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담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실밖 Dec 07. 2022

누구도 아닌 당신 스스로에게 성실하세요

내가 온전하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

성실(誠實)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진실로 정성을 다함'이란 말이다. 그런데 어떤 말이든 맥락과 상황에 따라 사뭇 다른 방식으로 쓰인다. 특히 권력관계가 양자 사이에 끼어들면 더욱 그러하다. 가령 상사가 부하직원의 덕목으로 성실을 강조한다면 이는 시키는 대로 토 달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는 뜻이다. 교사가 보는 학생의 성실, 교장이 보는 교사의 성실 등은 모두 권력관계를 사이에 두고 약자의 '의무'를 규정한다. 성실을 의무로 받아들여야 할 약자 입장에서 이 말은 대체로 부정적으로 쓰인다.


영향력이 강한 쪽에서 약한 쪽에 자꾸 성실을 강조하면 그 관계는 온전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만약 대등한 양자 사이의 '신의성실'을 규정했다면 이는 사회적 계약의 일종이다. 이 경우 성실은 양자가 합의한 계약을 준수한다는 뜻이다. '성실의무'를 조항에 넣는 법도 있다. 국가공무원법은 제56조에서 성실 의무를, 57조에서 복종의 의무를 명시한다. 성실이나 복종이 의무라는 말과 붙어 규범화한 경우다.


이렇듯 권력이 다른 상호관계 속에서 성실은 대체로 의무를 동반한다. 그런데 자기 자신에게 성실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경찰에 고발하는 일은 없다. 자기에게 성실하라는 말은 말 그대로 한점 거짓 없이 정성을 다해서 자신이 생각, 말,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다. 보는 사람이 없어도, 규정으로 옭아매지 않아도 오로지 자신의 내적 기준에 따라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여러 규제와 약속이 많지만 그중 어려운 것은 바로 '자기규제'이다. 내가 내 스스로를 통제하고 내적 자아와 계약을 맺고 점검하는 것은 감독하는 사람도, 중재자도 없는 고독한 자기결정이다. 그러니 어렵다. 특히 어떤 조직이 자율적 운영을 표방하고 있을 땐 더욱 그렇다. '자율'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는 추상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구성원의 참여와 헌신에 의존하는 개념이니만큼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한다'는 내적 규범이 서있지 않을 경우엔 오히려 혼란이 가중될 위험이 있다.

자기 자신에게 성실하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혼돈의 상황에 내적 질서를 부여해주는 방법이다. 사람이 무엇인가에 열정을 쏟을 때는 누군가가 자기를 보아줄 것이라는 인정 욕구가 동기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러한 인정 욕구를 넘어서 스스로의 지적 소양과 감수성을 계발하는 데 있어 자기규제는 필수이다. 물론, 개인은 무엇이든 생각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지만 그것은 자기 책임의 범위 안에서다.


자신의 욕구를 충실하게 직시하고, 이것의 시작과 끝에 대해 사유하며,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원활하게 작동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성실해야 한다. 그러면 비록 권력 관계가 비대칭이더라도 성실이라는 덕목이 약자에게만 향하는 의무로서가 아니라 상호 간에 스스로를 존중하는 가운데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자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어떤 과제를 놓고도 동일한 기준이 통할 수 있다. 다른 누구의 평가보다 당신 스스로의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일이다. 하나의 과제를 수행했을 때 진정으로 내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가 관건인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있다. 하다못해 휴대폰이라도 잡고 있어야 불안을 물리칠 수 있다. 바우만은 현대인의 이런 불안함을 '유동하는 근대'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지만, 그만큼 현대인의 불안증은 정도의 차이일뿐 넓고 깊게 퍼져있다.

그래서 승부는 타인과의 싸움 이전에 나 자신과의 경합에서 결정되고 만다. 욕구를 억제하라는 말이 아니다. 억제와 통제(control)는 다르다. 통제는 조절을 동반하는 개념이다. 내가 온전하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 '스스로에게 성실할 것'을 제안한다. 타인의 평판이 두려운가. 남에게 찬사를 받아도 내가 느끼기에 불행하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 우선 스스로를 들여다보라. 스스로의 생각과 행위에 만족하다면 당신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러기 위해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스스로에게 성실하라.




매거진의 이전글 공산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