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성장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한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교실에 들어왔을 때 어떤 분위기를 느낄지 생각해 보자. 우선 창문턱은 아이의 눈높이보 다 훨씬 높아서 밖이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어 불안하다. 처음 만난 담임선생님은 주로 학교에서 해서는 안 될 것들을 설명한다. 교실이나 복도에서는 뛰지 말아야 하며, 의자에 앉아서는 자세를 바르게 하고, 선생님이 설명할 때는 한눈팔지 않고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아이들이 처음 느끼는 교실의 분위기이고, 여태껏 자유로웠던 몸을 통제 아래 두라는 것이 교사가 하는 말의 대부분이라면 어떨까?
사실 이런 경험을 하는 아이들은 꽤 많다. 이때 교사는 물리적으로 존재하되 의미 있게 존재하지 않는다. 반 매넌은 교육을 통해서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아이들이 희망을 품고 살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희망은 우리에게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나는 네가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알아’라는 믿음을 주며, 또한 어린이의 가능성을 경험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교육적 분위기를 강조하는 반 매넌은 ‘해석학적 현상학’을 연구한 학자다. 앞에서 말한 분위기가 ‘현상’이며 현상은 직관의 대상이자 기록의 대상이다. 현상을 직관한다는 것은 관찰자의 선입견을 배제하고 현상 그 자체에 주목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그 직관으로부터 생성되는 관찰자의 의미 있는 맥락을 포함한다. 반 매넌은 이것을 글쓰기를 통해 알 수 있다고 보았다.
교사가 가르치는 장소를 느끼고 교육행위를 통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아이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얻는 느낌과 의미는 훌륭한 교육 글쓰기의 원천이다. 교사의 역량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는 교육상황에서의 ‘말하기, 쓰기, 행동하기’ 이렇게 세 가지다. ‘말하기’는 교사가 교육상황을 이해하고 있는지 보여주며, 전문성과 소양을 드러내는 직접 증거다.
‘글쓰기’는 교육상황과 이해에 대한 기록이며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는 점에서 공적 행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행동하기’는 이 모든 것을 통합한 교사의 실천이다. 교사들이 함께 공부하고 이를 기록하여 구성원들에게 널리 알리는 행위는 교육상황을 깊이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지금 전국의 많은 학교에 교원학습공동체 바람이 불고 있다. 교원학습공동체는 교육혁신을 이루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자 교사의 성장을 돕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만으로는 상황 이해와 민감성 획득이라는 반 매넌의 메시지에 다가갈 수 없다. 책을 읽은 후 느낌을 기록하여 발표하고, 그다음 실천을 예약하는 유기적 순환과정을 경험할 때, 비로소 학교는 학습조직으로 기능한다. 반 매넌은 교육적 분위기 안에서 교사가 학생 앞에 교육적으로 서는 것을 교사의 중요한 역할로 삼았다.
쉽게 말해 ‘들어가기, 나오기, 거리두기’를 아이들과 관계하는 교사의 역할로 본 것이다. ‘들어가기’는 학생이 교사의 조력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잘 포착하고 배움을 촉진(facilitation)하는 행위다. 촉진을 통하여 학습자가 스스로 무엇인가를 이루어나갈 준비가 됐다고 판단했을 때는 그로부터 빠져나와야(fading, 조력을 제거하기) 한다. 계속 끌어안고 있으면 아이는 독립적 존재로 설 수 없다.
들어가고 나오기를 잘하려면 기술이 아닌 예술적 감각이 필요하다. 기술은 제품(표준화된 기준에 도달)을 만들고 불량품을 줄이는 일이요, 예술은 작품(유일무이한 결과)을 생성하는 일이다. 이처럼 섬세하게 교육적 맥락과 상황을 살피는 눈이 바로 ‘질적인 눈’이며 ‘미학적 감식안’이다. 그런데 아이 곁에 너무 바짝 붙어 있거나 혹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들어가고 나올 상황과 시기를 포착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평소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거리두기는 아이와의 친밀함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는 아이에 대한 조력, 그리고 조력을 제거하여 아이가 스스로 설 수 있게 돕는 지극히 섬세한 교육행위에 앞선 준비 태세를 말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인지적이든 사회·정서적이든 교사의 교육 행위는 절제를 바탕으로 정중하고 친절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이든 과잉 상태로 들어가는 순간 균형은 무너지고 좋은 배움도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과잉 상태를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교사들이 많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결핍 상태를 경험하게 하여 아이에게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편이 낫다. 요즘 현장의 사례를 듣는 연수가 많아지고 있다. 교사의 입장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사례가 소화하기 쉽고, 적용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대부분이 교사의 인내와 헌신, 그리고 아이를 향한 한없는 사랑과 몰입을 바탕으로 한 사례들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들을 때는 감동적이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달인들의 이야기라서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교육적 실천은 성공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성공을 염두에 둔 실천은 필연적으로 과잉 개입과 과도한 노력을 부르기 마련이다. 교사의 시선은 성공보다는 노력에, 결과보다는 과정에 놓여야 한다.
교사의 과잉 개입에 의한 사례가 좋은 교육적 본보기로 미화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절제된 친절함은 적당한 거리두기의 전제 조건이다. 교육의 과정은 교사가 어떤 대상에게 개입했다가 벗어나기를 반복하면서 경험을 재구성하도록 돕는 것이다. 적당한 시기와 상황을 고려해 개입하고, 벗어나기를 반복하는 것이 교사의 전문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교사도 부모도 부지불식간에 체화된 과잉 개입을 사랑이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지속된 과잉 사태는 아이의 호기심을 없애버리는 부작용을 낳는다. 아이의 호기심이 멈추면, 더는 지적으로 성장할 수가 없다. 지적 성장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 함영기(2021) 지음 <교사, 책을 들다>에서 일부를 인용함
* 이 책은 2021년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음
도서 정보
https://www.yes24.com/Product/Goods/98809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