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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Aug 15. 2023

집중하지 못하는 현대인

우리는 집중력을 적극적으로 도난당하고 있다. -요한 하리

단순한 질문 하나. "당신은 지금 과거에 비하여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이 더 힘들어졌는가?"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렇다."라고 답변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된 원인 중 하나를 디지털 기기의 사용으로 지목한다. 스마트폰을 사용한 이래 우리는 더 이상 타인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않는다. 종이 편지를 썼던 기억은 대체로 20년 전일 것이다. 아파트 현관 우편함에서 발견하는 것은 공동주택 관리비 고지서이거나 백화점의 홍보 자료, 그리고 내가 가입한 단체가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도서이다. 지금 우편함을 열어보며 누군가 보냈을지 모를 편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만나는 사람의 이름이나 얼굴을 기억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마스크를 착용했을 때와 벗었을 때의 이미지가 달라서 기억에 혼선을 주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우리 모두 집단적 안면 인식 장애를 겪고 있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에게 타인이란 존재는 디지털화한 상상 속 이미지이다. 실세계에서 만난 연인들도 서로 얼굴을 보며 대화하지 않는다.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은 본인의 취향에 맞는 커피를 마시며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가장 밀도 높은 소통의 조건이 마련되어 있음에도 대화의 소재는 방금 SNS에서 본 내용이다. 미성년자든 성인이든 디지털 기기를 한두 시간 만지고 쓰다듬는 것엔 익숙하지만 종이책을 한 시간 이상 집중하여 읽지 못한다. 책을 한 권 다 읽는 행위는 거의 극기훈련에 가까울 정도다. 

어쩌다 종이책을 읽을 때에도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스마트폰을 통해 유의미한 정보를 입수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선정적인 기사를 읽거나, 짧은 영상을 보거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에 '좋아요'나 댓글이 얼마나 붙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온라인으로 상호작용한다는 말이 무색하다. 온라인상의 많은 대화를 보자.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그에 대하여 의견을 말하면서 이어지는 대화가 아니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성실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의사소통, https://collegemarker.com/blogs/the-art-of-communication/


상호작용은 두 명 이상의 사람들이 서로 질문하고 답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상호작용은 '생각'을 동반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온라인상에서 사람들의 대화는 주고받는 것이 아닌, 일방적 발화가 대부분이다. 그저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 여기 있어요."를 외치고 있는 형국이랄까. 

하루 종일 네트워크에 연결돼 있는 현대인은 더 이상 고독할 여유가 없다. 그러나 또 다른 종류의 고독이 싹튼다. 앞 문장의 고독은 사색을 동반한 독립적 자아에서 비롯하고 뒤의 고독은 그저 세상으로부터 고립일 뿐이다. '함께 있으나 지독하게 외로운' 디지털 세상은 모든 현대인이 겪는 모순의 극치다. 그리하여 인간은 온라인에 집착하고, 이에 비례하여 더욱 어려워지는 자기 증명으로 인해 다시 고독감을 느끼는 일상을 반복한다.

그렇다고 당장 인터넷을 끊고, 종이책에 집중할 수 있을까. 아마 힘들 것이다. 비극적이지만 이게 리얼리티이다. 줄글로 이뤄진 텍스트는 점점 더 그리고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지극히 실용적인 도서들이 있긴 하지만 이마저도 당장의 이익을 구하는 독자들의 갈증에 부응하는 것일 뿐, 엄격히 말하여 사색이 담긴 독서라고 할 수 없다.    


매리언 울프는 <다시, 책으로>라는 그의 책에서 이 같은 현상을 분석했다. 현대인의 일상이 디지털로 전환된 결과 "우리 뇌에서 읽기 회로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뇌과학의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종이 책을 멀리하거나, 긴 문장을 읽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반복해 읽어도 기억을 잘 못하는 등의 많은 문제가 읽는 뇌에서 보는 뇌로 회로를 재배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매리언 울프, 다시 책으로


이것은 당신 탓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당신 탓인 이유는 온라인 글이나 영상에 몰입하는 것을 반복하다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뇌의 회로를 재배열되도록 방치하였다는 것이고, 당신 탓이 아닌 이유는, 그것을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말이다. '메타인지(metacognition)'라는 말은 인지 과정에 대하여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관찰ㆍ발견ㆍ통제하는 정신 작용을 이른다. 말하자면 내가 A, B, C를 각각 사고하면서도 이들 모두를 아우르는 차원에서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이다.


지하철 객실의 풍경을 보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 폰에 눈을 고정하고 있다. 거의 모든 젊은이들과 일부의 중년들은 이어폰으로 무엇인가를 듣고 있다. 그들의 감각은 '보고 듣는 것'을 동시에 하는 것으로 진화했다. 다중 감각을 이용하는 멀티태스킹의 시대가 열린 것일까? <도둑맞은 집중력>을 쓴 요한 하리는 '아니요'라고 말한다. 한 번에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은 단지 착각일 뿐, 뇌는 정확히 한 가지씩 순차적으로 정보를 처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멀티태스킹이 진전할수록 흡수하는 정보의 질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요한 하리는 <도둑맞은 집중력>에서 종이책으로 읽은 학생들은 스크린으로 읽은 학생들보다 줄거리를 시간 순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에서 더 뛰어났음을 밝혔다. 디지털 화면으로 읽은 학생들은 소설에서 간과하기 쉬운 세부적인 사건의 순서를 놓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세부적인 내용을 건너뛴다면 그 소설을 읽을 것이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걱정한다. 아이들이 처리해야 할 정보는 점점 늘어나는 반면 그것을 처리할 시간은 줄어들면서 아이의 주의와 기억의 발달에 최대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 아니요, 이해는 피상적 수준에 머문다. 


요한 하리, 도둑맞은 집중력


다시 '인식과 집중' 문제로 돌아가보자. 타인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일 순 없다.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전화번호에서 이름만 검색하면 친절하게 전화를 걸어주기 때문이다. 디지털과 네트워크가 인간 생활을 조금 더 편리하게 진화시킨 결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일까. 모르겠다. 내 경우는 확실히 얼굴을 기억하는 것, 얼굴과 이름을 매칭하는 것이 힘들다. 한 가지 일에 꾸준히 몰입하는 것은 어떨까. 좋게 말하면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한다는 멀티태스킹인데 요한 하리가 말하기를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경우 흡수하는 정보의 질이 낮아진다고 하였다.

그러면 '책 읽기'는 어떻까. 나는 위에서 종이책을 한 권 읽는 것은 거의 극기훈련에 가깝다고 하였다. 분명 이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현대인이 당면한 문제이다. 종이책이 아니어도 영상을 비롯한 모니터 화면 속 정보를 섭취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디지털 정보의 습득이 지식의 온전한 습득과 이해를 보장할 수 있을까. 이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지식에 대한 개념을 바꾸자고 할 판이다. 20년 동안 열 권 넘는 책을 세상에 내어 놓은 입장에서 몇 가지 확실한 변화는 있다.

1) 데이터에 의하면 사람들은 예전에 비해 종이책을 읽지 않는다.  
2) 그렇다고 종이책을 디지털화한 이북이 대중화한 것도 아니다. 
3) 학령기 학습자는 물론이고 성인들의 문해력이 많이 떨어졌다. 
4) 한 시간 이상 책을 읽기 위해서는 엄청난 인내를 필요로 한다. 
5) 영상을 비롯한 디지털 매체에서 유의미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아니다. 
 


긴 글 읽기에 익숙한 분일지라도 여기까지 읽는 독자는 몇 분 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대단한 인내력의 소유자이며, 적어도 당신은 집중력 문제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그 시간이 상당 기간 뒤로 미뤄지거나. 끝까지 읽어준 당신의 집중력이 제대로 복원되기를.  




커버이미지 https://blog.vantagecircle.com/good-communication-skills-in-the-work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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