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읽지 않을 글을 쓰는 작가를 위한
조회수 제로에 빛나는 작품들
작가라면 정교하게 써야 한다. 작가라면 읽기 쉽게 써야 한다. 작가라면 참신하고 좋은 표현을 써야 한다. 몇 가지 원칙을 정하고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아닌 것 같아서 지운다. 주어와 목적어까지 쓰다가 백스페이스를 연달아 누른다. 어떤 작가는 조사 하나라도 며칠 밤을 보내면서 고민했다고 그러지 않았던가. 그러한 기라성 같은 작가들의 폭풍우 같은 고민에 비하면 내 글의 고민은 여우비 쯤일 것이다. 아직도 공허한 페이지에 커서만 눈처럼 깜빡인다. 계속 깜빡이다, 깜빡이다, 이윽고 모니터가 입을 뗀다.
"뭐, 나랑 눈싸움이라도 하게?"
문득 지금 쓰고 있는 글이 누구에게 읽힐까를 고민하게 된다.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박물관의 작품들을 떠올려본다. 조용한 박물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들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마냥 보인다. 처음 썼던 글의 첫 단어에 펜촉을 댔을 때, 나만의 글을 쓰기 위해 누군가를 염두에 두지 말고 일단 써 내려가 보자라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란 게, 어차피 쓰는 글이라면 두루두루 널리 읽히면 좋지 않은가. 생산적인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그에 따라 소비도 증가하면 좋지 않은가. 이런 생각이 들 무렵, 글을 쓰기로 했던 다짐이 점차 옅어져 갔다.
"어차피 아무도 안 읽을 텐데.."
글을 쓰기로 했던 계기는 간단했다. 호기 어렸던 열여섯 살, 당시 국어 선생님은 지긋한 연배에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가진 우리 중학교의 셀러브리티였다. ASMR 못지않은 시와 소설의 낭독은 그간 많은 학생들을 잠재웠으리라. 그때 선생님이 출제했던 수행평가는 '미래의 나에게 쓰는 편지'였다. 형식도 분량도 없는, 오롯이 학생들의 미래 계획을 위한 생산적인 과제였다. 기억하기로는 그때 국어 선생님의 추천으로 학교 운문 대회도 나갔고, 기자단 활동도 할 수 있었으므로 최선을 다해서 작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만 해도 내 꿈은 외교관이었던지라,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는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며 즐겁게 써 내려갔다.
몇 주 후 다시 국어시간, 선생님은 그 수행평가의 우수사례를 선정해서 반 전체에 보여주셨다. 그래도 당신께서는 익명 처리된 과제를 보여주셨고, 오글거리는 필체와 야망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만천하에 공개되는 참사를 막아주셨다. 그러려니 하며 아무 생각 없이 화면을 보던 나는, 낯익은 제목을 보게 되었다. '16살의 나로부터 보내는 편지', 제목을 보자마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선생님이 외교관 판타지가 담긴 과제를 읽고 있었을 때, 그때 남모르게 좋아했던 옆자리 짝꿍은 귓속말로 넌지시 나에게 말했다.
"저 외교관, 네가 쓴 거지?"
그로부터 10년이 지나고 20대 후반이 된 지금, 잠깐씩 그때 생각이 난다. 그때마다 과제를 작성한 파일을 찾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플로피 디스크에 담았던 세월이 이제는 클라우드에 저장하는 시대로 변모해버렸다. 열여섯 살의 나와 대화할 수 있는 수단이었는데, 그걸 소중히 하지 않고 발로 뻐엉 걷어찬 것이었다. 대학교 때 활동했던 흑인음악동아리에서도 그때의 나만이 쓸 수 있는 가사를 쓰고 여러 노래들을 녹음했지만 대다수는 다시 들을 수가 없다. 그 편지처럼 파일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가끔 그때 가사가 궁금하고,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하지만 끝내 파일들을 발견할 수 없었다. 아카이빙을 소홀히 한 내 과오렸다.
30대, 40대 등 강산이 재개발에 재개발을 거듭해도 지금 살고 있는 나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그나마 붙잡고 있는 기억들과 붙잡고 싶은 순간들을 붙잡아두기 위해서, 목판에 한자를 새기듯 써두고 이를 저장하고 싶었다.
조잡하게 쓰면 어떤가, 읽기 어려우면 어떤가, 참신하고 좋은 표현이 없으면 어떤가, 적어도 나는 여러 시간에 걸쳐 지금의 나와 대화하고 있는 것을.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과 대화하는 기회는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로부터 얻는 새로운 영감들과 자아성찰을 얻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부담감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마음 한 구석으로는 많은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명문을 쓰고 싶다. 하지만 독자와 조회수만 생각하다 보니 글이 손에서 벗어나려고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글을 작성한 것만으로도 소정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 아닐까 하는 단상에 잠시 잠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