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교육과 파블리시 학교
새 학교의 주된 목표는 다방면의 발전을 이룬 창의적 개성을 기르는 것이어야 한다. 교육은 과학과 기술을 종합해서 가르치는 방향으로 가야 하고, 학교는 자주적 활동과 공공적 이용을 위한 생산적 노동을 기초로 두면서도 지역 사정에 맞게 일하는 코뮌으로 바뀌어야 한다. 학교는 삶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일치해야 하며, 조화롭게 발전한 인류를 창조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 1918년 6월 소비에트 교사대회
1918년 소비에트 교육법은 소비에트 교사대회에서 천명한 교육원리를 담는다. 1조 학교급을 초/중등 두 단계로, 2조 모든 학교에 무상교육 도입, 4조 8~17세 아동에 대한 의무교육, 5조 모든 학교를 남녀공학으로, 6조 교육의 세속화 명시, 11조 사립학교 허용, 당국이 유용성을 인정할 경우 국가보조금 약속, 21조 모든 학생들이 따뜻한 음식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는 무상급식 선언, 22조 학교는 완전한 자치 원칙 확립...
이를 토대로 크룹스카야는 <과학기술종합교육>을 이끈다. 아울러 학교를 완전한 민주적 통제 아래 두었다. 학교 공동체는 교장을 '선출'하거나 '소환'했고 교과과정과 교수법을 결정하는 데 교사와 학생이 참여했다. 크룹스카야는 "우리의 임무는 대중이 실제로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혁명 후 소련에서 열성적 교사들의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몇 해 동안 이어진 내전, 기근, 기아, 추위, 궁핍, 무질서는 교육여건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교육에 대한 이상은 후퇴했다. 소비에트 교육의 후퇴는 이상을 실현할 물적토대가 부실했던 탓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노스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지는 경쟁을 최소화한 평등교육을 지향했다. 소연방 붕괴 후 시장논리의 도입은 학비, 급식비, 의료비의 개인부담을 가져왔다.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 2007년 12월 교육기본법 2조
학교교육은 학생의 창의력 계발 및 인성 함양을 포함한 전인적 교육을 중시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 위 법 9조 ③항
한편 한국의 교육기본법은 아름다운 말로 가득 차 있지만 실제와의 괴리가 크다. 좌우를 막론하고 전인교육을 부정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그러나 학교에서 전인교육을 실천하는 것만큼이나 '한가한' 일이 또 있는가. 이렇듯 이상과 현실은 고독하고도 화해 없는 질주를 지속해 왔다.
그러나 수호믈린스키는 크룹스카야가 정리한 종합기술교육을 수단으로 하여 전인적 발달을 현실화했다. 어떤 요인이 파블리시 학교를 성공으로 이끌었을까. 우리 식으로 말하면 파블리시는 '자생적 혁신학교'이다.
* 1918년 소비에트 교사대회 및 교육법 조항과 다른 일부 내용은 허니 로젠버그(1972)의 러시아 혁명의 위대한 사회주의 교육 실험(번역 김인식, 백은진)에서 인용하여 재구성했음을 밝힘
* 사진 출처 https://www.rbth.com/hist…/328721-education-in-ussr-the-best (The Soviet Union managed to create an educational system that fueled an ambitious modernization program and ultimately transformed the country into a superpower. 전적으로 러시아의 입장에서 기술된 것임을 감안하고 볼 것)
위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이상을 현실화하는 것에는 이론 개발, 담론화, 실천을 위한 인적 토대, 이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제도 정비 및 물적토대의 구축 같은 것이 있다. 1918년 직후 소비에트는 적어도 열정과 분위기 측면에서는 최고점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그 이후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상당 부분이 현실화되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물론 고르바초프 등장 이후 개혁 개방의 물결과 이어지는 연방 붕괴는 전면적 시장화를 불렀다.
한편, 다른 여러 조건이 충족됐다 할지라도 현실과 너무 먼 이상을 제시할 경우에는 실현 가능성이 낮아지거나 동력을 만들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 특히 이상을 선명화, 예각화하는 과정에서 선의를 가진 우군을 돌려세우거나 중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동력 확보에 실패하거나 필요한 만큼의 진전도 이루지 못하고 '장기적 이상'으로 '선전 홍보'에 그친다. 우린 어떤 시사점을 얻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