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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딧피 Jun 08. 2017

여름과 봄 사이, 어느 괜찮은 저녁.

"정답 인생"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이들에게 '밤 소녀'를 비추 어보다.

필자는 내일모레 서른인 '어른이'이다. 요새 키덜트 어쩌고 하는데 말랑말랑하고 달달한 그런 의미라기보다는 "그 나이 먹었으면~" 따위의 언사에 대한 나름의 보호책으로써의 의미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나는 나이를 먹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 이유들로 '어른'이라는 단어는 아직 내게 생소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세상은, 여러 가지의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악재가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불빛 하나 없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밤과 같은 순간과도 같다. 기꺼이 누리며 살아가야 할 청춘들은 귀중한 그 순간들을 혹사시키며 살아가고 있다. 삶이나 꿈에 대해 아무런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아무것도 모르는 청춘들이 누구나 알만한 상황들로 인해 상처받고 지쳐가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청춘들이 누구나 알만한 상황들 때문에 상처받고 지쳐가고 있다."


당신이 잔디 밭길을 맨발로 걷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신발을 신지 않은 체 길을 걷다 보면 아무리 피해 다닌다고 해도, 길에 떨어져 있던 나뭇가지나 돌을 밟아 상처받기 십상이다. 걷기만 해도 아픈데, 뛰게 된다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황은 뻔하다. 그럼 이 비유를 흔히들 이야기하는 인생의 아픔과 대입해보자. 


인생에 있어, 맨발로 잔디 밭길을 걸으며 생기는 생채기와도 같은 아픔과 상처들은 말 그대로 흔히 겪는다. 하지만 그 상처들은 금세 치유되고, 시기와 순간이 맞아 떨어게 된다면 성숙의 양분이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내면을 단련하는 계기가 되는 경우가 있으며,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과 문제들을 대처할 수 있는 단단한 내면세계를 구축할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제 말할 "정답 인생"을 강요받는 청춘들의 아픔과 상처는 잔디 밭길을 맨발로 걸으면서 생기는 상처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답 인생"


사실 "정답 인생"은 필자가 만들고 해석한 단어이다. "정답 인생"이란, 대한민국 전역에 퍼진 문화 중에서 인생의 순간을 나이로 풀어서, 각 나이의 영역에 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조건을 만들고, 그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삶을 살아가는 행위를 뜻한다.


"정답 인생"에 대해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대한민국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좋은 집안도, 그렇다고 나쁜 형편도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가정의 가장 귀한 존재가 되었다. 그는 무럭무럭 자라서 성인의 반열이 들 때쯤, 주변에서 들려오는 상황은 다양하지 않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리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괜찮은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아버지의 자신감과 어머니의 외모를 닮아 연예인을 꿈꾸고 있었고, 재능도 있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를 더불어 주변 상황도 그를 안정적인 직장에 필요한 전공을 하도록 권했다. 그렇게 선택한 전공이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함을 느낄 때쯤 입영통지서를 받았고, 머리를 깎고 군대에 들어간 후 제대를 했다. 복학을 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준비한다. 나쁘지 않은 기업에 취직을 겨우 하고 나서는 잠깐의 풍류를 거치고 여성을 만났다. 융자를 마련해 집을 얻는다. 결혼할 시기와 여자 친구의 교제가 맞아떨어져 결혼을 한다. 몇 년 후, 그는 아버지가 되었고, 양육과 직장을 번갈아가며 살아가다가, 정년이 된다. 은퇴 후 준비해놨던 노후자금으로 노년을 보내며 인생의 끝을 준비한다.


당신은 "정답 인생"의 예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라. 과연 만족스러운가?


심지어 정답이 정해져 있으면서도 우린 정답대로 완벽히 살 수는 없을뿐더러, 설상 산다 하더라도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수많은 기회 가치들과 행복함은 포기해야 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분명 아니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아니, 말해야만 한다. 당신은 이런 즐거움을 즐길 권리가 있다.




이제 사진 속 소녀의 모습을 봐주었으면 한다. 지금 좋든 싫든 우리는 "정답 인생"에 저울질을 하고 있는 상황이고, 현실과 현재 사이를 만족과 도전 중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나와 주변 상황을 거울 보듯 쳐다보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녀의 모습은 그대에게 마음 한 켠으로 다가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름 직전의 어느 날 저녁, 단지 밤공기가 좋고, 오늘따라 유난히 창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맘에 든다는 이유로 기꺼이 그녀는 밤길을 걸으며 시간을 즐기고 있다. 지겹지도, 마냥 행복하지만도 않은 그런 일상이 그녀는 싫지 않다. 그녀는 꿈도 없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에 대한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따가울 수밖에 없다. 남들과는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그녀는 목적도 없고, 꿈도 없는 한 철부지로서 자신들과는 다르게,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은 속 편한 사람으로 보이기에, 그녀에 대한 가십거리는 말할 것도 없이 부정적이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그 누구보다 밝게 빛난다. 그녀가 지금 걷고 있는 밤길의 전등처럼, 그녀의 시선은 어둠을 밝히고 있다. 


그녀는 분명히 알고 있다. 자신을 향한 주변의 부정적인 판단과 따가운 시선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기 위로를 하지도 않고, 그녀 자신을 토닥이 지도 않는다. 단지 그 따갑고 불쾌한 반응들을 지겨워할 뿐이다. 그 주변의 상황이 왜인지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상처받지도 않는다. 그녀의 생각이라면, 그들은 안타까운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더러워서 피하는 게 똥이라면 그녀에게 있어서 그들은 개똥이다.   


그녀는 가끔 가다 그녀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다가가는 남자들이나,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똑같은 패턴에 똑같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주제에, 어디서 그런 뻔뻔함이 나오는 거지? 자기는 남들보다는 다르다는 둥, 특별하다는 둥.. 무슨 자신감인 거야. 도대체가.. 하는 말마다 꿈을 위해서라는 둥.. 성공을 위해서라는 둥.. 시험에 쫓기고 욕심에 쫓기며 공부하는 척하다가 결국 핸드폰에 얼굴 쳐 박고 헤헤거리는 꼴이라니.. 자기 위로 조금 하다가 빈둥빈둥 거리 고는 되지도 않는 남 탓. 안 질려?"


보다 못해 그렇게 이야기를 뱉어내다 보면 왠지 그녀에게서 살기가 느껴질 때도 있다. 단지 호기심으로 접근했던 이들은 상냥한 소녀에서만 보였던 그녀가 갑자기 냉정한 프로파일러와 같은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혀를 내두르곤 한다. 하지만 그녀에게만 느낄 수 있는 알 수 없는 매력을 보게 될 때면, 이중적인 그녀의 모습에 다시 한번 빠져든다. 그녀가 아끼는 사람들 몇몇을 제외하고는 냉소적으로 이야기하며 얻은 차가운 분위기를 다시 데우지 않는다.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할 이유도, 의미도 전혀 없다. 공기를 환기를 시키기에는 그 자리 자체에서 느끼는 악취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그녀의 갈길은 간다. 어떤 미사여구도, 어떤 마무리도 하지 않은 채그녀는 급속도로 당황하여 표정을 잃어버린 패기 넘치던 젊은 청년 앞을 유유히 지나친다.


가끔 그녀는 막대사탕을 물고 멍을 때리고 있을 때가 있다. 왠지 그럴 때마다 간혹 가다 그녀의 가치관에 이의를 제기하는 불신론자들과의 언쟁 아닌 언쟁을 했으리라 짐작한다. 그녀는 그럴 때마다 입버릇으로 "당이 떨어졌어.."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막대사탕을 입에 문다. 입술이 사탕의 색처럼 달아오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라면 근처 남학생들의 가슴 뜨거운 시선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모습은 남다르다. 왠지 그녀는 떨어진 당을 막대사탕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감으로 채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맛있게 사탕을 녹이고 나면 다시 생기를 찾는 그녀의 눈빛. 응큼한 모습을 하고선 다시 본인의 모습으로 하루를 보내는 게 사랑스럽다기보다는 사람스럽다.



그녀가 거의 매일 같이 하는 말이 있다. 

"그냥 사는 것 자체가 축복인 우리인데, 무슨 부귀영화를 얼마나 누리려고 그 난리들이야?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어 하는지조차 모르는 놈들이 꼭 성공에만 목숨 걸던데? 그리고 그 성공은 거의 대부분이 돈 많이 버는 거더라? 그래서, 그럼 너는 지금 하려는 게 뭐야? 성공인 거야? 행복인 거야? 꼭 멋지고 비싼 옷 입어야 돼? 꼭 그렇게 좋은 것들만 누리고 살아야 해? 더 나은 삶만이 꼭 이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아니. 그건 정말 아니야. 만약 진짜 중요한 걸 말해야 한다면, 그건 바로 지금 우리의 순간이야.

이때보다 더 젊은 날은 없다고. 그리고 이럴 때일수록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나를 즐길 필요가 있다고."


"성공하지 않아도 되니까, 행복한 일을 해. 승리하지 않아도 되니까, 네가 만족한다면 울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 마음껏 이 순간을 즐기길 바라."


그녀는 그렇게 말할 때마다 한 가지 덧붙였다. 만약 그렇게 뻔한 삶이 진정한 행복의 틀이라면, 기꺼이 행복하며 살고, 더 욕심부리지 말고, 시간낭비하기 전에 마음껏 살라고. 그녀의 행복을 느끼는 범위 안에서라면 그녀는 누구보다 힘껏 그 범위 안의 친구들을 응원하고 격려했다. 또 그녀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때라면 자신의 고향 친구를 만난 것처럼, 무척 반가워하였고, 그들의 대화를 엿듣다 보면 행복함에 대해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는 것과 같은 신비로운 모습이 보였다. 그 신비로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행복에 같이 흠뻑 젖게 된 내 모습을 유리창에 비추어 보이게 된다. 


왠지 두렵기도 하다. 외신에서는 그녀 같은 사람들을 일컬어 소위 이상주의라고 소개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현실 따위는 안중에도 없기에.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무엄하고 냉정하다. 가혹하고 차갑다. 그 현실을 적시하면 할수록 분석에는 힘이 실리고, 정확해진다. 그만큼 현실을 부정하는 것 같은 의견 혹은 제안이 있다면, 인기가 있을 리 만무하다. 고통을 줄이려면 실패 확률을 줄여야 하고, 그러려면 소수의 가치관보다는 다수의 방삭이 우선시 되게 되며, 그 의미는 수학적인 접근과 더불어 이상과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인데, 그녀와는 너무나 다른, 명암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그녀가 밤거리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런 곳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녀에게는 정답이 없다. 살아보고 이야기하지도 않고, 경험한 만큼 충분하다는 생각도 없다. 굳이 욕심 같은 게 있다면, 그녀는 그녀 자체의 존재에 있어 늘 지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행복의 위해 나아간다. 우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시키는 대로, 정한 대로, 누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려 부단히 애쓰지 않는다. 오롯이 그녀 자신이 바라는 삶에 대해서 온전히 집중한 뒤, 나머지 시간은 마음껏 살아간다. 일할 땐 일하고, 놀 땐 노는 것처럼, 그녀 자신이 바라는 일에 온전히 집중을 했으니 그 외의 시간은 온전히 그녀의 것이기에 걱정도 두려움도 없다.


오늘도 그녀는 밤거리를 나선다. 오늘의 마지막이자, 하루의 끝맺음과 같은 저녁에 그녀는 밤공기를 온전히 느낀다. 순전히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자 깊은 반성의 시간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오늘 어떠했는가부터 내일은 어떻게 해야지, 라는 순수한 고민과 그녀의 나이 다운 고민들까지. 왠지 그 모습이 불투명한 우리의 청춘들과 같아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붕 뜬다. 불투명한 미래를 늘어놓고 정답인 양 이야기하며 언제는 뭘 해야 하는 지금 우리는 뭘 해야 한다, 라는 주변의 인식들이 우리를 옥죄여 오는 것이 그녀가 걷고 있는 밤거리의 밤과 같다고 생각한다. 뭐랄까, 그런 어두컴컴한 미래 속에 그녀의 생각은 빛처럼 다가온다. 굳이 우리가 누군가의 행복에 맞추어 살아가야 하는가? 남들이 보기에 그럴싸한 삶, 부유하고 부족함 없는 날들. 이런 것들에 나의 온 정신을 쏟을 이유를 이젠 잘 모르겠다. 나와 나의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기 위한 것 말고 더 필요한가?


사실 그녀를 보며 느낀 생각은 나에게 있어서 큰 충격이었다.

우리가 정답이라 생각했던 것들은 사실 풀 수가 없는 공식에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 오히려 그 정답을 위해 수많은 가치들을 오답처리하고 있던 것이다. 풀 수 없는 공식이기에 우리는 풀리지 않은 정답에 대해 의미 없는 고뇌를 하고 있었고, 결국 정답과 오답의 순서를 바꿔 생각했던 것이다. 정답을 위해 살고 있었지만, 그것은 정답이 아니었다. 나는 이 모순 사이를 수없이 오고 가며 문제를 파악하지 않았고, 그 이유 역시 나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정답의 의미를 온전히 나에게 두어야만 풀리는 것이고, 또 이것은 정말 별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여름과 봄 사이, 어느 괜찮을 것 같은 저녁, 이제 나는 소위 "정답 인생"을 위한 고민보다는 나에게 필요한 행복을 찾고, 그것을 만족할 만한 일들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바로 그녀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말이다.


"주위가 아무리 어두울지라도, 지금을 통틀어 내가 가장 밝은 빛인 것처럼 살아."




Photographer 박준혁

Editor, Writer 박대성

Model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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