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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Jan 15. 2023

끈기 있게 읽는 당신

당신의 뇌 속 회로는 재배열 중인가요?

요즘 글을 읽으면서 적잖이 놀랄 때가 있다. 무엇인가를 끈기 있게 읽는 것이 무척 힘들어졌다는 점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책을 읽을 때조차도 내용보다 '읽는 시간'을 유지하는 데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렇게 된 것에는 지난 3년간 내 업무 방식의 급속한 변화가 있다. 우선 언제 어디서든 유선 대기 상태여야 했다. 한시라도 휴대폰을 멀리 할 수 없는 업무 환경이었다는 말이다.

그것이 직장이든, 집이든, 심지어 달리는 고속열차의 객실 안에서도 휴대 단말기를 통해 전해오는 메시지를 빠르게 읽고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이것을 빠르게 검토하여 의견을 전달하지 않을 경우란 업무가 내 위치에서 진행을 멈추었다는 것을 뜻한다. 규정상 나의 검토가 끝나야 그 일이 진행되고, 사람이 움직이고, 예산이 붙는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나에게 업무가 정체되고 있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신속하게 읽고, 빠른 피드백을 주는 것이 필수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휴대폰으로 들어오는 그날의 교육뉴스를 읽어야 했고, 소식의 양이 너무 많아 핵심만 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도 말해두겠다. 시간은 제한돼 있고 읽고 파악해야 할 정보의 양이 많을 때 내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바로 현안이 되는 사항을 키워드 중심으로 대충 '훑어 읽기'다. 같은 교육기사라 할지라도, 그것의 중요도와는 상관없이 내 업무와 관련이 있는가를 먼저 따지고, 빠르게 대응 방안을 마련하거나 마련하도록 지시하는 일이 더 중요했다.

이렇게 몇 년을 생활하다 보니 확연히 느꼈다. 내 안의 '읽기 세포'가 퇴화하고 있다는 것을. 책상 위에 채 읽지 못한 책이 쌓여 갔고, 한 달에 한 권 남짓한 독서량을 두고도 주변에서는 '책을 읽을 정도로 한가하신가?'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절대 시간이 줄어들고, 짬짬이 읽다 보면 책 속 내용도 다 부서져 연결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책을 읽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업무 탓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업무 이야기를 먼저 한 것은 이것보다 더 큰 사회문화적 흐름의 변화가 있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이런 변화에 '디지털 전환'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가령 지난 시기에 비하여 종이 책을 대하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읽기 시간도 꽤 줄어들었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사항이다.

지금은 종이 책을 펼쳐 들고 한 시간 이상 몰입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휴대폰, 그보다 먼저 소셜미디어 창을 열고 마는 포노사피엔스 인간 당사자, 한정된 시간 안에 정보를 취해야 한다는 강박은, 읽는 인간을 보는 인간으로 만들고 있다. 이에 따라 판단의 근거 역시 누군가가 시간과 공을 들여 정리해 놓은 이야기가 아니라 온라인에 넘치는 세간의 자극적 콘텐츠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십 수년을 진화한 결과 이제는 온라인에 있는 글마저도 끈기 있게 읽어내는데 한계를 느낀다. 디지털은 이런 인간의 속성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글줄보다는 영상으로, 긴 영상보다는 짧은 영상으로 사람들을 디지털 단말기 앞에 묶어 둔다. 디지털의 입장에선 대단한 성공이다.

10년 이상 페이스북 헤비유저였던 난, 물리적인 시간 여유와 관계가 주는 피로 때문에 상대적으로 브런치에서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언젠가 이야기한 바 있지만 브런치가 주는 '질감'이 종이 책의 '물성'과  닮아 있다는 점이 나를 그쪽으로 이끌었다. 모든 소셜 미디어에 '상대성'이 있다는 것은 철칙이다. 내 글을 읽어주기만을 바라고 글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브런치 역시 페이스북에 비하여 댓글로 소통하는 횟수가 현저하게 적을 뿐, 내 글을 쓰고, 타인의 읽는 구조는 비슷하다. 또 내 글에 반복적으로 읽는 흔적을 남기는 작가의 경우엔, 나도 그쪽을 방문하여 글을 읽는 것이 무언의 약속이기도 하다. 물론 이 점은 페이스북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품앗이에 야박하다면 디지털 네트워크에서 진화하는 인간으로 안착하기 힘들 것이다. 이 구조를 너무 자기화한 나머지 네트워크 속에서조차 불화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말이다.  

고백하건대, 최근 내가 다른 작가의 글을 대충 읽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였다.(이걸 의식해야 발견할 수 있다니... 이런 현상 역시 이 글의 성격과 관련이 있다.) 물론 어떤 글에는 나도 모르는 끌림이 작용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지만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선택적 읽기 역시 작가들을 힘들게 한다. '도대체 어떻게 써야 내 글의 열독률을 높일 수 있단 말이냐'와 같은 푸념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들은 쉽게 타협한다. 꼬시는 제목을 달거나, 긴 글은 피하고, 글의 깊이를 낮추어 흥미롭게 읽게 하려는 시도, 결론을 앞에 달아 핵심을 먼저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그 유명한 온라인 글쓰기의 전범, '제목을 끌리게 달고, 문장 구성은 두괄식으로'... 모두가 인내심이 바닥으로 떨어진 독자들을 유치하려는 유치한 작전이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이 심화할수록 사색의 시간은 사치의 시간이 되고,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깊이 읽기를 하는 사람들은 급속하게 줄어든다. 같은 문서를 읽는 연구에서 한 그룹은 종이 책으로, 다른 그룹은 모니터 화면을 통해 읽게 했더니 그것을 기억하거나, 핵심내용에 대한 이해 측면에서 종이 책을 읽은 그룹이 더 많은 기억과 이해를 보였다. 이 결과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디지털 전환의 거대한 흐름은 인간으로 하여금 시간을 투자하여 '끈기 있게' 무엇인가를 읽을 시간을 빼앗아간다는 것은 명확하다.  


매리언 울프는 <다시, 책으로>라는 그의 책에서 이 같은 현상을 분석한다. 디지털 전환의 결과 "우리 뇌에서 읽기 회로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뇌과학의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종이 책을 멀리하거나, 긴 문장을 읽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반복해 읽어도 기억을 잘 못하는 등의 많은 문제가 읽는 뇌에서 보는 뇌로 회로를 재배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당신 탓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당신 탓인 이유는 온라인 글이나 영상에 몰입하는 것을 반복하다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뇌의 회로를 재배열되도록 방치하였다는 것이고, 당신 탓이 아닌 이유는, 그것을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말이다. '메타인지(metacognition)'라는 말은 인지 과정에 대하여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관찰ㆍ발견ㆍ통제하는 정신 작용을 이른다. 말하자면 내가 A, B, C를 각각 사고하면서도 이들 모두를 아우르는 차원에서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이다.

종이 책을 멀리하면 메타인지력이 떨어진다. 메리언 울프의 말을 빌리면, 뇌의 읽기 회로를 재배열하여 긴 글이나 복잡한 개념이 들어간 글은 읽기 힘들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즉, 당신의 뇌를 이루는 회로가 이미 재배열을 당해 점점 더 감각적인 것만 탐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슬픈 이야기. 누군가 말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닮아가는 것보다 무서운 것은 인간이 인공지능을 닮아간다는 것.

무엇을 읽을 것인가도 중요하고, 어떻게 읽을 것인가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의 뇌가 무엇을 더 편하게 읽는지를 먼저 알아보는 일이다. 전보다 더 종이 책 읽기가 힘들어졌다면, 영상보다는 글줄을 대할 때 피곤함을 느낀다면 당신의 뇌 회로는 이미 재배열당했거나, 재배열 중이라는 이야기다. 해결책이 있다. 다시 끈기 있게 문장을 잡아야 하고, 진중하게 읽는 것에 시간을 투여해야 한다. 잃어버린 시간 이상으로 투여해야 이전으로 돌아온다는 점만 명심하자.

 



커버 이미지 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22/dec/31/new-years-resolution-more-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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