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서울교육을 생각하며
정년퇴임 소회를 대신하여
공식적으로는 오늘 자정에 공무원 신분을 마감한다. 오전에 있었던 훈포장 전수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도저히 갈 기분이 나지 않았다. 어제 서울교육 공동체는 제 손으로 뽑은 교육감을 잃었다. 대법원은 해직교사를 특별채용하는 과정에서 직권을 남용했다는 이유로 조희연 교육감에게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선고 직후 직을 상실한 교육감은 교육청 직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담담하게 정문을 나섰다.
그와 함께 한 10년의 시간이 흡사 꿈인 양 스쳤다. 10월 16일에 새 교육감을 뽑는 보궐선거를 한다고 하는데, 벌써 차기 교육감을 꿈꾸는 분들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린다.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미리 준비를 해왔을 것이다. 불편함이 없지 않지만 이것이 우리 앞에 놓인 냉정한 현실이려니 생각한다.
이제 나는 공직을 떠나 자유인의 신분이 된다. 무엇보다 오늘 자정 이후로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에서 해방된다. 공무원인 자에게 적용됐던 일체의 정치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예컨대 SNS를 통해 특정 후보자를 지지호소하는 글을 전송하는 행위도 할 수 있다. 후원도 가능하다. 이는 지극히 협소한 의미의 정치적 자유이지만 이런 행위로 인해 현장에서 쫓겨났던 교사들을 특별채용의 형식을 빌려 복직시키는 일을 교육감은 한 것이고, 형식적 법논리 적용의 희생자가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 가혹한 것이 돼버렸다.
오죽하면 공무원을 '정치적 금치산자'로 부를까. 이는 세계적 보편성에도 맞지 않고, 사실상 16세부터 정치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 우리 법률 체계와도 맞지 않다. 교원들은 직을 유지한 채로는 공직 선거에 출마할 수도 없고, 지지 의사도 표명할 수 없다. 이렇듯 정치적 의사 표현을 거세 당한 교원이, 정당가입이 가능한 학생들을 지도하는 모순이 생겼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교육의 조건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다음 주부터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차기 서울 교육감을 꿈꾸는 예비후보들의 활동이 시작될 것이다. 언론에서는 벌써 단일화를 이루는 쪽의 승산이 점쳐진다면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10월 16일까지는 시간이 매우 촉박하기 때문에 인지도와 단일화 여부가 주요 변수라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방식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기왕 선거를 해야 한다면 당면한 서울교육의 과제는 무엇인지, 교사와 학생들의 바람은 무엇인지, 학부모와 시민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면밀하게 살피는 것이 우선이다.
특히 서이초 이후 교육공동체의 회복, 교원의 교육활동 보장, 학생들의 안전하고 쾌적한 학교환경 보장, 혁신학교 및 민주시민교육, 친환경 급식 지속, 2022 교육과정 적용 문제, 고교학점제 및 대입 방향,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기초학력, 생태전환, 학생인권조례 등 현안문제에 대한 대응 등 채 2년도 되지 않는 임기 동안에 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여기에 대폭 줄어들고 있는 지방교육재정 확보 노력, 늘봄과 유보통합, 학생 통합지원, IB(KB) 적용 등 시기적으로 서울교육이 감당해야 할 만만치 않은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아울러 다양해진 학교 구성원 간 이해관계의 조정은 학교장의 업무를 넘어 교육장과 교육감이 신경을 써야 하는 문제다. 무엇을 새롭게 추진하기보다 탁월한 조정력을 발휘하기를 바라는 현장의 의견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조희연 교육감의 핵심정책이었던 국토인생(국제공동수업, 토론교육, 인공지능교육, 생태전환교육)은 지금 현장 안착 단계에 이르고 있는 바, 이의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도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이다. 교육감 직을 상실하는 것으로 리더로서 역할을 일차 정리가 됐지만, 그는 서울에서 유일하게 세 번의 선택을 받았고, 연속 10년 동안 교육행정을 이끌어 왔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성과이다. 단순한 경로의존성이 아니라 서울교육이 이미 그렇게 '혁신미래교육'으로 시스템화 돼 있다는 얘기다.
특히 그가 3기 들어서 강조했던 공존과 포용의 교육은 그간 극단으로 치닫는 논리를 극복하고 합리적 해결과 통합을 기하기 위한 시도였다는 점에서 서울교육감의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교육은 진보의 논리만으로도, 보수의 논리만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복잡한 시스템에서 작동한다. 정책을 구상할 때도 사람을 구할 때도 이러한 공존의 바탕 위에서 생각해야 하고, 예산 또한 그렇게 쓰여야 한다.
정년을 맞아 그럴싸한 퇴임사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눈앞에 도래한 현실이 한가함을 허락하지 않기에 서울교육을 걱정하는 글이 습관처럼 나와 버렸다. 직을 상실한 당사자는 물론이고 교육청에 남아 있는 직원들, 현장 교원들, 학생과 학부모 및 시민들이 어제의 충격을 극복하고 혁신미래교육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생각을 보태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