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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Aug 10. 2024

학교, 안전 지상주의와 과잉 법화(法化)를 넘어

한 아이가 책임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

정년 퇴임까지는 20일이 남았다. 일주일 전에 병원에 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했고, 엊그제 이비인후과와 내분비대사내과의 진료가 있었다. 수십 개 항목의 검사 결과는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았지만 그중 세 가지의 수치가 기준치를 초과하여 관련 약을 추가 복용하기로 했다. 완전하게 소실됐던 후각은 20% 정도 돌아온 것 같고, 미각도 꽤 돌아왔다. 무엇보다 당기는 음식이 있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예후라고 생각한다. 두 달 후에 다시 입원이 예정돼 있다. 담체관 스텐트를 제거 또는 교체하는 시술 때문이다.  


요즘 SNS에 글을 쓰니 지인들께서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연락을 주신다. '많이 회복이 되었군요. 글 하나 써주세요'라는 분들도 있고, '회복에 전념해야 할 때인데 그렇게 글쓰기를 하면 무리가 오지 않겠소?'라고 걱정해 주시는 말씀도 있다. 모두 고맙게 듣고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두 가지 경우 모두 마땅한 답을 드리기 힘들다. 


회복을 단정하는 언급에 '아니요, 아직 힘들어요'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글쓰기를 포함하여 아무것도 하지 말고 회복에 전념하라는 말씀에도 딱히 답변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몇 개월 집과 병원에만 있어보니 저도 답답하여 멘털 관리를 해야 한답니다. 정신줄 놓지 않는 방법으론 글쓰기 만한 게 없지요."라고 말하는 것 역시 우습기는 마찬가지다. 모르겠다. 환자의 마음이 다 그런가 하는 자격지심도 없지 않다. 


그렇다고 개인의 내밀한 치료 과정 이야기를 하기에 SNS는 너무 개방적인 것도 사실이다. 보시다시피 그저 혼자 가볍게 쓰는 글은 가능하지만 집필 의뢰를 받아 책임 있는 글을 쓰기는 아직 힘들다는 정도이다. 때가 되면 글도 쓰고, 독자들도 만나러 가겠다는 의지는 있다. 정년이 코 앞으로 다가오니 뭔가 준비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지만 지금은 그저 독서의 범위를 넓게 하려고 노력한다.


10년 동안 교육청과 교육부를 오가면서 관료 생활을 했다. 진보 교육감, 진보적 성향의 교육부 장관이 있었기에 정책 비판이나 하던 나 같은 사람도 발탁이 되어 생각을 나눌 수 있었다. 막상 정년 퇴임이 다가오니 보람이 있었다는 감정보다 아쉬운 점이 먼저 떠오른다. 교육정책의 수립과 시행에 참여했던 사람으로 참회에 가까운 회한이 밀려오는 것도 사실이다. 


장기적 정책을 마련하고 시행하기에 감염병의 대유행과 교육활동 침해 사안(한쪽에선 아동학대라 부르는)이 쉼 없이 있었고, 소관 국장으로서 눈앞의 현안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나고 보니 10년 동안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인가라는 반성적 회한에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내가 아쉽게 느꼈던 것은  최근 들어 학교 현장이 지나치게 안전 지상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점과, 이와 연계한 과잉 법화 현상이다. 


https://www.opencolleges.edu.au/blogs/articles/25-tricks-to-stop-teacher-burnout


아마도 교사들은, 본인의 교육활동을 통하여 학생들을 지적으로 충만하고, 신체적 사회적 건강을 유지하여 조화롭게 성장하는 민주시민으로 가르치고 싶을 것이다. 진부하긴 해도 이는 법률로 정해진 우리 교육의 이념이기도 하다. 물론 부모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대부분의 부모는, 학교와 교사는 내 아이가 학습에 집중할 수 있도록 공정하고 안전하게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도록 할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문제는 이 간극이 너무 커서 하나의 사안을 두고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과 아동학대 가해자라는 상반된 시각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 서이초 사태 이후 국회와 정부는 여러 가지 법령을 제/개정하였다. 이른바 교권 4법도 마련되었고, 교사를 아동학대 가해자로 신고한 사건에 대하여 그것이 정당한 교육활동이었는지 여부를 가려 교육감의 의견을 제출하는 절차도 생겼다. 교권보호위원회의 지역청 이관과 신속 대응팀의 설치, 변호사 조력 등 법률 지원도 한층 강화했다. 바람직한 교육활동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들이었다. 


현장에 강제하는 각종 규범들로 인해 교육활동 침해 사안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는지는 관련 데이터를 봐야 알겠지만 내가 현직에 있을 때만 해도 많을 땐 하루 서너 건 아동학대 가해자로 신고된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 여부를 판단하는 회의를 했었다. 이러한 경험으로 보아 이러한 법적 규제가 효과적으로 현장을 안정시키고 교육공동체를 회복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https://blog.lincolnlearningsolutions.org/5-ways-to-avoid-teacher-burnout


오히려 더 걱정스러운 것은 학생-학생 간 다툼의 해결도 법적 절차에 따르고, 교사-학생 관계 역시 법적 판단에 종속하는 악순환의 문을 열게 되었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안의 해결을 법적 절차에 의존하는 것은 '교육적 해결'의 기회를 원천 봉쇄한다. 정치인들이 과잉 사법화를 경계하면서 실종된 정치를 복원하자고 하듯이 학교 현장도 과잉 법화를 넘어 교육을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이다. 


한 인간은 성장 과정을 통해 개인적 사회적 '위험'을 경험한다. 크고 작은 위험 요소들이 성장을 꼭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절한 위험에 노출되었을 때 대처하는 법을 배우며 내성을 키워나간다. 놀이와 운동의 목적이 관계를 통한 사회화와 성장기 골격과 근육의 강화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세상 안전한 놀이와 운동이 있나. 놀다가 다쳐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 사회적 적응력이 크다는 것은 조너선 하이트, 귄터 벨치히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반복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불이익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이기심이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법적 판단을 구하자는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이들의 자율적 움직임을 보장하는 교사의 태도는 때로 '방임'으로 몰리기도 한다. 체육 활동을 하면서 교사가 학생에게 던진 공을 받지 못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여러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심리정서적 학대를 했다고 신고를 당할 수 있다. 


https://www.srvusd.net/School-Safety/Safe-School-Programs/Education-Laws/index.html


이 같은 흐름은 교사들이 소신을 가지고 교육활동에 임할 수 없게 만든다. 아울러 최근 입직하는 젊은 교사들이 이직을 결심하게 하는 동기로도 작용한다. 이러한 점을 감수하고도 교직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사명감'을 가지고 교육활동에 '전념'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요즘 학교 현장의 흐름과는 동떨어져 있다. 물론 MZ세대 교사들의 사고방식이 경력교사들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도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별도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아무튼 현재 교사대 예비교사들, 초임교사들의 분위기를 보면 미래 교육의 양태를 어렴풋이라도 전망할 수 있다. 놀이와 운동 대신 반복 학습과 안전 지상주의만으로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한 아이가 책임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주변 관계자들의 조력이 어떤 방식일 때 아이가 개인적 사회적으로 행복한지 쉼 없는 토론을 해야 한다. 



커버이미지 https://blog.lincolnlearningsolutions.org/5-ways-to-avoid-teacher-burn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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