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을 이끄는 교사나 부모는 배우고 있는 학생보다 나은 학습자여야 한다
반 매넌은 ‘교사를 경험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는 교사라는 직업 혹은 직무를 경험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반 매넌은 교육적 상황을 민감하게 살피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교사라고 하였다. 즉 교사를 경험한다는 것은 교육적 상황에 대한 민감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과정이다.
반 매넌이 손꼽는 대표적인 교사 경험은 ‘관찰과 기록’이다. 이 책 전편에 드러나는 현상학적 관찰, 그리고 해석적 글쓰기는 반 매넌 철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교사의 시선에서 관찰한 것을 그대로 옮겨 적고, 교사가 느낀 것을 기록하면서 실천과 이해 사이를 오 가며 민감성을 놓지 않는 것이 바로 교사를 경험하는 것이다. 반 매넌은 교육적 민감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우리는 의미 있게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물리적으로는 학생들 앞에 존재할 수 있다. 역으로 물리적으로는 학생들과 함께 있지 않지만, 우리의 삶에 학생들이, 또 학생들의 삶에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 … 이런 관점에서 ‘배우’도록 이끄는 교사나 부모는 ‘배우고 있는’ 학생보다 나은 학습자여야 한다.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 101-103쪽)
민감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실천과 이해 사이를 연결하는 의미까지 함께 소실하는 것이다. 교사의 말과 실천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행위에서 의미를 갖는다. 하루를 무탈하게 보내기 위한 교사의 말과 실천은 그냥 ‘물리적 존재’일 뿐이다. 교사와 학생의 삶이 교차하고 호흡하는 과정에서 내면화하는 배움이야말로 반 매넌이 말하는 ‘교사를 경험하는 것’이다.
교사는 교과를 매개로 아이들과 교실에서 만난다. 가르칠 내용이자 수단으로는 교과서가 있다. 그러나 교사의 가르침은 도처에서 일어날 수 있고, 교과서 외에도 교육내용과 수단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신입교사들은 교과 때문에 압박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교과내용을 이해하고 이를 무리 없이 전달해야 한다는 강박은 교직 내내 교사를 지배한다.
교과 혹은 교과서는 교육과정의 한 가지 수단이지만, 교육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 교사만의 철학적 기초를 다져두지 못하면 교과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 교과를 안다는 것은 교과가 알려지는 방식, 교과가 사랑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교과의 지식을 습득할 줄 아는 것이다.
… ‘진짜’ 수학 교사는 수학을 체험하고 내면화하며, 수학에 대한 감각이 있는 사 람으로 존재하며 그 존재 자체가 수학을 가르치기도 한다. … ‘진짜’ 국어 교사는 읽고 쓰는 것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랑 자체가 국어처럼 느껴진다. ‘진짜’ 국어 교사는 세상을 시로 표현한다. 그것은 말이 가지고 있는 함축적인 힘을 통해서 인간의 경험을 깊이 만나는 것이다. (같은 책, 103-105쪽)
반 매넌은 수준 높은 교사일수록 교육적 민감성, 학생 개개인에게 무엇이 최선인지를 아는 감각, 학생의 삶과 열정에 대한 통찰 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또한 각 교과와 삶을 연계시키는 감각이 남다른 사람이라고 말한다.
반 매넌의 말에 따르면 분위기는 장소가 가지고 있는 복잡한 현상이다. 말하자면 학교는 수용 가능한 방식으로 학생들이 물리적 세계와 시간·공간을 경험하는 곳이며, 일상적 가르침의 장소는 교실이다. 아울러 교실 안의 물건이나 가구는 지 나간 학습의 중요성을 재해석하는 역할을 한다. 교실 분위기는 교사와 학생, 혹은 학생과 학생 사이에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매개로 작용한다.
* 함영기(2021) 지음 <교사, 책을 들다>에서 일부를 인용함
* 이 책은 2021년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음
도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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