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첫째 주 수요예술회
<앤디 워홀 : 비기닝 서울> 전은 예술에 시대를 반영하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결국 시대의 변화까지 가져온 예술가 앤디 워홀의 작품세계 전반을 소개한다. 티셔츠의 프린트 위, 광고 속, 수많은 책 등 우리의 삶 곳곳에 남아있는 앤디 워홀은 끊임 없이 존재하며 여전히 현대 사회를 예측하고 있다. 워홀의 혁신에는 끝이 없다. 시작만이 있을 뿐이다.
워홀이 시작된다.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의 전시가 핫한 더현대 서울 ALT 1. 개관전으로 기획되었다. 이번 전시는 이탈리아 주요 미술관 투어를 마치고 국내에서 최초로 열리는 전시이다.
1960년대 미국은 많은 사업이 부활하고 첨단 비즈니스 기술이 출현하며 새로운 경제의 호황이 열린 재건의 시기였다. 자연히 상업 광고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다양한 매체에 반복적으로 노출될수록 상품의 인지도가 높아지는 것은 광고의 힘이었다. 광고 쪽에서 일을 했던 앤디 워홀은 이미지의 반복적인 요소를 예술과 접목하기 시작했고 팩토리(factory)라 칭하는 작업실에서 실크스크린 기법을 통해 마치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듯 많은 대중에게 예술을 알리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나는 예술이 소수의 선택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대단한 점은 부유한 소비자와 가난한 소비자의 소비가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대통령도 콜라를 마시고 리즈 테일러도 콜라를 마신다. 당신 역시 콜라를 마신다. 콜라는 그저 콜라일 뿐이다. 아무리 많은 돈을 낸다 한들 더 좋은 콜라를 마실 수는 없다.
돈을 버는 것은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훌륭한 사업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예술이다.
뜨끔하기도 하고 가슴을 울리는 문구였다. 1970-80년대에 활동했던 미국 작가 전시들을 쭉 보면서 느낀 점은 모두에게 결핍이 있었다는 것, 흑인,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 동성애자 등. 예술에 빠진 그들은 이런 결핍이 사회적 변화와 함께 성공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졌다. 그중 당대에 엄청난 성공과 부를 축적한 사람은 앤디 워홀이다. 이런 마인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 리라 생각된다. (앤디 워홀의 유명세에 눌려 연락을 끊은 바스키아의 일화와 더불어 메이플소프는 죽기 전에 워홀만큼 돈을 벌 수 있을지 그의 변호사에게 자주 질문을 했다고 한다. 답변은 'Never'.)
앤디 워홀은 1970년대 중반 자신의 작업실에서 유명인사뿐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무명의 인물들을 찍은 폴라로이드를 사용해 작업하였다. 애 디워 홀은 상류층부터 소외집단까지 다양한 사회 계층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사회적 아티스트이기도 했다.
만약 앤디 워홀이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전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SNS 인플루언서가 되지 않았을까? 그는 그 누구보다도 이미지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고, 눈길을 끄는 소재를 선택하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SNS처럼 즉석으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툴이 많지 않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폴라로이드이다. 주변에 사람이 끊임없던 워홀은 폴라로이드를 사용해 그들을 모두 곁에 두고자 했고, 폴라로이드는 ‘인스턴트’ 저장소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팩토리(The Factory)"는 앤디 워홀의 예술세계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을 '팩토리', 즉 공장이라 부르며 기계로 제품을 찍어내듯,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작품을 대량 생산했다. 팩토리는 그의 작업실이자, 지인들을 초대해 파티를 여는 파티장이었고, 각본과 연출이 거의 없는 본인의 실험영화를 제작하는 촬영소이기도 했다.
할리우드의 아이콘 메릴린 먼로를 작품에 사용한 것처럼, 1972년, 중국의 초대 국가 주석이자 정치 아이콘인 마오쩌둥을 작품의 주제로 선정하여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앤디 워홀은 평생 '자연'에 꾸준한 관심을 보였다. <소 cow>나 <꽃 flowers> 같이 동식물을 그린 작품은 이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앤디 워홀이 직접 앨범 커버를 디자인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1집 앨범
노란색 바나나와 옆에 작은 글씨로 '천천히 벗겨서 보시오 Peel slowly and see'라고 적혀 있었는데, 이 바나나 껍질 스티커를 벗기면 그 안에 핑크색 바나나가 나오는 구조였다. 이 앨범 커버가 지닌 외설성은 밴드의 음악과 더불어 끊임없이 회자되는 요소이다.
앤디 워홀은 실크스크린과 페인팅 작업으로 작업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그는 평생 동안 드로잉 작업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드로잉은 오히려 워홀이 추구했던 다매체의 사용 및 다양한 주제관에 대한 면모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화려한 색감의 실크스크린 작품 뒤에 감춰진 내성적이고 겁 많던 앤디 워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앤디 워홀에게 예술은 친구였고 행복이었다. 가식 없이 진솔하게 다가오는 워홀의 작품은 그가 원했듯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미래에는 모든 사람들이 15분 동안 유명해질 것이다.
BK 한줄평
시대를 보는 눈과 대중을 위한 예술로 명성까지 얻은 이 시대의 아이콘, born to be influenc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