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고 걷는 사람'은 내 삶의 모토이자 독자들과의 약속이었다. 그동안 부지런히 실천했었다. 그런데 지난 5월부터는 이 생활에 균열이 생겼다. 예정됐던 뇌종양 수술을 한 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들었는데 채 회복되기도 전에 담관 스텐트 시술과 담낭 제거 수술을 하느라고 입퇴원을 반복하였다. 뇌수술을 한지 일주일 째 되는 날 참기 힘든 복통이 찾아와 동네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채혈검사와 CT를 찍은 후 이례적으로 높은 혈압과 간수치, 발열이 지속되자 당직 의사는 급성 간염, 담낭염이 의심된다 하였다.
입원을 하였는데 그날은 6월 6일 현충일이라 소화기내과 의사를 만날 수 없었다. 결국 구급차에 실려 뇌수술을 한 강남의 큰 병원으로 실려갔고, 상태를 본 의료진은 즉시 마약성 진통제로 진정시킨 후 담관 스텐트 시술을 진행했다. 큰 고비를 넘기고 일시 퇴원했다가 지난주에 재입원하여 담낭 제거 수술을 받았다. 지금은 뇌수술과 담낭 제거 수술 회복을 동시에 하고 있는 중이다. 한 달 새 네 번의 입원과 두 번의 수술, 한 번의 시술을 하였는데, 살면서 경험한 특별하고 이례적인 일이었다.
스테로이드와 항생제를 세게 쓰니 그동안 경계치에 있었던 혈압과 혈당은 날개를 달았다. 혈압약을 먹기 시작했고, 다음 주에는 내분비대사내과에 통원하여 당뇨약도 먹어야 할지 의사의 판단을 들어야 한다. 체중은 입원 전에 비하여 5킬로그램 이상 줄었다. 식사조절과 식후 가벼운 산책을 하는 것이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 됐다. 여기까지가 그동안 어떤 글도 쓸 수 없었던 이유다. 글을 장시간 올리지 않을 때 브런치 편집진에서 보내는 의례적인 알림 메시지가 있다.
[글 발행 안내]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답니다. 오늘 떠오른 문장을 기록하고 한 편의 글로 완성해 보세요.
아마 포스팅 간격이 길어질 때 자동으로 보내지는 알림 메시지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 단순한 메시지 덕분에 무엇이라도 좀 써야지라는 마음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회복한다고 읽고 쓰는 것을 멀리하고 그 기간이 너무 길어지면 나중에는 글쓰기 감각 자체가 둔화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집 근처 산책만 하다가 어제는 한 달 반 만에 자주 걷던 강변까지 나가보았다.
대지의 생명력은 초여름 생명들에게 자양분을 흠뻑 주고 있었다. 자주 가던 생태연못에도 수생식물이 푸르게 올라왔고, 하찮은 강아지풀이나 곱게 핀 능소화, 늦은 장미까지 보았다. 아직은 수술한 부위에 통증이 있어 천천히 걸으면서 이들과 교감했다. 하늘과 구름은 선명하게 어울렸고, 공기는 더없이 맑았다. 작은 미물들도 제각각 고유의 멋을 뽐냈다. 그렇게 생명체들과 교감을 하니 비로소 쓸거리가 생겼다. 오늘은 그동안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었던 상황을 해명하고, 오랜만에 강변을 걸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컴퓨터가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리셋하거나 포맷이라도 하지, 삶을 리셋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내가 경험하고 공부한 만큼, 관리해온 만큼 최대치가 딱 거기까지일 것이다. 우울하지만 그게 팩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