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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Jan 04. 2024

미스킴 라일락

4년 전 이맘때엔 커피나무에 꽃이 피었다.

언젠가 강릉 테라로사에서 데려온 작은 모종이 6년을 뜸 들이다 꽃을 피우고 빨갛게 열매까지 보여주었지. 이후 한두 번 더 꽃을 보여주더니 어느 겨울 방심한 탓에 냉해를 정통으로 맞고 갑자기 죽어버렸다.


작년 관할 구청에서 나눔 받은 미스킴 라일락은 얼마 못 가 말라버리고 말았다.

아직 죽지 않았다며 몇 달을 물을 주며 관리하던 남편이 며칠 전 상기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라일락에 꽃이 핀다고. 진짜였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라일락이 이 겨울에 꽃을 피웠다.


커피나무에 꽃이 폈을 때 커피나무뿐 아니라 사람 사는 일에도 기다림의 시간은 필요하고 그러다 보면 무릎을 탁 칠만큼의 기가 막힌 타이밍이 온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 조급해지지 않을 의연함이 필요하다고. 미스킴 라일락의 타이밍이 지금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꽃이 만개할지, 이렇게 나타났다 사라져 버릴지 알 수도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기다리는 것에도 노력이 필요하고 꽃을 본 이후에도 노력은 역시 필요하다는 거다.

지치지 않을 만큼의 노력.

방심하지 않고 지나치지 않을 만큼의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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