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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Mar 02. 2024

다시, 학교를 학교답게

학교는 교육활동을 통하여 학습자의 전인적 발달을 촉진하는 공간

다시 봄을 맞고 있다. 많은 선생님들께서는 새학기를 맞는 기분이 다른 때와 사뭇 다를 것이다. 지난해 우리 교육공동체가 겪었던 아픈 경험 때문이다. 한 교사가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이후 우리는 가르침이 일어나야 할 장소로써 학교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확인하였다.


수많은 선생님의 분노가 작년 9월 4일 여의도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서 폭발적으로 분출하였다. 선생님들은 우리 곁의 젊은 교사가 왜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 했는지 이유를 물었다. 동시에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당국의 빠른 조치를 주문하였다. 계절이 한 번 바뀌는 사이 여의도는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선생님들의 요구와 학교를 학교답게 다시 회복하자는 치유와 연대의 상징적 장소가 됐다.


교육당국과 정치권은 선생님들의 절박한 외침에 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법·제도의 개선이 이뤄졌다. 나아가 교육활동에 대한 침해 행위가 일어났을 때 교사를 보호할 수 있는 생활지도에 관한 고시가 개정되었으며 각 교육청은 정당한 교육활동에서 선생님들을 보호할 수 있는 각종 장치를 마련하였다. 이 모든 조치가 선생님들의 절박한 외침이 아니었다면 이행되는 데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서울특별시교육청도 ‘교육활동보호팀’을 신설하여 아동학대로 신고된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 여부 판단과 피해 교원에 대한 법률 자문, 소송비 지원, 심리치유, 안심동행 서비스 등의 조치를 강화하기로 하였다. 아울러 단위학교 교육활동보호위원회를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하고, 지원청 학교통합지원센터에 변호사를 추가 배치하는 것을 포함하여 신속대응팀과 교육활동 보호지원단을 운영하기로 하였다.


또한 학교의 민원 창구를 일원화하고 1교 1변호사를 통하여 현장의 교육활동 침해 사안에 대해 가장 가까운 곳에서 기본적인 법률 조력을 하기로 하였다. 이와 동시에 교육지원청은 통합지원의 기능을 한층 강화하여 학교통합지원과 학생 맞춤형통합지원을 동시에 이루어 나간다.


아울러 각 지원청에는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을 배치하여 신속하게 초기 조사에 임하기로 하였다. 이로써 문제행동 학생 분리를 위한 장소와 인력 마련 등 일부 미흡한 사항을 빼고는 학교 차원의 교육활동 보호 장치는 거의 마련되는 셈이다.


교육청의 소관 국장으로서 여러 차례의 현장 교원 간담회를 통하여 선생님들의 간절한 말씀을 들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선생님들의 의도에 최대한 가깝게 정책으로 구현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선생님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관련 법의 개선이나 교육활동 보호 장치의 마련이 곧 안전하게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선생님과 자주 나누었던 이야기지만 가르치고 배우는 일의 속성은 정말로 단순하지 않다. 교육이 내포하고 있는 이 복잡함이 때로 학교 구성원 간의 적지 않은 이해충돌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교사의, 교육의 권위는 많은 경우 이러한 이해충돌 상황을 조정하거나 중재하는 데 무력하였다. 아마도 많은 선생님께서 느끼고 있는 좌절감은 이러한 교육적 권위의 상실로부터 비롯하였을 것이다.


여러 선생님께서 강조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교사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교사와 보호자 간의 긴장과 대립이 일상화하는 것을 극복하고 이들 사이의 교육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다. 관련 법령의 개선이나 매뉴얼의 보강, 그리고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교육청의 각종 정책은 사실 학교를 학교답게 복원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 조건일 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보다 짧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간을 거치며 시민 모두의 권리의식이 높아졌다. 사회의 한 구성원이자 시민으로서 권리의식을 갖는 것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 사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권리의식은 교육적 동반자여야 할 보호자를 ‘내 자식 지상주의’에 빠지게 만들어 학교와 교사를 민원의 대상으로 삼는 등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형성하게 하였다.


많은 선생님께서는 과거에 비하여 학교 교육활동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였고 직업인으로서 교사에 대한 존중감 역시 크게 낮아졌다고 개탄하였다. 여기에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 대학 진학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는 인식, 각자도생의 사회 분위기는 학교를 더욱 황폐하게 만들었다. 학교는 점점 더 이해충돌의 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앞서 말씀드렸듯 이와 같은 진단은 법·제도의 개선과 교육활동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것만으로는 학교의 기능을 다시 복원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다.


일차적으로 교사들이 안심하고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다가 학교가 법률 다툼의 장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크다는 선생님도 많이 있다. 교사와 학생 간, 교사와 학부모 간에 일어나는 사안들을 모두 법적 판단에 맡긴다면 우리 교단은 정말 삭막해질 것이다. 모든 문제 해결을 법· 제도에 기대는 ‘과잉 사법화’는 교육적 해결과 화해·중재의 여지를 좁게 만든다.


이제 새 학기부터 진전된 교육활동 보호 방안이 학교 현장에 도입되겠지만 학교 구성원 간의 관계 회복 없는 보호 방안만으로는 학교의 기능을 다시 복원하기 힘들다. 지난해 말까지는 교육활동 침해와 학교 구성원 간 갈등으로 인하여 상처받은 교원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이었다. 이는 더 좋은 학교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진통의 과정이기도 하였다.


한 조직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필요한 두 가지의 조건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조직에 속한 구성원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민주적 규율’을 확립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동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시민적 소양’을 높이는 것이다. 민주적 규율과 시민적 소양은 학교를 학교답게 복원하기 위한 기본적이며 필수적인 조건이다.


우리 교육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역지사지형 토론 모형’은 문제 해결 상황에서 우선 상대의 입장을 깊게 살피도록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현대 사회의 모든 쟁점은 그 나름의 복잡한 형성 과정을 가지고 있기에 칼로 무를 자르듯이 단번에 정리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이때 논리를 앞세워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것보다 문제의 바람직한 해결을 위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접점이 있는지를 찾아보려 노력하는 것이 역지사지형 토론의 정신이다.


상대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은 관계 회복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관련 법령의 개선과 교육활동 보호 정책을 반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자괴감을 느끼는 지점이다. 법·제도에 의존하면 절차적 마무리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여러 선생님께서 그토록 소망하시는 교육적 회복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기본적으로 교육활동을 통하여 학습자의 전인적 발달을 촉진하는 공간이며 당연히 교사와 학생이 그 당사자이다. 보호자는 자녀의 좋은 배움을 지원하는 조력자이다. 이것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교육공동체를 향한 시작이다.


교육청은 오래전부터 ‘수업에 전념하는 교사’를 내걸고 현장을 지원해 왔다. 선생님들을 위해선 불필요한 정책사업을 정비하거나 공문을 감축하여 학교에서 업무를 경감해 드리는 것이 한 축이고, 수업혁신을 위한 사례의 발굴과 전파가 또 다른 한 축이다.


아울러 학생들 모두를 ‘교복 입은 시민’으로 규정하고 자치와 참여의 정신이 자라나도록 다양한 사업을 펼쳐왔다. 학부모 역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학교교육에 참여하도록 권하고 있다. 적극적인 참여와 공동의 활동으로 각 구성원의 시민적 소양을 높여야 한다.


지금 학교는 학생의 인권과 교권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서로의 권리와 의무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생 인권의 신장이 교권을 추락하게 했다는 일각의 지적이 있으나 이는 문제 상황의 한 측면만을 확대하여 접근하는 관점이다. 교원, 학생, 보호자는 각기 자신의 역할이 있고 보호받아야 할 권리, 그리고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선생님의 마음이 그와 같다.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은 학생들이 2023 교육정책 인식 조사에서 학교 선생님을 가장 신뢰하는 직업군으로 꼽았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희망의 불씨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생님과 함께 ‘시민이 사는 장소’인 학교를 다시 학교답게 복원하기를 소망한다.


함영기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

서울교육 권두칼럼2024 봄호(2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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