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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Dec 11. 2022

환대의 장소, 거부의 장소

광화문 연가가 시작된 곳


덕수궁 돌담길 우측


최근 새벽에 집을 나설 때가 많았다. KTX 플랫폼에 올라서거나 역사를 빠져나올 때 바람이 몹시 차가웠다. 아침 회의를 위해 찾아가는 길목에 서있는 고궁의 돌담길은 언제나 그곳에서 말이 없다. 이 담을 끼고 숱한 사연이 만들어졌을 테다. 왕들의 거처로 쓰이다가 세상이 변하여 누구라도 궁궐에 출입할 있게 지금은 어떨까.

돌담길을
추억하는 이들은 이곳을 함께 걸었던 연인들이다. 이제 막 열정에 불타는 연인들이 걸었던 길이자 어쩌면 결별의 장소가 되었을 장소. 연인들은 보통 '정동길'로 불리는 덕수궁 정문에서 왼쪽으로 도는 담길을 걸었을 것이다. 이문세의 노래 광화문 연가에도 나오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과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있는 돌담길이다. 


덕수궁 돌담길 좌측, 몇해 전 이 근처에 근무할 때 비오는 날 걸었다


"이젠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이 노랫말을 듣고 가슴 한켠이 아린 당신은 정동길을 걸었던 추억이 있었거나, 남다른 감수성이 있거나. 

이 장소에 대한 내 추억은 그저 출근길에 바삐 걷거나, 이른 아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시내에서 몇 안 되는 조찬 장소를 찾아가는 느낌 정도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만들어졌을 숱한 사연들에 귀 기울일 수 있고, 때로 천천히 걸으며 젊은 날 광화문 일대의 기억을 소환할 수는 있다. 이곳은 오욕과 수치의 장소였고, 연인들의 사연이 발생한 장소였으며, 아직 추억이 되긴 아까운,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치던 곳이기도 하다. 


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장소는 사람을 환대하기도 하고, 몰아내기도 한다. 어떤 장소에 갔을 때 어색하고, 빨리 나오고 싶은 곳이 있다. 환대받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 때문이다. 장소가 말을 할리 없지만,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이 그러하다. 사람이 장소를 만들고, 어떨 땐 그들만의 권위를 만들고, 어떨 땐 개방적 공간을 만든다. 누구나 돌담길을 끼고 걸을 때면 자기만의 추억을 떠올리며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이라고 흥얼거리는 것이다.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이 언덕 밑 정동길에 남아 있는지 확인하면서...




1592년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 갔던 선조가 다시 한양으로 돌아와 여러 채의 집을 합하여 행궁으로 삼은 것이 시작이었다. 광해군 때 경운궁으로 불렀고, 개항기에 이르러 을미사변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후, 1897년 2월에 환궁하게 되었다. 


1904년 덕수궁 대화재와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 이후 덕수궁은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고 이때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오욕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담은 외부로부터 내부를 지키는 용도로 쌓는다. 한편으로 내부와 외부를 분리할 필요성 때문에 담을 쌓는다. 덕수궁을 추억할 때 내부에서 사연이 많이 발생했으면 그는 귀족이었을 것이요, 돌담 밖의 사연이 더 많다면 그냥 평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커버 이미지 Yellow Wall Girl - Free photo on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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