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재밌어했던 그곳이 어디였을까

불확실함을 마주하는 방법

by 웬즈

한번은 같은 생활관을 쓰던 군대 친구들끼리 얼추 휴가 주기가 겹쳐서, 다 같이 부산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마침 우리 중에는 부산 근처에 살던 친구가 한 명 있었기에 나름 순조롭게 여행을 계획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모두 전역을 목전에 두고 있었고 동시에 휴가를 나가는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인지라, 졸업 직전 수학여행을 앞둔 학생들과 비슷한 감정을 휴가 전날 밤에 느끼면서 잠을 청했다.


사진을 유독 많이 찍고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군대에는 휴대전화 사용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부산에서 만나자마자 저마다 새로 장만한 휴대전화가 얼마나 고화질인가를 서로 자랑했다. 그 때묻지 않은 렌즈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우리는 부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부산의 특색 있는 풍경에 취해서, 발걸음 닿는 곳마다 우리는 서로를 모델로 셔터를 눌러댔다.


창창했던 그 해 8월의 부산 여름 하늘은, 연한 파랑 빛의 마리아나 해구를 그대로 본떠 우리 머리 위에 올려다 놓은 듯했다. 우리는 하늘의 끝이 어디인지를 재보듯 올려다보며, 그 피부를 꿰뚫을 듯한 무더위를 체감한 뒤 계획했던 야외 활동을 전면 수정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나는 여행할 때 활동적으로 노는 것을 선호하는데, 그때의 여름은 그런 나마저도 한 수 접게 만드는 열기를 내뿜었다. 우리는 자동차 창 밖의 풍경을 보면서, 실내 레크리에이션 방, 바닷가 카페와 식당 등을 방문했다. 생각해보면 사실 군대가 아닌 사회에서 친구들끼리 놀았던 것만으로도 우리는 즐거웠던 것일지 모른다.




그 지독히도 더웠던 여행이 끝나고, 우리는 전역을 맞아 저마다 각자의 사회 속으로 흩어졌다. 나는 당시에 찍었던 사진을 볼 때나 그 친구들과 안부를 주고받을 때마다, 문득 부산에서 봤던 그 바다가 발 끝으로 밀려 들어오는 듯했다. 추억을 거두고 그 부산 여행이 다시금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앞으로 우리가 다시 모여 여행을 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발 끝에 남곤 한다.


우리 개개인에게 여행에서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를 물어본다면 그 답이 각자가 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름도 모르던 어떤 한 장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자동차로 이동하던 둘째 날에 우리는 바닷가 옆의 바위와 자갈이 어우러진 공터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 쨍쨍했던 날씨 덕분에 돌과 바위들이 반짝여서 그 장소는 누군가가 그려놓은 그림처럼 보이는 듯했다. 그 그림에 쓰인 물감을 우리 옷에도 묻히기 위해 우리는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처음에는 둘러만 보려고 갔지만 풍경이 마음에 들었기에, 우리는 더위에 물들어가는 것도 모른 채로 풍경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이야기도 나누며 몇 시간 동안이나 그곳에서 놀았다. 시간 상 원래 계획했던 다음 목적지는 모두의 의견으로 가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그 장소에서 보냈던 시간만으로 만족했기 때문이었다. 그 두더지같이 올라온 바위들을 건너가서 봤던 지평선은 지금도 내 동공에 그어져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만 느껴진다.


우리들 중 누구도 그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발적으로 결정했던 행선지였고, 나를 포함해 그곳의 이름을 자세히 기억하려고 했던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여행을 찬찬히 복기해보면 나에게는 가장 처음으로 그 장소에 있던 바위가 뚜렷하게 기억 위로 도드라진다. 우리 일정표에도 없던, 그야말로 뜻밖에 만났던 이름 모를 장소가 그 부산 여행이 생각날 때면 나를 이따금씩 추억으로 몰고 가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일화는 계획주의를 지향하는 나에게 한 번씩 균열을 가져다준다. 굳이 분류하자면 나는 계획에서 이탈할 때마다 불안을 느끼는 사람 군에 속해 왔다. 그러나 부산 여행처럼, 계획에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이 반드시 나쁜 결과만을 가져다줬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에겐 확실함 뿐만이 아니라, 불확실함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시스템이 내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불확실함은 두렵기도 하다. 그것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부산 여행에서 그 장소에 도착했지만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진입하기 어려워졌거나 그렇게 풍경이 예쁘지 않았다면, 우리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 실망감에서 오는 허망함이 두렵기에, 우리는 확실함에 조금이나마 기대고자 미래를 예측하는 계획을 더욱 촘촘히 짜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삶은 불확실함의 연속일 수밖에 없고, 이를 얼마나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서술형 답안지일 뿐이다. 따라서 순간마다 마주치게 되는 불확실함을 포용하고 이를 융통성 있게 바라보는 자세가 삶을 한층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우리가 부산 여행에서 우연히 그 장소에 도착했더라도 갑자기 강풍이 불었거나, 도착해보니 자연보호구역이어서 진입하지 못하게 되었다면 우리는 아마 그 주변 보드게임 카페로 장소를 옮겨 다른 추억을 만들었을 것이다. 보드게임은 군대에 있을 때 휴일마다 우리가 즐겨하던 취미였고, 보드게임 카페는 그 여행에서 가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불확실함을 두려움으로만 간주하기보다는 유연하게 해석함으로써 즐거움을 가지고 대처할 수만 있다면, 온갖 불확실함으로 점철된 삶이 긍정적으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여행에서도 나는 부산 여행에서 보았던 그 불확실함이라는 장소를 다시 한번 더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저 이제 라면 안 먹으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