나는 비교적 평온하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 생기는 일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이다. 직관력은 물론이고 해석하는 힘도 늘었다. 이것은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문제는 상존한다. 어떤 것은 해결되고 어떤 것은 죽을 때까지 미완으로 남는다. 아울러 문제의 해결은 혼자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상황, 맥락, 관계 등이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 당장의 해결이 반드시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당장 해결이 어려운 문제들도 그저 습관처럼 몸에 붙이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어떤 일을 즉시 해결할 수 있으면 좋지만 때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결과를 너무 힘들지 않게 기다릴 수 있다는 것, 그 상황이 중요하다. 차분하고 진지하게 노력하며 기다리는 것, 결과에 목매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평온한 인내'이다. 그 전환점이 됐던 것은 10년 전 찾아온 시련과 이를 극복했던 과정이다. 내 경우는 '책 읽기'라는 내 방식대로 극복했고 누군가는 고된 운동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이겨내면 된다. 의지는 누구에게나 있다. 없다면 아직 꺼내지 못한 것일 뿐. 누구에게나 살면서 한두 번의 위기를 겪는다. 그걸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방법의 차이가 삶의 질의 차이로 이어진다.  
  

지금 당신을 괴롭히는 문제가 있는가. 다음 단계를 따르도록 제안한다.

1. 우선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한다. 필요하면 주변의 도움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정직하게 자신을 직면하는 것이 중요하다.

2. 문제 자체, 그리고 문제의 원인을 알아본다. 원인을 알아내지 못할 경우도 있다. 삶은 단순하지 않다. 문제를 평생 끼고 살아야 할 수도 있다는 상황을 이해하라. 경험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라.

3. 문제를 야기한 원인을 밝힐 수 있는지, 밝혔다면 해소할 수 있는 원인인지, 당장은 해결이 불가능한 것인지 파악한다.

4.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 당장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할 것을 구분한다. 당장 해야 할 것, 단순한 것부터 실천한다.


요컨대 상황을 개선하고 싶다면 무엇인가 일단 시작하라. 정직하게 자신을 직면하고 문제에 집중하라.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중장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구분하고 오늘은 그중 가장 단순한 문제부터 해결하라. 한 가지 더 첨언한다면 이 모든 과정에서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가져라. 때로 상황을 기록하는 것이 도움을 줄 수 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여러 생각들을 종합하여 그중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 문제 해결의 주체는 당신이다.


분명 다 읽었는데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 그때 그  책들





커버 이미지 https://www.youtube.com/watch?v=8Js0Bq45Ii0(영상에서 캡처)


매거진의 이전글 새벽, 푸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