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니 Dec 08. 2021

새벽 2시, 집 밖에 갇혀버렸다.

어딜 가든 핸드폰은 꼭 소지하기...... 그리고 세상은 아직 따숩다.

다음 날 아침 가구 배송이 오기로 되어 있어서 급하게 주방을 청소하고 가구 배치를 다시 하고 나니 시간은 새벽 1시를 달려가고 있었다. 씻고 잘 준비까지 마치니 1시 30분. 정처 없이 흘러간 시간이 아쉽긴 하지만 잠을 청해야 출근을 할 수 있기에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렇게 잠이 들었어야 했을까.


갑자기 울리는 알림 소리에 핸드폰을 켜보니 문 앞에 친절하게 놓이던 쿠팡 로켓 배송이 공동현관 앞에 물건을 두고 갔다는 문자였다. 공동현관 비밀번호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순간 (너무 죄송스럽게도) 쿠팡 기사님이 안일하게 배송을 하고 있는 거 아니냐며 짜증을 냈었다. 매번 이용하던 시스템인데 갑자기 안될 이유가 없으니까.


이것이 새벽녘 쿠팡 시그널.....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빨리 다녀오면 되니까 핸드폰도 챙기지 않았다. 갑자기 주인이 사라져 강아지가 놀라거나 짖을 수 있으니 방 안에 넣어두고 짖는 소리가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했다. 쭐레쭐레 내려와 투덜거리며 물건들을 들고 다시 들어가려고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뚜뚜뚜뚜... 띠 디디디 error...


아닐 거야...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다고 몇 번을 눌러보고 또 눌러봤지만 공동현관 비밀번호는 먹히지 않았다. 차 키라도 있었으면 차에 들어가 있을 수 있는데, 자다가 일어나서 나온 사람에게 그런 게 있을 리가. 심지어 여름 원피스에 후리스 하나 걸쳐 입어 너무 추웠다. 처음엔 당황스러워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10분 정도를 현관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1층에 누가 사는 건물이었으면 창문을 두드려 도움이라도 청할 텐데, 필로티 구조이다 보니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창문에 돌을 던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야말로 집 밖에 갇혀버린 신세가 됐다.




일단 근처 편의점에 갈 요량으로 미친 듯 달렸다. 내 계획은 편의점에 가서 핸드폰이나 전화를 빌려 119에 신고를 하고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다. 그러다 집 골목을 나오자마자 지나가는 작은 체구의 여성 한 분을 만났다. 그냥 기분에 그분을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분은 움찔움찔 뒷걸음질 쳤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새벽에 사색이 된 사람이 달려들듯이 가까이 오니 그럴 법도.


"저 죄송한데 혹시 전화 한 통 쓸 수 있을까요? 119에 전화를 하려고요"


"어머, 무슨 일 있으세요? 이 전화 쓰세요!"


감사하게도 흔쾌히 건네준 핸드폰을 빌려 받아 119를 연결했지만 119에서는 공동현관은 열어줄 수 없다고 한다. 대신 24시간 열쇠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하지만 역시 실패. 공동현관은 불가했다. 제품이 코맥스이니 네이버를 검색해 코맥스를 담당하는 24시간 열쇠집을 찾았다. 하지만 공동현관은 할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20분쯤 실랑이를 하며 여러 방법을 써봤지만 방법은 없었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집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걱정이 돼서 나와보기라도 했을 텐데 혼자의 설움이 이런 것일까. 그리고 우리 강아지는 얼마나 무서울까. 온갖 걱정에 설움이 올라왔지만 거기서 울면 답이 없었다. 일단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돌아섰다.


그러자 뒤에서 나를 부르며 그분이 다시 달려왔다. PC방이라도 가 계시면 어떠냐며 현금을 챙겨 주실라고 하기에 감사하지만 강아지가 있어서 걱정돼 집 앞에서 일단 기다려 보겠다고 했다. 그럼 같이 있어주겠다고 집 앞으로 함께 걸어왔다. 갑자기 만난 인연이 이렇게나 고맙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다니.


시간은 이미 2시를 훌쩍 넘겼다. 집 앞에 도착했지만 딱히 방법은 없었다. 멘붕이 된 상태였는데 갑자기 천사 같은 그분이 "여기 주차되어 있는 차에 전화를 해보는 게 어떨까요?"하고 제안했다. 건물을 보니 모든 집에 불이 꺼져있지만 일단 내가 살아야 하기에, 민폐를 무릅쓰고 도전해보기로 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차부터 전화번호를 눌렀다. 시간이 2시가 넘었으니 받을 리가 없었다. 한 번 더, 한 번 더. 세 번째 시도만에 한 분이 전화를 받았다. 우리 위층 집이었다.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혹시 1층 현관문을 열어 주실 수 있을까요?"


사정을 듣고 내려오신 이웃은 얼마나 밖에 있었냐며, 미안해하는 내게 괜찮다고 이런 거 도와주고 사는 거지 뭘 그러냐며 안심을 시켜주었다. 그리고 들어가기 전 나와 함께 있어준 그분께도 너무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다. 아마 어제 그분이 아니었으면 나는 얼음이 된 겨울왕국의 안나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안나... 너의 마음 내가 알 것 같아....


그분은 집에 큰일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라 다행이라며 돌아갔다. 감사한 마음에 쿠팡으로(쿠팡 이용률 무엇...) 선물을 보냈다. 새벽 산책을 하다가 나를 만나게 되었다는 그분의 겨울이 부디 춥지 않길 바라며 손난로를 선택했다. 친절과 배려 너무 감사했습니다♥ 집에 가면서는 위층에 선물할 귤을 좀 사야겠다.


또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결론 :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작가의 이전글 아날로그로 회귀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