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 창작촌에 다녀오다
문래동은 마찌꼬바(소규모 공장)의 거리다. 이 거리를 걷다 보면 특유의 쇠냄새를 맡을 수 있다. 쇠냄새는 철을 절단하거나(쇠톱) 둥글게(선반) 혹은 평평하게 깎거나(밀링) 구멍을 뚫을 때(드릴) 절삭유와 섞여 풍기는 냄새다. 혹시 관련 분야 일을 해 보았다면 이 냄새의 독특함을 알 수 있다. 이 냄새에는 철공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이 배어 있다. 문래동 거리엔 수백 곳의 소규모 공장마다 활기찬, 때로 엄중한 삶들이 있다.
이곳에 창작촌이 들어섰다. 젊은 예술가들이 문래동 철공소 위층에 자리를 잡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본업의 장소인 1층 꽤 많은 곳에는 철공소가 임대료 상승을 못견디고 다른 업종에 자리를 내주었다. 공장이었던 그곳을 말쑥하게 리모델링하여 젊은 취향의 커피숍이나 술집, 음식점이 들어섰다. 저녁에 이 거리를 산책하다 미묘한 착잡함을 느꼈다. 이곳이 명소가 되는 것은 좋지만 주변 건물 시세를 오르게 하여 철공소의 주인들이 임대료 부담이 커져 여기를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곳에서 수십년 생업을 이어온 사람들이다.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다.
작은 공장에서 일하는 분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모두 나이가 지긋하다. 젊은이 들이 더는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이런 기층 단위 제조업을 하는 장소가 있다.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주문처에서 요구한 모양대로 철을 가공하거나, 이어 붙이는 용접, 틀에 부어 만드는 주물, 자르거나 구부리는 프레스 작업, 모두가 정교한 손동작이 필요한 작업들이다. 작업이 힘들고 위험하기도 해서 젊은이들이 찾지 않는다고 한다.
많은 특성화고등학교에서 학생들 모집이 안되니 학과 개편을 하여 전통적인 공업 분야 전공이 거의 다 폐지되고 있다. 손으로 하는 작업은 기계 분야의 가장 원초적인 일이기도 하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 공작기계의 각 부품이 모두 여기에서 만들어져 납품 절차를 거친다. 아는 척 하는 김에 한 가지 고백하자면, 나도 오래 전 '정밀가공기능사 2급' 자격을 땄다. 지금은 '컴퓨터응용선반기능사'라고 명칭이 바뀌었다. 네이버에서 자격증으로 디지털 신원 인증을 하니 그 옛날에 취득한 것도 다 보여준다.
도시재생 사업을 하면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패턴이 있다. 도시재생 사업이 시작되고, 거리가 정비되면, 맛집이 들어서고, 유동 인구가 늘어나고, 이로 인해 건물 임대료가 상승한다. 그러면 이곳에 오래 터를 잡고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은 쫓겨난다. 벌써 문래동엔 서울 전역에서 찾는 맛집이 생겨나고 있다.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집들도 늘어나고 있다. 문래동만큼은 창조적 도시재생 사업으로 공존과 상생의 모범 사례가 됐으면 한다.
내가 사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안양천이 있고, 또 문래동 창작촌이 있다는 것이 참 좋다. 문래동 철공소 골목길을 걸어갈 때마다 몸을 감싸는 저 특유의 쇠냄새는 내 사춘기 시절을 현재적 시점으로 소환한다. 기억은 고통스럽고 집요하다. 먹고살만한 지금, 어느 정도는 사치스럽게 느끼는 향수 같은 것일지라도 난 문래동 골목에서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