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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Jun 15. 2024

동시다발 교실밖 투병기(추가)

견뎌야 할 시간의 틈새마다 도사린 무수한 변곡점

2023년 12월14일


지난 달에 뇌 MRI를 찍었고 엊그제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뇌하수체와 시신경 사이에 1.8cm 정도 되는 크기의 종양이 발견되었다. 신경외과, 안과, 내분비내과 등 협력 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지금은 각 과 돌며 이런 저런 검사를 하고 있다. 위치가 썩 좋지는 않은데 수술하면 된다고 하니 성실하게 치료에 임하려고 한다.


2024년 1월 26일


평일 오전인데 직장에 나가지 않고 집에 머물고 있다. TV를 켜놓고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본다. 잡생각이 꼬리를 문다. 지난해 11월에 MRI 검사에서 뇌종양 진단을 받았고, 몇 군데 큰 병원 순례를 통해 설명을 들었다. 모두 같은 진단에, 수술을 하자고 했다. 그중 국내에서 수술 사례가 가장 많다는 한 곳과 수술 일정을 잡았다.


잦은 병가, 의회 일정 조정 때문에 알리지 않을 수 없었고, 굳이 숨길 일도 아니어서 먼저 직장에 오픈한 이후 여러 곳에서 안부를 묻는 전화를 받았다. 5분을 보자고 시간을 쪼개어 방문한 분들도 있었다.


추가로 정밀하게 찍은 MRI 사진을 보며 의사는 쉬운 수술은 아니고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 말했다. 종양의 한쪽이 시신경을 누르고 있고 한쪽은 혈관에 붙어 있단다. 일부는 수술로 긁어내고 일부는 방사선 치료를 하자고 했다. 의사는 늘 나쁜 경우까지 말하는 게 일종의 룰인지라 그러려니 한다. 병원에서 신규 암으로 건강보험공단에 산정특례 신고를 해주었다. 신고 직후부터 뇌종양 관련 진료비의 5%만 부담한다. 한국의 의료보장 제도는 세계 제일이다. 뜬금없이 자부심을 느꼈던 그날 오후.


내 나쁜 머리를 굴려 정리해 보면 좋은 사정은 '양성 뇌수막종'이라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나쁜 사정은 위치가 좋지 않아 수술이 어렵다는 것이다. 뇌 쪽은 수술 전보다 수술 후 예후관리가 중요하단다. 거기다 뇌 앞쪽에서 작은 종양이 하나 더 발견되었다. 원 플러스 원은 마트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건 추적 관찰하다가 필요한 경우 감마나이프 수술로 제거하기로 했다.


머리를 많이 써서 종양이 생겼다고 하면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라도 되는데, 이건 유전도 아니고 원인도 모르고, 예방도 안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순전히 운빨이라는 건데... 거참 머리 많이 써서 걸리는 병이라 하면 뭔가 있어 보이는데, 이건 뭐 그냥 아무것도 아닌 거다.


처음 뇌종양 진단을 받고 주변에 알리기 전까지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이었다. 업무도, 생활도 흔들림이 없었다. 직장에 공식 보고한 날 오후부터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사실 관계를 잘못 알고 있는 분들도 꽤 있어 페이스북에 간단히 공지했다.


지인들의 반응으로 인해 현타가 왔다. '아, 그렇지. 내 상태가 지금 이렇지...' 그렇지만 아직도 구체적인 준비를 못하고 있다. 공통된 조언은 수술을 하려면 체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며 당분이 많이 들어간 캔디를 오물거릴 때가 아니란 말이지.


업무는 일부 조정을 하였고 생활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유지했다. 심지어 최근엔 포럼에 나가서 토론도 했고, 의뢰를 받은 짧은 글도 두어 편 써서 넘겼다. 시간이 날 때마다 걸었다. 다만 최근 닥친 강추위는 견디기 힘들었다. 모든 관절이 같이 얼어붙는 듯 아우성이었다. 저녁이면 추위를 견딘 근육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사실 종양으로 인해 발현되는 증상은 크지 않다. 눈이 피곤하고 간헐적으로 두통이 있긴 한데 못 견딜 정도는 전혀 아니다.


지금 갖는 여유가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달달한 캔디를 입에서 녹이며 탈북인의 생활을 그린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영화를 봤다. 담담한 스토리였는데 몇 군데에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멘털이 약해진 게지. 나는 누구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나를 자문했다. 물론 상대의 답이 필요한 거지 내 답은 필요가 없다.


달달한 캔디의 위로


마트에서나 주는 원 플러스 원 선물을 받아 들고 평정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때론 아무것 맞는 것 같다. 올 8월에 정년이다. 이런저런 흥미로운 계획이 있었다. 저당 잡힌 10년 세월도 보상받고 싶었다. 지금 그 모든 계획의 불확실성이 높아졌지만 그 시간이 너무 길지 않았으면 한다.



5월 13일


싱그러운 오월의 아침이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날씨다. 출근하기 싫다는 마음도 올라오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더는 출근하지 않는 난 아침부터 한가로이 강변을 산책하고 있다.


엊그제 아들이 9년 동안 사귀던 여성과 혼인을 하였다. 지인들에게 미리 공지하지 않은 것은 죄송하나 워낙 작게 치른 결혼식이었다. 주례 없이 내가 축사를 하고 신부 아버지께서 덕담을 했다. 그저 잘 살라고 마음으로 축하해 준다면 지금 신혼 여행지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자들에게 전하겠다.


오늘 부로 아들 결혼 시즌은 끝났고 지금부터는 나의 시간이다. 얼마가 될지 모를 검사와 입원과 수술과 회복의 시간을 시작한다. 출장 갔다 오듯 머릿속에 든 종양 따위 시원하게 긁어내고 돌아오겠다.


와중에 내 책 <교사, 학습공동체에서 미래교육을 상상하다>가 지난 주말 3쇄를 찍었다. 요즘 종이책이 많이 읽히지 않는다. 그래도 공부할 때 참고하면 고맙겠다. 올 8월 말이 정년인데 소망이 있다면 8월 한 달이라도 업무에 복귀하여 열심히 일하다가 퇴임하고 싶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이게 소망이 될 줄은 몰랐지만.



5월 21일


정오에 병원에 들어와서 수술 전 동의서를 쓰고 두 시에 병실을 배정받았다. 너른 창으로 강남 일대가 다 보이는구나. 내일 새벽에 MRI 한 번 더 찍고 모레 아침에 수술이다. 거시기 머시기 해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나니, 이제 실감이 나네... ~^^


병실 밖은 강남


병실 창 밖으로 보이는 국내 최고 높이의 건물


5월 25일


21일 입원하여 이런저런 검사와 거시기 머시기한 동의서에 여러 장 서명을 하고 23일 아침 수술을 했다. 수술을 마치고 관찰실과 준중환자실에서 회복에 들어갔다. 머리 쪽 베드를 높이고 있어야 한다. 경접형동 수술이라 코를 막아 놓았다. 입으로만 숨을 쉬고 있다. 자세 고정, 숨은 입으로만. 거기다 워낙 강력한 스테로이드와 항생제를 쓰니 입마름이 한계치를 넘고 있다. 그렇게 하루를 버티고 소변줄을 제거한 후 일반병실로 옮겼다.


아직 육신의 여기저기 불편한 곳은 많지만 정신은 몹시 말짱하다는 소식부터 알린다. 방금 담당 의사께서 어려운 수술이었으나 잘 진행됐다고 말씀해주셨다. 병실 창밖으로 산이 보여서 좋다. 배우자가 옆에서 고생했고,  독자들의 격려와 기도가 많은 의지가 됐다. 두루 감사드린다.


(영화 중경삼림의 OST 몽중인을 왕페이가 부른다. 첫 소절이 "몽쫑런~" 이렇게 시작이 되는데 작년 말 진단 후 같은 멜로디로 "뇌종양~" 이렇게 반복하여 중얼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


https://youtu.be/WjbjAoAIW_0?si=ld4KrE0ZZcEZhorT



5월 30일


퇴원했다. 담당 교수님 회진 때 "종양은 잘 제거되었다. 시신경은 손상 직전이었으나 잘 살렸고, 뇌혈관을 감싸고 있던 종양도 잘 제거됐다"는 말씀을 들었다. 머리 앞쪽에 하나 더 있는 작은 것은 경과를 보면서 나중에 감마나이프로 수술할 수 있다고 한다. 시종 곁을 지킨 배우자와 마음 졸인 가족, 그리고 동료들, 격려와 응원으로 힘을 주신 독자들에게도 깊이 감사드린다.


사실 뇌종양은 수술 전보다 수술 후 예후관리가 힘들다고 한다. 내 경우 수술 전에는 평상시 활동을 다 할 수 있었지만 수술 후엔 얼마가 될지 모를 재활 기간을 잘 관리하고 견뎌야 한다. 치료 과정에서 더 큰 위험을 줄이기 위해 스테로이드 약물을 세게 쓰는데 이것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가장 큰 것이 혈당 수치가 치솟는 것과 (극단적) 구강건조, 소변 양이 급격히 느는 것, 정상 체온에서도 느끼는 열감인데, 잘 관리하려 노력하고 있다. 어떤 경우든 신속한 조치 사항 후 응급실로 들어오라는 매뉴얼이 있으니 그것을 따르면 된다. 복용해야 할 약의 양이 참 많지만, 큰 위험을 줄이기 위해 나타나는 부작용은 마땅히 감수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목소리는 내 목소리가 아니다. 기도삽관 과정에서 후두나 성대가 손상됐을 것이다. 서서히 돌아올 것이다. 후각과 미각은 소실 상태이다. 음식을 먹으면 모래알 씹는 것 같다. 또 고개를 앞으로 숙이지 못하는 것, 충격을 피해야 하는 것 등 모두 수술 후에 조심해야 할 것들이. 시간이 해결을 해주겠지. 퇴원할 때 병실 밖은 더없이 맑았고, 서식처 화초들도 건강했다.  


거듭 위로와 격려에 깊이 감사드린다.


퇴원하는 날 병실 밖, 하늘이 좋구나


나를 기다린 집안의 화초들



6월 3일


퇴원 후 첫 번째 통원치료 날이다. 뇌종양 수술은 신경외과에서 했지만 이비인후과, 내분비내과, 안과의 협진 속에서 치료와 재활이 이뤄지는 구조다. 오늘은 이비인후과, 일주일 후엔 내분비내과, 한 달 후엔 신경외과, 그다음엔 안과 순이다.


간혹 소변 양이 늘어나 병원에서 준 비상약을 먹거나 혈당이 치솟아 긴장하기도 했지만 매뉴얼에 따라 잘 대처하고 있다. 아직 후각, 미각이 돌아오지 않았으나 음식도 잘 먹고 있다. 적은 양을 천천히 먹는데 그것만으로도 몸이 좋아질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고개를 숙일 수 없어 씻거나 옷을 입을 때 불편하지만 이건 도리없이 시간을 견뎌야 하는 과정이다.


엊그제부터 배우자의 도움을 받아 집 주변을 살살 걷고 있다. 우리 집 주변이 이렇게나 다양한 수종의 푸르고 싱싱한 나무들이 있었나 감탄하고 있다. 일할 때는 자세히 관찰할 기회가 없었다. 느릿하게 관찰하니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다 눈에 들어온다. 그동안은 그냥 흘깃 보면서 보았노라고 '생명 있는 모든 것들에 영광 있으라'라고 헛소리를 했다. 아프지 않았다면 평생 헛소리를 할 뻔했다.


느릿하게 걸으니 보이지 않았던 집 주변 생명들이 눈에 들어왔다


6월 6일


어제 오후 열이 계속되면서 극심한 복통에 시달리다 응급실을 거쳐 다시 입원했다. 40이 기준인 간수치가 700을 넘고, 담낭 이상 소견이 있는데 오늘 휴일이라 내일 담당 의사 출근하면 이야기를 들어보고 수술한 곳으로 전원 할지 이곳에서 치료할지 결정해야 할 것 같다. 정신만 말짱하지 몸은 총체적 난국인 셈이다. 그 반대였다 해도 괴롭긴 마찬가지겠지.


설상가상 물도 입에 대지 말라는 금식 지침이라 입마름이 다시 도를 넘고 있다. 수술 회복을 위해 스테로이드를 세게 쓰다 보니 그로 인한 다채로운 부작용이 참 많다. 혈당이 치솟고, 소변양이 많아지며, 발열이 있는데 몸의 약한 곳부터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수술 전엔 미미하게 불편했던 곳들도 다시 들고일어나는 느낌이랄까. 몇 번이나 ㅅㅂ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어제 오전만 해도 지팡이 집고 집 주변 산책하며 수목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게 모야. 병실엔 점심 식사가 시작됐다. 물도 먹을 수 없는 난 휴게실로 나왔다. 밥 대신 수액으로 달아준 정체불명의 흰 액체를 그저 바라볼 뿐.


내가 할 수 있는 건 시간을 견디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시간의 틈새마다 무수한 변곡점이 있다는 것을, 최대한 회복하는 것이지 수술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도리없이 인정하고 있다.


물 한 방울 먹지 못하고 며칠을 견디는 건 큰 고역이다



6월 11일


뇌종양 수술 후 회복 중이던 6월 5일 저녁부터 극심한 복통과 발열로 시달리다 자정 넘어 동네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CT 결과, 700이 넘는 간수치, 210까지 오른 혈압, 발열, 황달 등 검사 후 모든 수치는 담낭염을 향한다. 입원 후 병실로 옮겼는데 통증과 발열이 계속되고 휴일이라 의사도 만날 수 없어 극기훈련하는 맘으로 버티다 밤 9시에 뇌종양 수술한 병원의 응급실로 전원 했다.


즉시 마약성 진통제로 통증을 가라앉히고 검사 후에 담관, 췌관 스텐트 설치하고 회복실을 거쳐 소화기내과에 재입원했다. 남은 것은 돌이 있는 담낭을 떼어내는 수술이라 어제 외과로 전과했다. 수술 일정을 잡아야 하는데 뇌종양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금 조정이 될 것 같다.


이틀 동안 겪었던 통증은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아픔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게 산통과 맞먹는다고... 그래서 담도산통으로 부른다고 한다. (모든 산모에게 경의를...)


4시간 간격으로 쓰는 강력한 진통제 덕분에 버텼다. 진통제 투여 간격도 조금씩 길어지고 있다. 내일 검사하고 구체적 수술 일정이 정해질 듯. 한 달도 안돼 두 번의 수술이라니, 주여 저에게도 관심을...ㅠ


이제 병실 밖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궁금해하시는 독자들을 위한 간단 브리핑 끝.


푸르게 바뀐 병실 밖 풍경


6월 13일


오늘 '일시' 퇴원했다. 다음 주에 다시 입원하여 담낭제거 수술을 할 예정이다. 출장 다녀오듯 수술대에 올라 뇌 속에 있는 종양을 시원하게 긁어내고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그러기엔 육신의 회복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여기에 더하여 생각지도 못한 돌을 몸 안에 키웠다.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극악스러운 통증을 견디고, 한 달 새 두 번이나 수술을 하게 되는 일도 보통은 일어나지 않는 드문 일이다.


상당한 시간 차를 두고 수술을 했다면 좀 더 쉽게 견딜 수 있었을까. 모를 일이다. 어차피 담낭 안에 든 돌은 수술로만 제거할 수 있다고 하니 언젠가는 다시 수술대에 올랐을 터. 이번 기회에 몸에 있는 나쁜 것들을 다 들어내는 계기로 삼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뇌 수술 후 퇴원하여 발열이 37.8도 이상 지속되면 뇌수막종이 의심되니 해열제를 쓰지 말고 바로 응급실로 들어오라 했었다. 처음엔 그렇게 되는 줄 알았다가 극심한 복통과 발열이 있어, 복통부터 진정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동네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그런데 열이 38.7도까지 오르고, 혈압과 간수치가 급 상승하여 결국 늦은 밤 구급차에 실려 뇌 수술한 병원으로 이동하여 즉시 마약성 진통제를 맞고 담관 체관 스텐트 시술을 진행했다. 소화기내과에서 회복하다가 수술 준비를 위해 외과로 전과했다.


5월부터 모두 여섯 군데 진료과를 '전전'하고 있다. 이런 노마드 같으니라구. 같은 시술을 한 다른 환자들보다 입원 기간도 길고 회복도 더디다. 그만큼 몸이 약해졌다는 뜻일 게다. 워낙 수술 전부터 혈압도 혈당도 경계치였다. (근데 내 나이면 다들 그렇지 않나)


퇴원 약으로 혈압약과 당뇨약이 추가됐다. 신경외과 약과 합치니 아침, 저녁은 아주 약 부자다. 배우자가 헷갈리지 않게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뉜 플라스틱 통에 다음 먹을 약을 담아 주었다. 내가 경험한 바 가장 부작용이 큰 것은 스테로이드와 항생제다. 모든 음식을 모래 씹는 맛으로 바꾸어 주는 신비의 약물이다. 뭐 더 큰 위험을 막기 위해 생기는 부작용이니 감내할 수밖에.


첫 수술을 위한 입원 하루 전에 걷다가 세게 넘어졌었다. 손목 인대가 다치고, 무릎이 까졌는데.... 이것으로 나는 '낙상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노란색 인식 팔찌를 찼다. 그럼 조심할 것이 많아진다. 일시적이지만 퇴원을 했다는 것은 그것을 풀렸다는 것이고 몸이 자유를 얻었음을 의미한다.


바깥에 나가 집 주변을 살살 걸었다. 집에 오니 그래도 좋다. 갑자기 엄습한 몸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잡생각이 많다. 2월까지는 전력을 다 해 일을 했고, 아들놈 결혼식까지 잘 마무리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까.. 신의 계획이 의심되지만, 바보가 아니므로 지금은 회복에 집중할 때라는 것을 안다.


궁금해하는 페친들을 위해 간단한 근황만 알리겠다고 한 것이 상투적이고 지루한 '투병일지'가 돼 버렸다. 이렇게 하면 친구들의 격려와 응원이 있거든. 그러면 힘이 나거든. 힘이 나면 우울을 떨치고 회복에 집중할 수 있거든. 두루 고맙다. 열심히 살아서 갚겠다.


집 앞
집 옆


6월 22일


오늘 퇴원하여 집에 돌아왔다. 복강경을 통한 담낭 제거 수술은 잘 된 것 같다. 어제 수술하고 오늘은 살살 걸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음주, 흡연도 안 하고, 음식도 담백한 것으로 가려 먹었으며 규칙적으로 생활한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것이 내 의지만으로 되지는 않았다. 건강에 대한 거창한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동안 해 온 업무를 차질 없이 수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실천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장시간 조금씩 쌓인 것이 많았나 보다.


이제 남은 것은 뇌 수술을 한 신경외과를 비롯하여, 담관 스텐트 설치한 소화기내과, 담낭 절제 수술한 외과 등 여러 과를 외래로 전전하면서 예후 관리를 해야 한다. 혈압과 당뇨는 경계선 상에 있었는데, 이번에 스테로이드 약제를 강하게 쓰면서 아주 날개를 달았다.


회복하는 대로 그동안 소홀했던 꼬뮨 관리도 해야겠다. 일중연(국제 일중독자연대), 발쓰모(발가락으로 글쓰기 모임), 온삼동(온라인삼행시문학동호회), 인걷연(인터내셔널걷기연합), 쓸빠협(쓸개빠진인간협회),책읽는교컴 등등...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복강경이니 복부를 뚫었는데 회복 과정에서 어깨와 등도 아프다. 수술할 때 부위를 정확히 관찰하기 위해 가스를 주입하는 데 그게 빠지는 과정이라 아프다고 하는데... 일주일 정도 걸린다니 맘 편하게 기다려본다. 담낭 절제 수술은 뇌 수술에 비하면 시간이나 난이도 면에서 훨씬 간단한 것이다. 회복도 빠를 것이다. 두 가지 동시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퇴원하는 날 병실 밖은 흐렸고, 멀리 초고층 건물이 보였다. 5월 최초 입원 당시에도 저 건물이 보이는 쪽이었다. 활력 넘치게 일하다가 입퇴원과 수술을 반복하는 신세로 전락했지만 내 정신은 말짱하다. 시종 곁을 지키며 모든 고통의 과정에 함께한 배우자와, 격려와 응원을 보내준 독자들에게 마땅히 드려야 할 깊은 감사도 잊지 않았다. 고맙습니다아....~^^ 


퇴원하는 날 병실 밖은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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